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ESG 기획팀, ESG 전략팀 등의 명칭으로 ESG 전담조직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필자가 ESG업무를 처음 시작하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ESG 전담조직이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동일한 업무를 해왔음에도 조직이 안정화되지 않아 마치 시골 장터가 열릴 때마다 이동하는 보따리장수처럼 계속 사회공헌, 환경/보건/안전, IR, CR, PR 등 여러 곳의 조직을 이동해 왔다.
실제 ESG 담당조직 변화와 관련된 국내 연구에 따르면, ESG 담당 조직이 기업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신설되는 ‘기술 경제적 시각’보다는 이해관계자의 요구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신설되는 ‘정치적 시각’의 특성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즉, 기업의 ESG 담당 조직은 기업 경영에 있어 필수적인 기획, 재무, 마케팅, 인사 등 효율성의 관점에서 구성되는 조직과는 달리 사회적 정당성 및 필요성 등의 제도화된 환경에 의해 조직이 신설되며 이해관계자의 요구 정도가 낮아지면 조직의 형태가 장기간 유지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기업들의 지원부서와 특성이 다른 ESG 조직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ESG 조직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대기업들의 조직구조를 보면 대부분은 관료제를 채택하고 있다. 관료제는 전문화, 공식화된 규칙과 규정, 기능적 부서로 묶인 업무, 집중된 권한, 지휘체계에 따른 의사결정을 특징으로 갖고 있는 제도이며 기능별 조직구조와 부문별 조직구조 등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대기업들은 기능별 조직구조(Functional Structure)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기능별 조직구조는 임직원의 전문성, 역할, 업무에 따라 묶는 조직 형태로서 생산부서, 마케팅부서, 인사관리 부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업에서 흔히 보는 이런 기능별 조직구조는 기계적 모델(Mechanistic model)로도 얘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사나 재무 부서를 예로 들면 각 직급별로 업무 범위가 명확합니다. 보통 저연차에는 급여 지급이나 총무, 채용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고연차로 갈수록 인사제도 기획이나 보상수준 결정 등의 업무를 하게 된다. 결국 업무가 명확히 정의되어 있고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세분화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ESG 조직은 이런 관료제 조직구조 형태에 맞지 않은 조직이다. ESG부서는 실제 본인들이 수행하는 고유의 업무의 비중보다는 회사 전반적인 부분을 컨트롤하고 움직이게 하는 협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ESG 경영을 잘하기 위한 ESG 조직 구조는 매트릭스 형태
일부 ESG를 주요 경영 원칙으로 내세우는 기업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ESG 조직은 기업 내에서 다른 조직에 비해 명확하지 않고 권한도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에서 ESG 조직은 규모가 크지 않고 기껏해야 몇명 안되는 구조인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ESG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임직원들은 대내외 이해관계자들의 쏟아지는 ESG 관련된 모든 요구사항은 ESG 조직에서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협업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ESG조직은 매트릭스 구조로 가져가야 한다. 매트릭스 구조는 기능별 조직과 제품별 조직을 합쳐놓은 조직형태로서 프로젝트 조직과 기능식 조직을 절충한 조직 형태를 말한다. 즉 구성원 개인을 원래의 종적인 계열과 함께 횡적인 팀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조직 형태이다.
ESG 담당자는 ESG와 관련된 고유의 담당하는 업무(예를 들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KPI 관리, 투자자 미팅 등)을 각각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맡되 환경, 사회, 지배구조 영역에서 본인이 전문성을 기르고 싶은 영역을 정해 놓고 이에 대한 전문성도 같이 키울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직원의 전문영역을 환경영역으로 정한다면 이 환경 분야의 최신 동향 등은 항상 학습하면서 환경부서와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와 병행하면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환경 파트 작성을 맡고 ESG 평가에서도 환경분야를 맡는 식으로 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업무를 이런 형태로만 수행하게 되면 모든 업무가 파편화가 되어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총괄 담당자를 따로 두되 각 컨텐츠에 대한 부분은 영역별 담당자에게 일임하는 식으로 운영을 해야 한다.
예전에 인권경영이나 공급망 ESG 관리는 당연히 ESG 조직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HR부서에서 인권경영을 언급하고 있고 공급망 ESG 관리는 구매부서에서 수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ESG 조직을 단순한 오퍼레이션(Operation) 기능의 조직으로 이끌고 간다면 무한정 업무가 늘어나고 결국 조직원들은 과다한 업무량으로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퍼레이션 업무는 최대한 현업부서로 배분해야 더욱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ESG 부서에서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장애인들을 직접 채용에 관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ESG 조직의 운영은 매트릭스 구조 형태로 하되 Operation 업무는 최대한 해당하는 현업부서에서 실행하고 ESG 조직은 좀 더 전사적 관점에서 기획하고 컨트롤하는 형태로 가야 효율적인 운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준(필명)님은
준(필명)님은 지난 10여 년간 국내 대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ESG 평가 대응, ESG 경영 체계 수립 및 개선과제 도출, 사회적 가치 측정,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사회공헌 등 다양한 ESG 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경제학 석사,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ESG 실무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스터디 모임인 한국ESG실무연구회의 운영진으로서 ESG 실무자들의 교류 및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