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에 여성 임원 참여가 확대되면 현재 50~60대 남성 중심의 획일적 조직문화와 의사결정에 변화가 예상되고 기업의 여성 인력정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픽사베이
이사회에 여성 임원 참여가 확대되면 현재 50~60대 남성 중심의 획일적 조직문화와 의사결정에 변화가 예상되고 기업의 여성 인력정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픽사베이

 

올해 대기업들의 주주총회에는 여성 사외이사 선임이 큰 이슈였다. 2019년말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22년 8월 이전까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 멤버 가운데 최소한 1명은 여성으로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성임원 할당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200대 상장사 중 여성 등기임원이 단 1명도 없는 기업은 146곳으로 전체의 73%나 된다고 하니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본시장법 개정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올해 10대 그룹에서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67명 중 여성이 28명으로 41%를 차지했다. 주요 기업들은 여성 사외이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까지 벌였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할당’에 얽매여 자칫 자질이 부족한 이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사회에 여성 임원 참여가 확대되면 현재 50~60대 남성 중심의 획일적 조직문화와 의사결정에 변화가 예상되고 기업의 여성 인력정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인종·성별 다양성 높아지면 재무성과도 긍정적

여성임원 할당제로 이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지면 기업의 재무성과도 향상된다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2018년 실시한 연구에서 인종·성별 등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낮은 기업보다 혁신에 따른 수익이 19% 더 높게 나타나는가 하면, 세계적인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의 보고서에서도 다양성을 더 높게 유지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연간 수익률이 12% 더 높게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다양성 자체가 경쟁력으로 직결되고 경영성과를 향상시키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지만, 세계 각국이 이사회의 다양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강화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유럽에서는 지난 2003년 노르웨이를 필두로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에 이르기까지 여성임원 할당제가 확대됐고, 미국에서도 2018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법제화됐다. 특히, 미국의 나스닥은 최소한 여성 한 명과 소수계층을 대변하는 흑인, 라틴계, 성소수자(LGBTQ) 구성원 한 명을 이사회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지난해 말부터 추진 중이다.

투자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18년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올해 하반기부터 다양성을 충족하는 이사가 없는 기업에 대해선 기업공개(IPO) 업무를 맡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새롭게 선임된 여성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법조인이나 대학교수, 전직관료 등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에 있는 여성들이어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성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할당제’ 취지에 비추어보면 기업 내부의 여성 임원 승진이 더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가 발표한 ’2020년 국내 100대 기업 여성 임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사외이사를 제외한 여성 임원은 전체 임원 6932명 가운데 286명으로 집계된다. 2004년 13명에 불과했던 여성임원이 300명에 육박할 만큼 비약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전체 비중은 4.1%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 근로자 비율은 전체의 37.89%인데 비해 장차 여성 임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성관리자의 비율은 20.02%에 지나지 않는다. 즉, 남녀 근로자 성비는 6:4인데 관리자 수는 8:2라는 얘기다. 이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의 영향이 가장 크다. 지난해 기혼여성 857만명 가운데 경력단절여성은 150만명이며, 연령대별로는 여성관리자나 임원 후보가 될 나이인 30~40대가 85%를 차지했다.

정리해보면 여성근로자의 비중은 전체의 40%에 근접할 만큼 늘어났지만, 여성관리자는 20%에 지나지 않고, 여성임원은 채 5%도 되지 않는다.

 

능력 뛰어난 여직원도 조직헌신도는 낮다는 편견

여성 임원의 비율이 이처럼 낮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 최근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조직문화를 어떻게 구축하느냐는 기업의 생존이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조직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구성원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 자발적 참여와 같은 고전적인 덕목들이다. 구성원들의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라야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고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을 억압하는 수직적∙권위적∙집단주의적∙가부장적 조직문화가 과거 많은 우리 기업들을 지배해 왔다. 좋게 말하면 ‘조직우선주의’라고 할 수 있는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는 여성 인력들의 성장에는 커다란 질곡으로 작용한다. 지금은 주52시간 근무제와 코로나 19로 인해 사실상 와해되었지만, 그 전에만 해도 퇴근시간이 없는 장시간 근무, 상사와의 업무시간 외 네트워크, 회식의 강제적 참여 등 기업 내 비공식적 규범들이 조직문화를 지배해 왔다.

남자 직원들은 이런 규범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사와 자녀양육의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들은 이런 문화와 관행에 적응하기 어렵다. 야근이나 회식에 빠지기라도 하면 조직에 대한 헌신이나 충성심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기업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자기 성찰적 고백을 하자면, 대부분의 남성 임원들은 업무역량이 뛰어난 여성 직원을 평가할 때도 은연 중에 남자 직원에 비해 조직 내 친화력, 조직 헌신도, 충성도 측면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렇다기보단 이는 비공식적 규범에 여직원들이 남직원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대부분의 남성 임원이나 팀장들이 업무역량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비공식적 규범을 감내하고 그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직우선주의 문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친밀감과 일체감을 바탕으로 한 상호협력과 일사분란한 실행력을 통해 단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창의성을 제약하거나 의사소통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고, 개인생활의 과도한 희생으로 인해 결국에는 조직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의 감소에 따른 업무 몰입도 하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혁신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개인의 자율성이나 창의성이 보장되는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남성중심의 조직문화에서 탈피해 여성관리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여성 팀장, 임원도 늘어나 조직의 다양성이 높아지면 외부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빠른 조직 혁신을 이룰 수 있어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높일 수 있다. 


※하인사(hindsight)님은... 
 
하인사님의 캐리커처

 '하인사(hindsight, 필명)'는 뒤늦은 깨달음, 뒤늦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모두 인류의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의미이지요. 하인사님은 대기업 홍보팀에서 20년 가량 일했습니다. 회사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기획하면서 CSR 업무와 인연을 맺게 됐으며, 회사 CSR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ESG 이슈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고민했습니다. 2021년부터 <임팩트온>에서 【하인사의 이슈리뷰】와 【나의 그린이야기】를 격주로 연재, ESG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