원래 ESG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 개발에 관심이 많았었고 첫 입사한 회사도 개발직군으로 입사해서 관련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신입사원 교육 실무자가 갑자기 신입사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이번에 CSR팀이 새로 생겼는데 그 부서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고 하는데, 지원할 사람?”

다들 CSR팀이 무슨 업무를 하는지 물어봤지만, 당시 신입사원 교육 담당자는 “나도 몰라. 그런데 보니까 맨날 봉사활동 한다고 그러던데? 하여튼 지원할 사람 있어?”라는 대답뿐이었다.

모르는 부서에 모르는 업무였지만 해당 팀에 지원했고 이후 지난 10여 년 넘게 ESG 담당 실무자로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시작으로 ESG 평가대응, 지속가능경영 전략 수립, 사회적 가치 측정 등의 다양한 업무들을 수행해 왔다.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길…ESG 실무 설명해 줄 선배 없어

그 당시는 ESG경영이라는 용어보다는 ‘지속가능경영’이라는 용어로 많이 쓰였다. 지속가능경영은 기업이 단기 재무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여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위험과 기회요인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며 개선하기 위한 경영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사실 ESG경영과 의미가 다르지는 않다. ESG 경영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겨난 것으로 자칫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 및 CSV(Create Shared Value) 등의 어젠다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ESG 경영의 토대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ESG 실무자로서 되돌아보면 사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ESG 실무자로서 처음 길을 걸어왔을 때는 회사에서 아무도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좌절과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10여 년 전에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환경에서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는 실무자분들의 얘기를 간간히 들을 수 있다. 이번 칼럼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ESG 업무를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적어도 나와 같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덜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아직도 ESG 실무자로 업무를 처음 시작한다면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선배, 동료들이 주변에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각 회사의 ESG 포지션은 실제 그 업무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ESG 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입장에서 ESG 실무자가 갖춰야 할 역량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에 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기다림, ESG 실무자의 제1덕목…빛바랜 보고서가 빛 발할 때

바로 ESG 실무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인내와 기다림이다.

처음 ESG실무자로서 시작했던 시기에 ESG 주제는 다른 부서의 실무자들은 크게 관심이 없던 이슈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서에서 무엇을 한다고 하면, 다들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바빴다.

최근에는 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 중요성 평가 시 인권 이슈의 중요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오면 다들 공감하며 인권에 대해서 별도 정책이나 실무자들이 있는 기업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처음 인권경영이라는 이슈를 언급하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인권은 사실 기업에서 다뤄야 하는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권경영 추진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만들고 그 보고서를 인사부서 실무자와 얘기했을 때 그 실무자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인권을 왜 회사에서 다뤄요? 그런 일은 NGO에서 할 일 아닌지요?”

그러고 나서 당시에 작성한 보고서는 아예 보지도 않고 문전 박대를 당했다. 그 이유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등이었다. 그 이후에도 ‘환경경영 추진방안’이나 ‘지속가능경영 개선과제 추진방안’ 등의 많은 추진과제가 경영진에게 보고되고 각 유관부서에게 공유됐으나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우리 부서의 부서원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언젠가 이 문서들이 실제 빛을 발하게 될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하드디스크에 묵혀 둘 수밖에 없었다. 김치를 오랫동안 숙성시키면 맛깔나는 묵은지가 되듯이 이 보고서들도 언젠가는 정말 빛을 발하며 실행할 수 있는 시기가 오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동안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ESG 실무자로서 그냥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심정으로 해당 유관부서의 실무자들을 계속 만나면서 과제를 추진해야 하는 필요성과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방법 등을 지속적으로 설명했다. ‘소귀에 경 읽기’로 듣던 실무자들이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정도의 공감대 형성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2018년 이후부터 ESG 경영이라는 용어가 급부상하면서 그동안 묵혀두었던 과제들을 하나하나씩 꺼낼 수 있었다. 유관부서 임원들이 ESG 경영에 대해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인권경영을 왜 회사에서 하냐며 문전박대를 하던 상황에서 인권경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구매업체 선정 시 ESG가 우수한 업체에 가점을 주자고 할 때 반대하던 상황에서 ESG 공급망 실사를 위한 별도의 부서가 만들어지고 실무자가 선임될 정도로 ESG경영은 광범위하게 그리고 급격하게 기업 내부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ESG가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ESG 실무자 입장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니 결국 빛을 발할 기회가 왔다. 단지, 그 인내와 기다림이 어려웠을 뿐이다.

 

ESG 실무자의 제2덕목은 ESG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또한, ESG 실무자에게는 ESG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10여 년 정도 ESG 업무를 해왔고 대학원을 다녔으며 스터디도 하고 있지만, ESG 업무는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ESG 업무는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커버해야 할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10여 년 전에 ESG 업무를 수행할 때만 하더라도 ESG 경영은 온실가스 배출 저감이나 사회공헌 등 일부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범위가 많이 확장되어 생물다양성, 공급망 관리, 인권경영, 접근성, 다양성 등 여러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이슈들을 ESG 실무자 혼자서 다루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 유관부서들과 항상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회사 내부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 내부에서 경영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실무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관련 이슈와 연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외부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면서 타 조직에서 ESG를 담당하는 실무자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끊임없이 트렌드를 파악하고 벤치마킹하면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반복적이고 한정된 영역의 업무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ESG는 어려운 업무일 수 있다. 하지만, 회사 전체를 바라보고 항상 새로운 것의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ESG 업무는 상당히 매력적인 업무라고 생각한다. 전국에 있는 모든 ESG 실무자분들을 항상 응원한다!


☞ 준(필명)님은

준(필명)님은 지난 10여 년간 국내 대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ESG 평가 대응, ESG 경영 체계 수립 및 개선과제 도출, 사회적 가치 측정,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사회공헌 등 다양한 ESG 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경제학 석사,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ESG 실무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스터디 모임인 한국ESG실무연구회의 운영진으로서 ESG 실무자들의 교류 및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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