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취업정보 블로그에 '2021년 상반기 NH농협은행 자소서 2번 항목 ESG 관련 작성 팁'이라는 글이 최근 올라왔다. 알고 보니, 오는 22일(월) 오후 6시에 서류지원이 마감되는 '2021년 NH농협은행' 채용의 자기소개서 항목에 ESG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농협 본연의 가치 구현을 위해 강조되고 있는 ESG 경영과 관련하여, 농협은행이 농업․농촌 또는 지역 사회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또 이와 관련하여 본인이 입행 후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기술해 주십시오.(ESG 경영 실천방안/농업․농촌 또는 지역사회 연계/본인의 역할)’
취업준비생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이와 관련해 갑론을박으로 분주했다. 네티즌 A씨는 "(농협은행의) ESG 항목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했고, 네티즌 B씨는 "ESG경영 항목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ESG경영에 대해 알려줄 분이 없냐"고 묻기도 하고, 어떤 이는 "ESG경영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나? 검색해서 나오는 정보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들까지 내놓았다.
이직을 위해 이번 농협은행의 채용에 관심을 갖고있는 이모씨(33세)는 “농협에게 농촌은 사다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출발은 농촌 금융인데 사실 주 소득은 도심에서 다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다리를 차버릴 순 없으니 지원자들에게 저런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대외이미지 개선을 위해 (ESG경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준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농협은행의 담당 부서에서나 기획할 수준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해 보이는데, 취업준비생에게 덜컥 아이디어 혹은 해답을 요구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 첫번째다. 또하나는 농협은행의 ESG경영과 관련해서 찾아보고 고민하기엔 현재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드러난 경영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농협은행은 왜 신규 채용에서까지 ESG를 등장시킨 것일까.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은 지난 3일 '2021 경영전략회의'에서 "농업·농촌과 함께 성장해온 농협은 태생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최적화된 조직이다"면서 "'농협이 곧 ESG'라는 인식으로 국민과 지역사회, 환경에 기여하는 금융그룹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손 회장의 말은 농협은행의 ESG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과 달리 농협은행은 ESG경영의 후발주자에 가깝다. 5대 금융지주사 중 유일하게 아직 지속가능경영보고서도 발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향후 ESG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농협금융이 손 회장 주관하에 ‘ESG 전략협의회’를 신설하고 이사회 안에 ‘사회가치 및 녹색금융위원회’를 꾸린 것, 농협금융이 앞으로 국내외 석탄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과 대출에 투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환경 사업과 신재생에너지 분야 투자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은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번 입사지원서의 자기소개서 항목 또한 이 과정에서 등장한 에피소드에 가깝다.
취업준비생들의 갑론을박을 보면서, 마치 언론사 취업 준비 당시의 상황이 연상됐다. 언론사마다 필기시험에 꼭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뉴미디어의 미래’였다. 뉴미디어의 미래에 대해서 왜 회사가 아닌 언론 산업에 대해서 아직 지식이 없는 취준생들이 대신 고민해야 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취준생의 자기소개서가 기업의 아이디어 창고인가'라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됐었다.
물론 지속가능한 기업의 대명사인 글로벌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경우, 창립자 이본 쉬나드 회장이 “직원 채용 시 환경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가 보이지 않으면 파타고니아의 직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미래에 회사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는 지원자들이 기업의 정체성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하고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처럼 신규 직원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면, 기업 스스로 이에 대해 자신에게 내놓을 게 있어야 한다. 'NH농협은행= ESG경영의 대명사'라고 신규 직원들에게 설명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