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유독 선거 소식이 잦았던 해다. 특히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J.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이달 중 취임을 앞두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해에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지속가능성 전문 미디어인 코퍼레이트나이츠(Corporate Knights)는 ‘2025년 지속 가능한 금융 세계에 대한 7가지 전망’을 내놓았다.
1. 美 지속 가능 투자자들, 세 갈래 압박에 직면할 듯
트럼프 제47대 대통령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지명한 폴 앳킨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회의론자로 꼽힌다. 그는 증권 규제를 간소화하려는 성향을 지녔으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추진된 ESG 친화적 규제를 되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첫 번째 표적은 바이든 정부의 SEC 지침이다. 이 지침은 주주 활동가들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환경·사회 문제를 제안하기 쉽게 만든 것이 핵심이다. 앳킨스는 이를 뒤집고,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면 ESG 관련 주주 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공화당 우위의 의회까지 가세해, 기업이 주주 제안을 폭넓게 거부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앳킨스는 또 미국 상장사에 스코프1·2 배출량 공개를 의무화한 SEC 규정 역시 철회할 전망이다. 다만 기후 공시 규정이 이미 캘리포니아와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어, 이 같은 역주행의 파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사업을 벌이는 약 3000곳의 미국 기업은 CSRD(기업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에 따라 기후 공시 의무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금수탁자가 투자 결정에서 ESG 요소를 고려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바이든 노동부 규정도 뒤집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ESG는 재무적 위험과 수익률 평가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법적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이 사안은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2. ESG 주주 제안, 건수·지지율 모두 줄어들 듯
주주들이 ESG 현안을 놓고 협력하는 움직임은 2025년 들어 한층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에 대한 기후 압박을 주도했던 클라이밋액션100+(CA 100+) 같은 주주 네트워크의 힘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점차 수그러들 전망이다. 실제로 2024년에는 프랭클린 템플턴·누빈·골드만삭스 자산관리·얼라이언스번스타인 등이 이 네트워크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모닝스타 집계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ESG 결의안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가파르게 늘었으나 지지율은 2021년 37%에서 2024년 27%로 뚝 떨어졌다. 이는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 등 3대 자산운용사의 지지 후퇴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3. 장기 ESG 투자자들 “흔들림 없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관점에서 ESG를 내재화한 자산운용사·펀드·기관투자가 등은 상당수가 지속가능투자 기조를 유지하려는 분위기다. 미국지속가능투자포럼(US SIF) 설문조사에서 이들 가운데 50%는 지금 수준을 이어가겠다고 했고, 29%는 활동을 다소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10%는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공화당 주도의 일부 주(州)는 “연금기금 운용사로서 ESG 정책을 내세우는 곳은 배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장악한 주나 유럽 고객들로부터 기후·ESG 목표 준수를 압박받는 대형 운용사들도 많아, 전체 추세까지 뒤흔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US SIF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미국 내에서 지속가능 투자 자산은 6조5000억 달러(약 9539조원)로, 미국 전체 투자 자산의 12%를 차지한다.
4. 단기 투자자들, 지속가능펀드 시장에 다시 눈 돌릴 듯
장기적 ESG 전략에 비해 단기 수익을 노리는 소형 기관·개인투자자들은 한동안 지속가능펀드 시장에서 발길을 뺐다. ESG 뮤추얼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는 2021년 4분기에만 1600억 달러(약 235조원)의 자금이 몰렸지만, 2022년 이후 급감했다.
그러나 2025년에 이르면 이런 자금 유출이 바닥을 치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장기 금리가 그린본드와 기후 친화적 종목 투자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유럽 투자자들 역시 ESG 펀드 공시 규정에 익숙해지면서 관련 펀드로의 자금 유입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5. 유럽, ESG 공시규정 ‘단순화’ 하되 ‘폐기’는 없을 전망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기업과 금융부문의 복잡한 ESG 공시 의무를 단순화하겠다는 개편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보수 성향이 강해지면서 “ESG 공시 규제를 대거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이미 수천여 기업이 엄격한 규제 요건에 맞춰 인력과 자원을 투입한 상황을 완전히 뒤집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EU 역시 미국식 ‘ESG 뒤집기’ 대신, 핵심 지속가능성과 연계된 공시 의무를 간소화·재편하는 선에서 타협을 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6. 캐나다, ‘전환 투자’ 주도국가 될까
캐나다는 2025년 중립적 위원회를 세워 녹색·전환투자의 기준을 정하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펀드·자산운용사 등이 공식적으로 ‘녹색·전환 투자’라고 선언할 수 있으려면 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가장 큰 쟁점은 액화천연가스(LNG) 인프라 같은 사업이 ‘전환(Transition) 라벨’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2024년 캐나다 연방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신규 가스 생산은 전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석탄 대체용 기존 가스 생산은 전환 라벨을 달 수 있지만, 지구 온난화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묶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분류체계는 캐나다가 ‘녹색 철강·시멘트’ 등 산업 분야 전환 프로젝트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해 화석연료 기반 전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7. 캐나다, 전 범위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화…실시 시점은 지연 전망
지난해 12월 캐나다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CSSB)는 캐나다 기업에 탄소 배출 전 범위(스코프1·2·3)를 보고하도록 하는 국제 회계기준을 수용하기로 했다. 스코프1·2는 사업장 운영과 에너지 사용에서 비롯되는 배출이고, 스코프3는 제품·서비스 최종 사용 단계 배출이 포함된다.
다만 이 규정에는 스코프1·2 보고를 2년 늦추고, 스코프3는 추가로 1년 더 유예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최종적으로 캐나다 증권관리위원회(CSA)가 이 권고안을 받아들여 ‘전 범위 탄소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앨버타주는 자국 석유·가스 산업이 캐나다 전체 배출량의 30%를 차지한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다른 주들이 이에 맞설 것이고, 2027~2028년경에는 캐나다 역시 유럽이나 다른 주요 지역과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CSSB의 판단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인한 ESG 후퇴 흐름이 현실화하더라도, 시장 전체가 한꺼번에 되돌아가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 평가다. 금융·산업계가 이미 ‘지속 가능성’이라는 흐름에 상당 부분 투자와 자원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미국 안팎의 제도적·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ESG를 둘러싼 변화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또 한 번 격동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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