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에너지 가격 안정과 공급 안보 강화를 위해 회원국 간 전력망을 대폭 확충하는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10일(현지시각) 연례 정책연설에서 유럽 전력 인프라의 8개 핵심 병목 지점을 지정하고 단계적 해소 계획을 발표했다.
EU, 전력망 병목 해소 전략 발표…에너지 자립 강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유럽의회에서 열린 연례 정책연설에서 "외레순 해협부터 시칠리아 운하까지 8개 핵심 병목 지점을 확인했다"며 "병목현상을 해결하여 유럽인들에게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원장의 연례 정책연설은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과 비슷한 성격으로, 행정부 수장이 지난해 성과와 향후 계획을 직접 제시하는 EU 최대 정치 행사다.
이번 이니셔티브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불안, 스페인·포르투갈 대규모 정전 사태, 그리스 등 동남유럽의 전력 가격 급등에 대응하는 종합 전략으로 제시됐다. 집행위원장은 "유럽이 에너지 분야에서 자주권을 가져야 한다"며 에너지 자립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댄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전력망 연결이 부족하면 가격 안정화에 한계가 있다"며 "올해 스페인·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정전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연결망이 촘촘할수록 정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U는 2030년까지 회원국들이 전력 수요의 15%를 역내에서 수입하거나 수출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2020년 설정했던 10% 교역 목표를 상향 조정한 것이다. 다만, 상당수 회원국이 기존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상태여서 대규모 예산 확보와 회원국 간 정치적 조율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베리아-프랑스 연결 최우선…정치·경제적 갈등 변수
집행위가 지정한 8개 병목 중 최우선 과제는 이베리아 반도와 프랑스 간 전력망 연결 확대다. 유럽위원회에 따르면 스페인의 EU 전력망 연결률은 현재 2%에 불과해 포르투갈과 함께 유럽 대륙으로부터 사실상 고립된 '에너지 섬' 상태에 놓여 있다. 포르투갈 마리아 다 그라사 에너지 장관은 지난 6월 대규모 정전사태를 계기로 집행위가 두 권역 간 전력망 연결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력 촉구했다.
나머지 7개 과제는 ▲키프로스의 유럽 전력망 편입 ▲발트해 연안국 연결 강화 ▲발칸·동부 인접국 공급 개선 ▲북해 해상풍력 허브 구축 ▲동남유럽 가격 안정·안보 강화 ▲북해-지중해 수소 회랑 ▲포르투갈-독일 수소 회랑이다.
현지 미디어 유랙티브는 10일(현지시각) 해당 프로젝트들을 실행하는 데 난항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유랙티브에 따르면, 이베리아 반도와 프랑스 연결은 프랑스 원자력 업계가 저렴한 스페인의 재생가능전력과의 경쟁을 우려하여 계속하여 반대하고 있다. 반대로 스페인은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키프로스 프로젝트는 고압 케이블이 이스라엘까지 연장되어야 하는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같은 연설에서 가자 사태를 이유로 이스라엘과의 무역을 부분적으로 중단하는 제재를 발표해 정치적 딜레마가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의 엘리자베스 크레모나 선임 애널리스트는 "이베리아 반도와 동남유럽에 초점을 맞춘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남유럽에 전력망 연계 없이 수소 회랑만 추진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