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P, 1000개 이상 비상장기업에 표준화된 환경공시 요청
중견, 중소기업 등 비상장기업에도 탄소 공개 확대 목적
블룸버그, BP의 알래스카 유전 뒷이야기 심층 리포트

세계 2위 석유화학기업 BP는 2050년 탄소배출량 제로 달성을 위해 지난해부터 3건의 좌초자산 매각을 발표했다./BP
세계 2위 석유화학기업 BP는 2050년 탄소배출량 제로 달성을 위해 지난해부터 3건의 좌초자산 매각을 발표했다./BP

 

지난해 7월 BP는 알래스카의 석유 및 가스 생산부문 매각을 완료하며, “60년 알래스카 석유생산자로서의 지위를 끝낸다”고 발표했다. 거래 규모는 56억달러(6조5000억원)였다. 이를 인수한 회사는 힐코프에너지(Hilcorp Energy)였다. BP는 자신들의 지속가능보고서에서 800만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없앴지만, 힐코프 에너지는 오히려 BP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탄소 플러스가 됐다. 

 

좌초자산 매각으로 탄소 중립 사례 늘자, 비상장기업도 공시 압박

BP 사례처럼 ‘넷제로’를 위해 좌초자산을 매각해버리는 사례가 늘자, 투자자들이 경고장을 날렸다.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는 8일(현지시각) “M&G, 뉴베르거 베르만, 누벤 등 2조3000억 달러(2680조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CDP를 통해 1000개 이상의 비상장 기업에 표준화된 환경공시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CDP와 이들 투자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고탄소 자산이 점점 소규모 민간사업자들에게 매각되면서, 공시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ESG 정보를 어떻게 투명하게 드러낼 것인가이다.

CDP는 비상장 기업들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최초의 표준화된 환경 공개 설문지를 만들었다. 이른바 ‘프라이빗 마켓 파일럿(private market pilot)’인데, 이 목표는 중견·중소기업 등 비상작기업의 환경에 관한 정밀조사와 정보공개 확대다.

CDP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ESG 투명성은 점점 증가하며 2020년 기록적인 공시율을 자랑했지만 민간부문과 비상장부문은 이와 정반대 흐름을 보인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사모(private equity) 펀드의 순자산 가치는 상장기업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증가해, 상장기업이 2.8배 증가한 데 비해 사모펀드는 8배나 늘었다.

CDP는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 모두에서 일관되고 비교 가능한 데이터를 위해, 또 고탄소 자산을 비상장기업에 매각하는 등 ‘배출 유출’을 방지하는데 이 같은 정보 공시는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ESG 공시 표준(가이드라인) 중 하나인 CDP(Carbon Disclosue Project)
ESG 공시 표준(가이드라인) 중 하나인 CDP(Carbon Disclosue Project)

 

'석유 거인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블룸버그의 심층 리포트

CDP가 이렇게 ‘매서운 칼날’을 들이대는 건 이유가 있다. 지난 4월, 블룸버그의 심층 리포트에 그 힌트가 있다. 제목은 ‘석유 거인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What Happens When an Oil Giant Walks Away)’. 이 리포트는 ‘지속가능성을 향한 청정에너지 리더가 되겠다’는 BP의 탄소중립 전략의 어두운 뒷면을 집중 조명했다. 

블룸버그가 보도한 심층리포트 '석유 거인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보도./블룸버그 캡처
블룸버그가 보도한 심층리포트 '석유 거인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보도./블룸버그 캡처

 

BP는 지난 3월말 “스코프1(Scope1, 직접배출), 스코프2(Scope2, 전력구매) 온실가스 배출량을 16%까지 낮췄다”고 발표했다. 알래스카 유전 매각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알래스카에선 오히려 BP가 있을 때보다 석유생산량이 더 늘었다. 유전의 주인만 ‘힐코프 에너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알래스카 유전의 온실가스 정보를 더욱 더 알기 어렵게 됐다. 그 어떤 투자자도 '힐코프 에너지'의 탄소중립을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휴스턴의 억만장자 제프 힐데브란드가 소유한 ‘힐코프 에너지’는 탄소중립 시대의 버려진 자산들, 즉 아무도 원치 않는 석유와 가스 자산을 매입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블룸버그는 “힐코프는 10년 전에는 쉐브론으로부터 유전 현장을 인수하기도 했고, 유전에서 마지막 한방까지 짜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독수리로서 명성이 자자하다”고 보도했다.

알래스카 주정부 기록에 따르면, 힐코프는 2015년부터 지난해 중반까지 BP보다 3배나 많은 위반과 여러 사건을 겪었으며, 힐코프 및 계열사들의 실수로 인한 원유 유출사고가 30%나 더 많았다. 블룸버그가 기후 연구그룹에게 의뢰해 제3자 모델링을 통해 얻은 결과에 따르면, 이곳의 생산량은 4.7% 증가했다. 이는 8.2%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 것과 같으며, 이는 내연기관차 10만8000대에 달하는 양이라고 한다. 

블룸버그는 BP가 매각한 정유, 가스사업 3개의 매각 파트너를 분석하며 결국 이러한 행위가 ‘폭탄 돌리기’임을 비판하고 있다. 블랙록의 래리핑크 회장 또한 올초 기후정상회담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좌초자산을 매각해버리는 것은 ‘그린워싱’”이라며 경고한 바 있다. 투자자들의 압박으로 석탄, 석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은 결국 이들을 더 추적하기 어렵게 만들고, 최근에는 NGO와 학자들이 인공위성까지 이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적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탄소중립’의 역설이다.

CDP는 이제 모든 곳에 햇볕을 쪼이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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