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자금 조달 어렵고 소송 줄이어...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 중지
그리스, 2023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 폐쇄, 현재 짓고있는 발전소는 8년까지만 운영

좌초자산(stranded asset)을 아는지 모르겠다. 시장 환경의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조기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을 의미한다. 지난해 3월 영국 싱크탱크 카본 트레커 이니셔티브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석탄화력발전을 계속할 경우 '좌초자산'으로 인한 손실액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추정 손실액은 1060억달러(127조원)다. 참고로, 한국의 석탄발전은 주요 전력원으로 2017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43%를 차지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석탄발전소가 좌초자산이 되는 실제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23일 이소영 국회의원실이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 '그린뉴딜 시대, 신규 석탄화력 사업 이대로 좋은가'에 초대된 카트린 구트만(Kathrin Gutmann) 비욘드콜(Beyond Coal) 유럽이사는 유럽의 좌초자산 사례를 생생히 들려주었다.  

 

EU에서 석탄발전은 이미 좌초자산 인식

구트만 이사는 "지난 5년간 유럽의 석탄퇴출 움직임은 무엇보다 속도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현재 EU 28개 국가에서 가동중인 석탄화력발전소는 320개다(2016 기준). EU 각국은 최근 잇따라 탈석탄 로드맵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조기 선언하고 있다. 포르투칼은 종전 2030년이던 탈석탄 시한을 2021년으로 앞당겼고, 스웨덴도 2022년에서 올해(2020년)로 계획을 앞당겼다. 스페인 역시 2030년에서 2025년으로, 영국은 2025년에서 2024년으로 각각 탈석탄 시기를 앞당겼다. 그리스는 2023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를 퇴출키로 했다. 2038년까지 석탄발전이 남아있게 될 나라는 현재로선 독일 등 일부 동유럽국가뿐이다.  EU의 석탄발전량은 2018년 대비 지난해 24% 감소했다. 

구트만 이사는 "EU는 이미 143개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공식 발표했고, 180개소는 조만간 폐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아직 폐쇄 로드맵을 작성 중인 곳이 43개"라고 말했다. 구트만 이사는 또 "EU에서 석탄발전은 이미 좌초자산(stranded assets)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며 "최근 추가된 석탄발전소도 예정보다 빨리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건설중인 석탄발전소 중단

폴란드의 오스트로테카 C 발전소 조감도. 이 발전소는 건설중인 발전소가 중단된 사례로, 유럽에서 두 번째다./비욘드콜 
폴란드의 오스트로테카 C 발전소 조감도. 이 발전소는 건설중인 발전소가 중단된 사례로, 유럽에서 두 번째다./비욘드콜 

폴란트 오스트로테카(Ostroteka) C 석탄화력발전소가 대표적 좌초자산이다. 2009년 1GW 규모로 지어진 발전소는 2012년 자금 펀딩이 잘 안돼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그러다 2016년 주정부가 소유한 전력회사인 에네르가(Energa)와 에네아(Enea)가 협업을 통해 공사를 재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주인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ht)'에 의해 소송을 당했고, 이어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소송을 당했다. 좌초자산이 될 게 뻔한 석탄발전소에 투자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소송에서 클라이언트어스가 이겼다. 

에네르가와 에네아는 ▲외부 자금 조달의 어려움 ▲EU 그린딜로 인한 정책 지형 변화 등을 이유로 올해 2월 12억유로(1조7000억)의 발전소 투자를 중단했다. 그해 4월 에너지기업 PKN ORLEN에 의해 인수됐고, "석탄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가스 프로젝트로 전환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유럽에서 건설 중이던 석탄 발전소가 폐기된 것은 2015년 독일의 웨스트팔렌 D 이후 두 번째다.  

