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의 상속세와 기부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됐다. 법에 규정된 상속세를 내는 게 당연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연말정산에서 조금이라도 공제를 더 받으려 애쓰고, 단 돈 얼마라도 환급 받으면 기분 좋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하물며 12조원이 넘는 역대 급 상속세라니. ‘회장님’의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에 증여하고 삼성물산이 법인세를 내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절세할지도 모른다는 일각의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1조원을 기부해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하고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를 지원하는 것도, 수조원에 달하는 국보급 예술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과거의 잘잘못을 따져 폄하하기보단 그 자체로 값진 일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은 25.6%(2019년)라고 한다. 봉사활동 경험은 16.1%로 더 낮다.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harity Aid Foundation)이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도 59위로 높지는 않다.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51.9%로 가장 많았고, 기부에 관심이 없거나(25.2%) 기부단체를 믿지 못한다(14.9%)는 답변도 많았다.
기부나 봉사활동은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니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지표 상으로만 보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기부에 인색한가 보다. 기부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점을 꼽았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월세가 밀렸는데도 여전히 기부를 한다는 가수 김장훈이나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기부한다는 어느 할머니, 전 재산을 기부하고 떠난 정진석 추기경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재산이 많은 사람들만 기부를 하는 건 아니다.
다른 분야 기부천사들은 미담으로 포장되지만, 유독 기업인들의 기부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를 실천하는 기업인들이 더 많겠지만, 과거 일부 재벌들이 이미지 쇄신이나 법적 이슈를 덮기 위해 공익재단을 설립하거나 기부의사를 밝힌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셜 워싱’(Social Washing)이다.
UN SDGs(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1~4번 과제는 가난과 배고픔, 질병 그리고 교육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회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겠지만, 당장은 직접적인 기부나 봉사활동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기부라는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기부의 역설이다. 원포원(One for One) 기부 모델로 잘 알려진 탐스 슈즈의 창업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신발이 없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아르헨티나 북동쪽 마을 곳곳에 1만 켤레의 신발을 기부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역의 영세한 신발 생산업체와 공급업체들의 매출이 급감하게 된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뜻하지 않게 부정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후 탐스슈즈는 기부하는 지역에 공장을 세워 신발을 생산하고, 기부 대상도 NGO를 통해 구매력이 낮은 취약계층을 선별해 기부한다고 한다.
우리 삶을 이루는 3가지 핵심적인 요소는 사랑, 일, 놀이다. 3가지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행복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여기에 ‘연대’(連帶)’를 하나 더 보탠다.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따위의 사회적 활동들이다. 기부나 봉사활동도 바로 이 연대에 포함된다. 나눔과 연대라고 하면 의미가 더 명확하다.
단지 재산이 많아서 하는 기부나, 시간이 남아서 하는 봉사활동은 없다.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는 사람에겐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더러는 소셜워싱 차원에서 하는 불순한 나눔과 연대도 있을 수 있고, 선한 의도가 뜻밖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눔과 연대도 나날이 발전하고 진화한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자선적 기부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나아가고 있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 생태계도 확대되고 있다.
흔히들 ESG를 강조하면서 이제는 착한 기업이 아니라 똑똑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투자자 관점의 개념인 ESG 과제를 제대로 이행하려면 나눔과 연대의 정신보다는 좀 더 냉철하고 현명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역대급 상속세와 기부를 보면서 기부의 규모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기부의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바람이다.
※하인사(hindsight)님은...

'하인사(hindsight, 필명)'는 뒤늦은 깨달음, 뒤늦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모두 인류의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의미이지요. 하인사님은 대기업 홍보팀에서 20년 가량 일했습니다. 회사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기획하면서 CSR 업무와 인연을 맺게 됐으며, 회사 CSR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ESG 이슈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고민했습니다. 2021년부터 <임팩트온>에서 【하인사의 이슈리뷰】와 【나의 그린이야기】를 격주로 연재, ESG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