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다양성 기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8일, 미국의 법률 비영리단체, 미국 평등권 연맹 (The American Alliance for Equal Rights⋅AAER)은 흑인 여성 기업을 지원하는 미국의 피어리스 펀드(Fearless)를 법원에 기소했다. 이들은 “피어리스 펀드의 재정 지원 프로그램이 불법적으로 인종적 요소를 활용해 다수의 집단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AER의 대표 에드워드 블럼(Edward Blum)은 "법적 전략을 활용해 여러 섹터의 다양성 프로그램을 공격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흑인 여성 기업인 지원하는 피어리스 펀드, 反다양성 기관의 표적 돼
지난 6월, AAER은 하버드 대학교의 소수집단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철폐에 대한 법적 분쟁에서 승리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미국 연방대법원 측은 “대학의 입학 기준에 인종적 요소를 고려해 입학생을 선별하는 것은 헌법의 평등한 권리 보호 조항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파급력은 굉장히 컸다. 그동안 대학교를 포함해 기업, 비영리단체 등에서 다양성을 고려해 소수집단우대 정책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주디셜 워치 (Judicial Watch), AAER등 보수성향 법률단체들은 각계의 다양성 정책을 목표로 삼고 여러 건의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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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ER이 가장 큰 목표로 삼은 곳은 피어리스 펀드다. 조직 내 다양성 증진 차원에서 지원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타 기관과는 달리, 피어리스 펀드는 설립 목적 자체가 '흑인 여성 기업인 지원'이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8월, AAER은 미국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피어리스 펀드의 지원 프로그램이 1866년 민권법(Civil Rights Acts of 1866) 제1981조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조항은 계약 관계를 맺을 때 ‘인종’을 차별요소로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피어리스 펀드 측은 “지원프로그램은 계약 관계가 아닌 인도적 지원에 해당되기 때문에 해당 조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수행하는 비영리적 지원 활동은 헌법 제1조에 명시된 신념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지방 법원 측이 피어리스 펀드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피어리스 펀드의 지원 프로그램이 ‘인종 배타적 행위”라고 잠정적으로 규정하고 사업 운영에 대한 임시 금지(Preliminary Injuction)명령을 내리면서 사건의 불씨가 재점화됐다. AAER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8일 항소법원측에 소송을 제기해 지방법원의 결정에 대한 항소심을 제기했다.
법조계는 해당 사건이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번 이슈가 미국의 민권법, 나아가 헌법 제1조에 대한 해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미국연방대법원이 교육기관의 입시 소수집단우대정책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가운데, 다양성 기반 재정 지원 프로그램이 위헌 판결을 받는다면 기업의 다양성 프로그램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소수집단우대정책 위헌 판결, 기업 다양성 정책 법적 근간 흔들 수도
미국 기업들은 다양성 관련 법적 분쟁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로펌 측은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조속한 행동을 취하는 모양새다. 실제 미국의 대형 로펌, 퍼킨슨 코이 (Perkins Coie)와 모리슨 & 포스터 (Morrison & Foerster)는 AAER의 소송 제기 이후, 자사의 홈페이지에 다양성 기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을 삭제했다.
피어리스 펀드 법적 분쟁으로 인해 기업의 다양성 기반 재정 지원 프로그램도 큰 법적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실제 화이자, 모건스탠리, 아마존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흑인 여성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벤처 캐피털 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의 선임고문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가 설립한 법률단체 아메리카 퍼스트 리걸(America First Legal)은 아마존의 중소기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이 백인들을 ‘역차별’하고 있다며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법조계 측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학교 소수집단 우대정책 위헌 판결로 인해, 기업 다양성 정책의 기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의 법학 교수 수잔 칼(Susan Carle)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법적 분쟁들은 산업계에서 소수집단우대정책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헌법의 재해석을 통해 기업 소수집단우대정책과 다양성 프로그램의 기반이 됐던 법적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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