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료 시스템은 가운부터 수술 기구까지 일회용품에 의존하고 있다.
4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호주 멜버른대학교 지속가능 보건의료(Sustainable Healthcare) 부학장 포브스 맥게인의 사례를 소개하며, 의료 산업의 일회용품 중독 문제와 이를 줄이려는 현장의 변화를 조명했다.
일회용품, 다회용품 세척 및 멸균 인건비 포함해도 더 비싸
맥게인 마취의로 근무하는 멜버른 풋스크레이 병원은 일회용 가운, 수술기구, 덮개, 트레이를 세탁해 다시 쓰는 방식으로 교체하고 있다. 그의 팀은 시간·동작 연구를 통해, 세척과 멸균 인건비를 고려해도 일회용품이 더 비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맥게인의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수술이라도 외과의 선택에 따라 폐기물 양은 크게 달라진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의 경우, 일회용 플라스틱과 PVC 폐기물 배출량은 의사에 따라 최대 두 배 차이가 났다. 스테인리스 기구에서는 일회용 제품 의존도가 최대 10배까지 벌어졌다.
그는 재사용 외과용품 도입과 PVC 의료기구 재활용을 추진했고, 병원 내 일상적인 진료 선택의 폐기물 영향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 결과 호흡기 튜브 교체 주기를 하루에서 일주일로 늘려 폐기물을 80% 줄이는 등 정책 변화도 끌어냈다.
그의 연구팀은 호주 보건연구기금 지원으로, 의사가 자신의 환경 영향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툴을 개발 중이다. 예일대 의료 환경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책임자 조디 셔먼은 “진정한 전환은 의사가 약, 장비, 진단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2026년 개관하는 신규 풋스크레이 병원은 수술실 환기시스템이 사용 시에만 높은 공기 교환율로 전환되도록 설계됐다. 또한, 이 병원은 호주에서 처음으로 이산화탄소 대비 온난화 잠재력이 약 300배 높은 마취 가스인 아산화질소의 배관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약제나 소형 휴대용 실린더로 대체될 예정이다.
의료 산업은 세계 5위 배출국 수준
의료 산업은 가장 자원 집약적인 산업 중 하나로, 병원에는 일회용 플라스틱과 장비, 에너지 다소비 기계들로 가득하다. 전 세계 의료용 플라스틱 산업은 2030년까지 870억달러(약 120조8865억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의 경우 병원이 국가 배출량의 약 7%를 차지하며, 미국은 8.5%에 달한다. 전 세계적 의료 부문이 하나의 국가라면 일본과 캐나다를 제치고 다섯 번째로 큰 배출국이 된다.
특히 코로나19는 의료 폐기물 관리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보호구 사용 급증은 폐기물 처리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고, 일회용품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1년 말까지 백신 접종으로 발생한 주사기와 바늘 폐기물이 14만4000톤, 진단키트 화학폐기물은 73만1000리터에 달했다.
일회용품은 안전하다는 인식은 수십년간 의료 산업을 지탱해왔고, 이는 화석연료 기반의 글로벌 공급망을 키워냈다. 미국 의료시설은 매년 590만톤의 폐기물을 내놓는데, 이 중 약 30%가 플라스틱이다. WHO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의료 폐기물 감축은 계획, 재정, 조달, 진료 전 과정에 스며들어야 한다”며, 의료 폐기물 감축을 전 의료 시스템의 의무로 강조했다.
변화는 현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공급업체에 탄소발자국 공개를 요구하며 2045년까지 넷제로를 선언했고, 스웨덴은 폐기 대신 재사용 및 재활용을 우선하는 순환형 의료 공급망을 시험 중이다. 의료 부문의 환경 영향 연구도 본격화되고 있다. 예일대 연구진은 마취가스의 탄소배출량을 산출했고, 맥게인 팀은 100여개 의료품목의 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