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을 둘러싸고 흔들리고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정면 충돌하며 협상이 초반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17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각국 기후장관들이 금요일까지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막판 협상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개막한 이번 총회에는 전 세계 약 5만 명의 정부대표단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석했다. 파리협정 채택 10주년을 맞은 자리였지만, 핵심 의제인 화석연료 전환 논의는 1주차부터 진통을 보였다. 14일 벨렘 시내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이 기후대응 강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룰라의 화석연료 전환 요구에 산유국 반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개막식에서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날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7일 열린 행사에서도 “정의로운 전환과 적응 문제는 수년간 논의만 반복해왔다”며 “산림파괴를 중단하고 역전시키며, 이를 위한 재원을 동원하는 로드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니퍼 모건 전 독일 기후특사는 “이번 총회에서 화석연료 전환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며 “정치적 모멘텀이 충분하다면 장관들이 룰라 대통령의 요구를 반영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다수, 콜롬비아·칠레·케냐 등 중견 개도국, 군소도서국 등 약 60개국이 화석연료 전환 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를 포함한 개도국 협상그룹은 선진국이 기후재원 확대 약속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앙드레 코레아 두 라구 COP30 의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화석연료 로드맵에 대한 “상당한 저항”이 있다고 인정했다. 중국은 불공정 무역관행 논의를 요구하는 등 갈등 축이 더 넓어지는 상황이다. 현재 최소 40개국이 로드맵 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2023년 합의 이행 못한 채 표류
화석연료 전환 문제는 2023년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서 처음으로 공식 결정문에 포함됐다. 당시 각국은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에 합의했지만, 회의 직후 산유국들이 문구를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지난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COP29에서도 이를 구체화하려는 시도는 공개적 반대에 막혀 진전되지 못했다.
가디언은 화석연료가 30년 넘게 기후총회에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의 합의 구조가 산유국에게 사실상 거부권을 부여해온 결과라는 평가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컨센서스 원칙 때문에 소수 국가의 반대도 결정을 막을 수 있다.
선진국 협상단은 이번 COP30에서도 로드맵 반대 기류가 강해 최종 결과문에 포함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대신 자발적 참여국 중심의 연합을 구성해 별도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금요일까지 완전한 로드맵이 확정될 가능성은 낮고, 향후 1년 이상 논의를 이어가는 절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후재원·적응 논의와 패키지 딜 가능성
브라질 의장단은 여러 쟁점을 하나로 묶는 ‘무티랑 결정문’(mutirão decision·집단 노력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을 준비 중이다. 17일 공개된 협상 요약문에는 파리협정 10주년의 성과 인정, 협상에서 이행 중심의 전환, 기후위기 긴급성 대응 등이 담겼다. 화석연료 로드맵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명시적 표현은 피했다.
협상장 내부에서는 적응재원 합의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2021년 합의된 적응재원 배증 목표 약 400억달러(약 58조원)가 올해 말 만료되는 만큼, 향후 10년간 더 높은 목표 설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선진국이 재원 문제에서 양보할 경우 개도국의 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룰라 대통령은 20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벨렘을 다시 방문해 교착 국면 해소에 나설 예정이다. 코레아 두 라구 의장은 "다음 주 무티랑 정신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의장단은 1주차 동안 각국에 '사랑편지'를 요청하고 '치료 세션'이라는 이름의 회의를 여는 등 유연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세계자원연구소(WRI)의 데이비드 와스코 국제기후이니셔티브 국장은 이러한 브라질 측의 운영 방침을 두고 "(협상)당사국들에게 여유를 준 것이 도움이 된 측면도 있지만, 이 방식이 오래 지속되면 최종 합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