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256억 달러를 유치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수소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좌초자산인 석유 산업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아람코 외에도 중동의 오일머니가 수소로 몰리는 양상이다. 세계 에너지 패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국영 사우디아람코는 최근 “수소 사업에 본격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람코 아흐마드 알코와이테르(Ahmad Al-Khowaiter)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우리는 탄소 포집과 격리(carbon capture and sequestration) 기술에 투자할 필요가 있으며, 무탄소 제품을 포함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계획”이라며 작년 9월엔 수소에너지 유통방법 대안으로 꼽히는 청색암모니아를 세계 최초로 수출하기도 했다.

생산라인에선 수소 관련 시설을 늘리고 있다. 다운스트림(정제·석유화학) 공정 부산물인 부생수소(회색수소)로 수소사업 마중물 역할을 하고, 탄소 포집·저장 시설을 확대해 청색수소(블루수소) 생산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 이후 본격 성장할 수소 시장을 선점해 기반 산업 다각화를 꾀한다. 

정부도 두 팔 걷고 나섰다. 빈 살만 왕세자는 신도시 네옴에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시설(2만6500㎢)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2025년부터 일 평균 650t의 녹색수소를 생산하는 게 목표다. 수소버스 약 2만대를 운행할 수 있는 양이다. 사우디는 이를 위해 세계 최대 상업용 수소공급업체인 미 에어프로덕츠, 자국 ACWA파워와 합작기업을 세웠다. 이 사업에만 60억달러(약 6조7050억원)을 투입한다.

UAE 양대 토후국 중 하나인 아부다비는 국부펀드로 수소 산업에 박차를 다한다. 무바달라 국부펀드와 국영지주회사 ADQ, 국영석유기업 ADNOC은 ‘아부다비 수소동맹’을 맺으며 “에너지 혁신사업을 통해 UAE에 수소경제를 확립하겠다”며 “전력, 모빌리티, 제조산업 등 주요 분야에서 수소에너지 사용을 가속화할 로드맵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운용규모가 2310억달러(약 260조원)에 달하는 무바달라 펀드는 지난달 수소위원회 투자그룹에도 가입했다.

아부다비 수소동맹은 아부다비 등 UAE에 수소에너지 생산기지를 세울 계획이다. 정부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특히 ADNOC은 기존 다운스트림 과정에서 수소에너지를 연간 30만t에서 50만t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 지멘스에너지와 손잡고 마르다르 신도시에 녹색수소 시범 공장도 세울 계획이다.

석유 강국인 중동이 수소로 눈을 돌리는 까닭은 석유 산업의 미래가 어둡기 때문이다. 작년 말 세계 5대 석유기업 중 하나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는 코로나19가 지나도 이전 같은 석유 수요량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탄소 추세가 기존과 비슷한 속도로만 이어져도 향후 약 20년간 석유 수요는 작년 하반기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반면 수소는 전망이 밝은 산업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2050년 세계 수소 경제 규모가 2조5000억달러(약 3000조원)에 달하고, 일자리는 누적 기준 3000만개 이상을 창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시장 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기존 5% 미만인 수소 에너지 소비 비중이 2025년 25%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존 에너지 생산·유통 여력을 활용하면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도 중동 주요 산유국이 수소에 투자하는 이유다. ADQ는 “ADNOC의 에너지 인프라는 동종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를 활용하면 손쉽게 수소 생산 여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와 아부다비 입장에선 수소에너지를 키우는 게 당장 석유사업에도 이득이다.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온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방식으로 청색수소 생산량을 늘리면 최종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어 석유를 좌초자산으로 보는 투자자를 설득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현대차-SK도 수소 공급 뛰어든다

현대차그룹과 SK그룹도 수소 사업 확대에 협력했다. 수소 전기차 1500여대 공급과 수소 및 초고속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한국판 수소 위원회(K-hydrogen Council) 설립 추진 등을 논의했다.

양 그룹은 수소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나선다. 우선 SK그룹 사업장에서 운영 중인 차량 1500여대를 현대차가 생산한 수소전기차로 점진적 전환할 예정으로, 수소카고트럭(22년 예정)과 수소트랙터(24년 예정) 등 수소상용차를 현대차그룹이 제공하고 SK그룹이 활용하는 방안 등을 협의했다.

수소 및 초고속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에도 힘을 모은다. 오는 21년 말까지 인천·울산 지역의 물류 서비스 거점인 SK내 트럭하우스에 상용차용 수소충전소를 각 1기씩 설치하며, 전국의 SK 주유소 등에 수소 충전소를 설치하기 위한 구체적 협력 방안도 지속 협의할 계획이다.

또한 SK 주유소 등에 전기차 급속 충전기(200kW급)를 설치하는 방안도 협의하는 등 친환경차 충전 인프라 확충을 위한 협력을 지속한다.

한편, 이날 현대차그룹은 같은 날 해외 첫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기지 첫 삽을 뜨기도 했다. 중국 내에 최초로 세워지는 대규모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전용 공장으로, 글로벌 수소 사업 본격화 및 수소 산업 생태계 확장을 위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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