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곳 중 37곳이 공급망 내 인권 보호 노력 미흡 
월마트 46점, SK 하이닉스 14점, 샤오미 0점... 공급망 리스크평가·거버넌스·모니터링 성과는 높은 반면, 노동자 고충 처리·채용 등 인권 성과는 낮아

영국의 공급망 평가기관인 ‘노더체인(KnowTheChain)’에 따르면,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의 공급망 내 노동자 인권 관리 노력이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더체인은 2016년 이후 2년 마다 거버넌스·리스크 관리·구매·채용·모니터링 등 다양한 평가 항목을 기준으로 기업의 공급망 관리 능력을 평가한다. 올해에는 '유엔의 비즈니스 및 인권지침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채택했으며 7가지 주제에 대해 공급망 내 강제노동 퇴치를 위한 노력을 평가했다. 

노더체인의 2020 ICT 벤치마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ICT 대기업 49개사 중 37개 기업, 약 75%가 50점 미만의 하위 점수를 받았다. 월마트(46점), 노키아(45점), 아마존(43점), 소니(36점) 등이 이에 포함되었다. 최저점수를 받은 기업은 닌텐도(23점), SK하이닉스(14점), 캐논(14점), 파나소닉(13점), 브로드컴(10점)이며, 샤오미는 0점을 받았다. 이들의 총 평균 점수는 30점에 그쳤으며, 이번 결과는 유엔의 인권지침 원칙에 따라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증명했다. 

전 세계 ICT 대기업 대상 공급망 인권 관리 평가 결과/노더체인

 

공급망 인권 정책 공시와 실제 이행 격차 커

노더체인은 상당수 기업이 공급망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정책 공시와 이행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총 77개 문항 중 기업들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영역은 노동자 인권 향상∙강제 노동 퇴치 등과 관련된 ‘인권 관리 대응’이었다. 구체적으로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기업과 협상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노력이 가장 부족했던 분야는 '노동자 의견청취'와 '노동자의 채용 수수료 지급 금지'였다. 우선 근로자 의견 청취의 경우, 49개 기업 중 35개 기업이 협력업체 근로자를 위한 고충처리 메커니즘을 공개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메커니즘에 대한 세부사항을 공개한 기업은 7개에 그쳤으며, 노동자들이 이 메커니즘을 실제 사용하고 있다고 공개한 기업은 5개뿐이었다. 무엇보다 49개 평가 대상 기업 모두 ‘공급망 내 결사 자유 및 단체 교섭 지원’에 대한 노력에 대해서는 0점을 받았다. 

또한 평가 대상 중 70% 이상(49개 중 36개)이 공급망 내 노동자들이 채용 수수료를 지급할 것을 금지하는 방침을 공시했다. 하지만 실제 이에 대한 증거를 공개한 비율은 27%(49개 기업 중 13개)에 불과하다. 정책 이행 비율이 낮다는 것은 여전히 공급망 내 강제 노동이 만연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평균 실적(18%)을 기록했다. 보고서는 말레이시아 ICT 공급망의  강제 노동 사례 현황을 보여주었고, 최근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는 중국 공장에서 ICT 기업들이 부품을 조달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전 보고서에는 말레이시아 전자 분야 이주 노동자들의 3분의 1이 강제 노동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에 ICT 기업들은 스마트폰, 컴퓨터 등 수백 개의 부품을 조달 받기 때문에 복잡한 공급망의 투명성을 높이고 관련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공시ㆍ거버넌스 부문 성과는 우수

본 평가 결과에서 HP와 삼성은 모두 총 6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텔과 애플은 68점을 받았으며 델(63점)과 마이크로소프트(59점)가 그 뒤를 이었다. 상위 5개 기업들은 모두 채용 업체에 직접 수수료 및 채용 비용을 지급하고 있으며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공개하고 있다. 

특히 HP는 채용 시 법적 규정, 채용 수수료 지급 통로 등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매핑을 공시했고, 근로자 채용 관련 수수료 상환에 관한 공급업체 지침을 개발했다. 또한 결사의 자유권과 단체교섭권에 관한 공급자 요건을 현지법 준수로 제한하지 않는 유일한 기업이다.

전반적으로 기업 성과가 더 높은 영역은 공약(commitments)과 거버넌스(governance)였다. 일부 기업을 제외한 모든 기업(45개)이 강제노동 퇴치 공약 및 공급자 행동강령을 공개하고 있다. 상위 5개 기업은 협력사 교육, 공급망 내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협력사 역량강화, 협력업체 노동조건 모니터링 등 세부적인 노력을 공개했다.

공급망을 평가하는 항목 중 공헌&거버넌스, 추적성 및 리스크 평가, 모니터링 분야는 성과가 높지만 노동자 의견청취/고충처리 및 채용, 조달 분야는 낮게 나타났다/노더체인

 

세계 선두 기술 기업이지만 공급망 인권 점수는 下

평가 대상 49개 기업의 총 시장 자본 규모는 5조 달러 이상이다. 경제 규모와 자본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 및 공급망 내 인권 보호에 대한 노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보고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공급망 내 리스크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에 대한 대응 능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노더체인 프로젝트 책임자인 페릭타스 웨버(Felictas Weber)는 “(이번 평가 결과는) ICT 산업의 공급망 내 강제 노동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기업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위기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향후 기업들은 공급망 정책과 실행 간의 격차를 줄여야 하며, 공급망 내 노동 인권에 대한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이슈 관리에 대한 요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고, 전 세계 정부들은 인권 실사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검토 중에 있다. 공장 생산 중단, 열악한 근무∙생활 환경으로 인한 감염 위기, 이주 노동자 처우 등 공급망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대처하고, 더 나아가 공급망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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