 

독일, 석탄발전소 2038년 혹은 그 이전 퇴출되거나 소송 줄이어 

독일 다트린 석탄발전소는 올해 가동을 시작했으나, 독일 주민들의 시위와 소송이 계속돼 곧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독일정부는 2038년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했는데, 그 시기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비욘드콜 
독일 다트린 석탄발전소는 올해 가동을 시작했으나, 독일 주민들의 시위와 소송이 계속돼 곧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독일정부는 2038년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했는데, 그 시기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비욘드콜 

지난 2015년 독일 함부르크 지역의 무어부르크(Moorburg)에 1.6GW급 석탄화력발전소가 세워졌다. 건설하는 데만 30억유로(4조1800억원)가 들었다. 하지만 이 발전소는 10억유로(1조4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독일정부에서 석탄 퇴출 로드맵이 그려지고 관련법이 정비되면서, 이 발전소는 2038년까지만 가동한 후 문을 닫아야 한다. 가동 예상연한보다 훨씬 빨리 닫게 되면서, 이 발전소의 스웨덴 오너는 본전도 못 건진 투자를 하게 된 셈이다.  

다트린 석탄발전소(사진)도 비슷한 사례다. 원래 2007년 착공해 2011년 가동하기로 했으나, 발전소는 올해 문을 열었다. 하지만 가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곧 문을 닫을 처지다. 독일 주민들의 시위와 소송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일정부는 기존 계획인 2038년보다 더 빨리 두 시설을 폐쇄하기 위한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2023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 폐쇄, 현재 짓고 있는 발전소는 2028년까지로 유예

그리스에서 건설중인 석탄발전소 프톨레마이다 V. 이 발전소는 2028년까지만 운영되고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비욘드콜
그리스에서 건설중인 석탄발전소 프톨레마이다 V. 이 발전소는 2028년까지만 운영되고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비욘드콜

그리스는 독일보다 더 적극적이다. 현재 그리스는 660MW(메가와트)급 석탄발전소 프톨레마이다(Ptolemaida) V를 건설 중이다. 하지만 이 발전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다. 8년까지다. 그리스 정부는 작년 9월 모든 석탄발전소를 2023년까지 퇴출시킨다는 '탈석탄 로드맵'을 발표했다. 현재 지어지고 있는 프톨레마이다 V는 예외를 적용해 2028년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 발전소를 가스 저장소를 전환키로 했다. 14억유로, 우리 돈으로 2조원에 해당하는 투자비용이 한 순간에 좌초자산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네덜란드는 2015년 2개, 2016년 한 개의 신규 석탄발전소를 건설했는데, 여기도 사정이 비슷하다. 2029년에 이들 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발전소 폐쇄와 에너지 전환에 따른 보상절차가 있지만, 네덜란드는 관련 보상 절차조차 진행하지 않는다. 이에 따르는 손실 규모가 40억유로(5조6000억 가량)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탈석탄 가속화 움직임 뒤엔 금융기관의 투자 중단 선언 

유럽이 탈석탄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파리협약과 기후위기에 관한 시급성 등 다양한 정책적 함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석탄이 재생에너지나 가스보다 경제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트만 이사는 "EU의 석탄발전 가격이 톤당 30유로로 오르고, 오히려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EU에서는 석탄발전에 가하는 강력한 저감 기준 등의 규제가 적용되고, 시민 사회가 탈석탄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반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석탄발전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지원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유럽의 금융기관이 더이상 석탄발전소에 돈을 대지 않기 때문이다. 구트만 이사는 "유럽 금융기관들이 더 이상 석탄발전에는 신규 자금지원을 하지 않는다"며 "BNP파라바의 경우, 전력ㆍ가스회사들에게 2021년까지 파리협정에 맞는 탈석탄 계획을 세우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현재 60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고,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중이다. 한국전력 이사회는 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와 9, 10호기 석탄화력발전사업에 투자하는 계획을 통과시켰다.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 사업도 이사회에 상정을 준비중이다.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공적 금융기관은 국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12조원에 달하는 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구트만 이사는 "석탄발전에 대한 투자는 향후 골치거리가 될 것"이라며 "아마 한국에서도 향후 5년, 10년 안에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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