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한 장기 재직 사외이사는 절반 뿐
무력화 시키려는 꼼수들도 발견돼
지배구조 좋지 않은 기업에 긍정적 영향 끼칠 것

우려했던 사외이사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월, 사외이사 재직기간을 최대 6년(계열사 포함 최대 9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되며 기업들은 난색을 보였지만,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실제로 퇴임한 장기 재직 사외이사는 전체 대상자의 절반에 지나지 않아 새로 선임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한 회사당 평균 1명 남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개혁연구소는 6월 15일 ‘사외이사 장기 재직 현황과 재직기간 제한정책의 실효성 분석’을 발표하며 “시행령 개정에 따른 사외이사 구인란은 기우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금융업 상장사 1834개 중 3분의 1에 달하는 629개의 상장회사에 장기 재직 사외이사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올해 3월 주주총회 시점을 기준으로 퇴임한 장기 재직 이사는 782명 중 390명으로 절반에 그쳤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 사외이사부터 개정 시행령이 적용되기 때문에, 임기 만료일이 돌아오지 않은 장기 재직 사외이사는 사임할 필요가 없어서다. 경제개혁연구소장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 회사당 교체해야 할 사외이사는 평균 한 명으로, 신규 선임에 어려움을 겪는 건 특수한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주주총회 때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꼼수를 통해 재직기간을 늘린 사례도 발견됐다. 모바일 솔루션 업체인 유비벨록스의 경우 퇴임해야 하는 2명의 사외이사를 다시 사외이사로 추천하는 방식으로 재직기간을 늘렸다. 안건을 ‘자동 부결’시키면 새로 선임된 이사가 취임할 때까지 권리의무를 유지할 수 있어 임기 연장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관에 명시된 임원 임기를 상법상 최대 허용 임기인 3년으로 변경해 기존 장기 재직 사외이사의 임기를 연장한 사례도 발견됐다.

지배구조 등급별 사외이사 재직기간 현황(2020년 3월 30일 기준, 단위: 개, 년)/ 경제개혁리포트 '사외이사 장기재직 현황과 재직기간 제한정책의 실효성 분석'
지배구조 등급별 사외이사 재직기간 현황(2020년 3월 30일 기준, 단위: 개, 년)/ 경제개혁리포트 '사외이사 장기재직 현황과 재직기간 제한정책의 실효성 분석'

또한 지배구조 등급이 낮은 회사들에 이번 시행령의 실효성이 발휘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GCS)의 지배구조 등급별로 평균 재직기간 및 기업 내 최장기간 재직한 사외이사들의 평균 재직기간을 조사한 결과, 지배구조 등급이 한 단계 낮아질수록 재직기간이 길어지는 추세가 나타났다. 더불어, 지배구조 등급이 낮을수록 전체 사외이사 중 장기 재직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지배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의 경우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이 중요한데, 사외이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상법 개정안 시행 확정일 주변 누적평균비정상수익률(CAAR) 변화/경제개혁리포트 '사외이사 장기재직 현황과 재직기간 제한정책의 실효성 분석'
상법 개정안 시행 확정일 주변 누적평균비정상수익률(CAAR) 변화/경제개혁리포트 '사외이사 장기재직 현황과 재직기간 제한정책의 실효성 분석'

이번 시행령은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일 주변의 누적비정상수익률(CAAR)을 측정한 결과, 지배구조 등급이 낮고 사외이사 재직기간이 긴 회사일수록 제한 조치 이후 주가는 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보고서는 “장기 재직 사외이사의 존재가 주가와도 관련이 있는 만큼, 시장의 자율적 감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주주총회 소집공고와 사업 보고서에 사외이사의 계열사 재직경력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법무부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필요” vs 재계 “‘사외이사 대란’ 일어날 것”

사외이사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특성 회사 계열사에서 퇴직한 지 3년이 되지 않은 자는 해당 회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고 ▲한 회사에서 6년, 계열사 포함 9년을 초과하여 사외이사로 근무하는 걸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를 뒷받침할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 중 하나로, 올해 1월 29일 시행됐다.

법무부가 2019년 4월 금융위원회와 함께 ‘상장회사 등의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을 발표한 지 약 10개월 만이다. 당시 재계는 “장기간 재직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타당한 근거가 없고, 경영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다”며 반대했다. 또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상장사 사외이사는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개정안은 기업과 사업을 이해하고 건설적인 제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며 법무부에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또한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상법이 개정된다면 코스피와 코스닥을 포함한 556개 상장사가 총 719명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며 “29개 상장사가 3명 이상을 물갈이해야 하고, 116개의 상장사가 2명 이상을 모집해야 할 판”이라며 사외이사 모집 대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반면 법무부는 이에 대해 “올해 주주총회에서 신규 선임될 사외이사 수는 회사 한 곳당 1.3명꼴로 기존에 한 회사당 신규 선임돼 온 사외이사 수와 큰 차이가 없다”라며 예년에 비해 부담이 크지 않다고 반박한 바 있다.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