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이 '넷제로'를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특정 시점까지 탄소제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 밝혔다. 이번 넷제로 선언은 지난 25일 그린뉴딜 당정청 워크숍에서 여당이 넷제로 선언을 강하게 요구한 지 3일 만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기후환경회의 김법정 사무처장 또한 "반기문 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정부 측에 계속 촉구한 내용"이라며 "산업계 등의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국제적인 흐름에서 피할 수 없는 대세여서 정부가 오랜 검토 끝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넷제로’ 선언도 문 대통령에게 압박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UN 연설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26일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 목표를 밝혔다.
구체적 실천방안, 올해 말 유엔 제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담길 것
환경단체들은 즉각 환영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대통령의 탄소 중립 선언은 수많은 시민의 행동이 이뤄낸 성과로서 의미가 있다"며 "선언이 말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행동을 정부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유엔 사무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에 매우 고무됐다. 지난 7월에 발표된 모범적인 그린뉴딜 이후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데 있어 매우 긍정적인 조치"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안하고, 실행할 구체적 정책 조치를 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올해 말까지 UN에 제출해야 하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Long 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에 담길 예정이다. 환경부 황석태 생활환경정책실장은 "일부 부처에서는 실무적인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지만, 그동안 부처 협의를 계속하면서 2050년 탄소 중립을 하기는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LEDS 초안만 발표했고 아직 확정안은 발표 전이다. 초안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7억910만t) 대비 2050년까지 40~75% 감축하는 다섯 가지 시나리오가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넷제로를 선언한데 따라, 단기(2030년) 목표를 장기(2050년) 목표에 맞게 강화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전 세계에서 넷제로를 선언한 국가는 120여개에 달할 정도로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이 커졌다. 올해 이상고온, 기상저온, 폭우와 가뭄, 대형 산불 등 기후위기로 심각한 피해가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면서다. 거기다 탄소 배출에 관한 규제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탄소국경세 도입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이와 같은 규제는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탈석탄·신재생에너지 발전·산업 부담 등
넷제로 위해선 대규모 전환 예고
그러나 넷제로로 나아가기 위해선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대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산술적으로 2050년 넷제로에 도달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30년 간 계속 전년 대비 10%씩 줄여나가야 한다. 2019년은 처음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통해 감축을 이뤄낸 해인데, 그 마저도 전년도인 2018년 대비 3.4% 감축에 그쳤다. 올해 온실가스 감축은 8% 수준에 그칠 전망이라 매년 10%씩 감축해 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일단 2030년 배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주력하고, 이후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전략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2050년 넷제로를 맞추기 위해 2030년 목표치는 흔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단 2030년까지 설정해 놓은 목표를 따라 감축을 해보고, 이후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 안정화, 온실가스 감축 신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8년 재생에너지가 총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8%. 반면 석탄은 41.9%다.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현재 발전량보다 약 7배 늘어야 하는 것이다.
탄소 저감을 위해 산업계 부담 증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미국이나 주요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조업 비중이 높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26일 대한상공회의소 토론회에서 "LEDS 초안 중 탄소를 가장 적게 줄이는 시나리오(2050까지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40% 감축)만 현실화해도 철강·석화·시멘트 업종의 저탄소 전환비용이 4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기후체제에 맞춰 산업을 전환하기 위해선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