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엑손모빌이 이번에는 네덜란드 정부에 손해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9일(현지시각) 엑손모빌은 네덜란드 정부가 그로닝겐(Groningen) 가스전을 조기 폐쇄해 에너지 헌장 조약(ECT)에 따른 계약 의무를 위반했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했다고 밝혔다.
ECT는 1994년 체결된 국제 조약으로, 에너지 투자 보호 및 국제 협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 조약에 따르면, 에너지 기업들은 자신들의 투자 활동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국가 정책에 대해 각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최근에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들을 고소하는데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기후위기 완화 노력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올해 3월 ECT 탈퇴를 합의,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승인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 지역 주민 안전 우려에 가스전 조기 폐쇄 결정
그로닝겐 가스전은 네덜란드 북부에 위치한 유럽 최대 가스전으로 1959년에 발견돼 60년 이상 네덜란드 및 유럽 전역의 에너지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가스전 운영은 엑손모빌과 셸이 50대 50으로 출자하여 설립한 합작회사가 맡았다.
문제는 수십 년간 이어진 가스 채굴로 가스전 일대의 지층이 불안정해졌다는 것이다. 유럽 현지매체 유로뉴스는 가스전에 4500억입방미터의 가스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과 2018년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며, 이는 1990년초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우려한 네덜란드 정부는 2018년 엑손모빌, 셸과 함께 2030년까지 가스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진 피해가 심각해지자 2023년 가스전 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이미 네덜란드 정부가 피해 지역 주민들의 주택 재건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220억유로(약 32조5694억원)를 약속한 바 있다.
엑손모빌, 국제투자분쟁센터에 제소... EU법 우회 목적
승소해도 네덜란드 정부가 손해 보상해줄지는 미지수
엑손모빌은 이 같은 네덜란드 정부의 조치가 ECT에 따른 투자자 보호 조항 위반이라며, 지난달 30일(현지시각) ICSID에 중재를 신청했다. 엑손모빌이 요청한 손실 보상액은 수십억 유로에 달한다. 엑손모빌의 이번 조치에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자 달래기' 목적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엑손모빌과 셸은 이미 올해 2월 네덜란드 법원에도 소송을 제기, 네덜란드 정부의 가스전 조기 폐쇄는 계약 위반이며, 2030년까지 가스전 운영을 계속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ECT의 일몰 조항도 엑손모빌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몰 조항이란 회원국이 조약에서 탈퇴하더라도 20년 동안은 기존 투자에 대한 보호가 유지되도록 하는 규정을 말한다.
엑손모빌이 유럽사법재판소(ECJ)로 가지 않고 곧장 ICSID로 간 것은 승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미 유럽사법재판소는 ECT와 관련된 EU 회원국 간의 투자 분쟁 건에 대해서는 중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ICSID의 판정과는 별개로, 엑손모빌이 실질적인 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U 회원국인 네덜란드가 EU법을 위반하는 분쟁에 대한 손해 보상을 지급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지구의벗 유럽(Friends of the Earth Europe) 소속 경제정의 전문가 폴 드 클레르크(Paul de Clerck)는 "엑손모빌의 이번 보상 요구가 화석연료 기업들이 ECT를 에너지 전환을 방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ECT가 기후변화와 양립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로이터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가스전 채굴로 인해 네덜란드 정부 수익은 3630억유로(약 537조4542억원), 엑손모빌과 셸의 수익은 약 660억유로(약 97조7189억원)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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