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된 4건은 그대로, 필리핀은 LNG발전 전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업은 중단 검토

삼성물산의 탈석탄 선언에 이어, 한국전력(한전)도 결국 해외 석탄발전 사업을 접는다고 발표했다. 

한전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신규 해외 석탄발전 사업 계획을 접고, 앞으로 해외 사업 추진 시 신재생에너지, 가스복합 등 저탄소·친환경 해외 사업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투자한 금액에 대한 회수 방안은 마련되지 않아, 이에 대한 손실을 어떻게 만회할 지 주목된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은 철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전은 “현재 진행 중인 4건의 해외 석탄화력 발전 사업 중 인도네시아 자바 9호기·10호기와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 사업은 그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계약까지 이뤄졌기 때문에 사업을 접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상대국 정부 및 사업 파트너들과 관계, 참여하는 국내 기업들을 고려했을 때 프로젝트를 접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내부 검토 단계인 필리핀 팡가시난 사업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을 추진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타바메시 사업은 중단까지 검토한다. 

한전 측은 “2050년 이후 한전이 운영하는 해외 석탄발전 사업은 모두 종료될 것”이라며 “이미 운영 중인 해외 석탄발전 사업도 국제 환경 기준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친환경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올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이런 방침을 반영한 친환경 발전 방향을 담았다. 또 환경오염, 인종차별, 지배구조 투명성 등 재무상으로 보이지 않는 경영성과를 고려하는 ESG 경영도 도입한다. 이를 위해 한전 이사회 산하에 ‘ESG 추진위원회’도 두기로 했다. 

 

한전, 꾸준히 투자자 압박 받아와

거센 압박에 드디어 ‘응답’

한전은 석탄발전 투자로 글로벌 투자자들과 여권, 환경단체로부터 꾸준히 압박을 받아왔다. 올해 4월, 한전은 연간 8500조원을 움직이는 글로벌 투자의 ‘큰손’인 블랙록으로부터 ‘투자 중단 경고’를 받았다. 블랙록은 “석탄 투자는 기후변화에 역행하는 계획”이라며 ‘석탄에너지 투자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거기다 지난 1분기 투자 기업의 ESG를 평가한 후 한전을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기업’으로 분류하며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도 한전을 투자 금지기업으로 지정했다. 전체 매출액의 30% 이상이 석탄인 경우 투자를 철회한다는 원칙 때문인데, 한전의 매출액 중 30% 이상이 석탄 투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전의 상반기 매출액은 8200억원, 이 중 석탄 발전 이용률은 55.8%를 차지했다. 한전은 “석탄 발전량이 낮아져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투자금 회수’ 경고는 계속됐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아시아투자자그룹(AIGCC)도 한전의 해외석탄사업에 대한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 UBS, APG, 영국성공회 재무위원회,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자산운용이 한전에 직접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명에 참여한 글로벌 투자자는 총 16곳이며, 이들의 자산규모(AUM)는 약 7178조원(5조8600억달러)에 달한다. 

네덜란드 연기금(APG)는 아예 투자금을 회수했다. 네덜란드 공적연금은 “탄소 배출 감축 노력에 진전이 없다”며  6000만유로(약 791억원) 규모의 한전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서도 비판은 거셌다.  파리 기후협약 당사국으로서 세계적인 탈석탄 움직임에 역행한다는 이유였다. 지난 7월에는 아예 한전 해외 석탄 사업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국회에 올라왔다. 이번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석탄발전에 대한 질의가 꾸준히 이어지자, 김종갑 한전 사장은 결국 “한전과 발전 자회사가 주도해서 신규 해외 석탄발전 개발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반쪽짜리 선언… 좌초자산 어떻게 회수할까?

꾸준한 투자자 압박에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환경단체들은 반쪽짜리 선언이라며 비판했다. 기존 투자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윤세종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기존에 진행하던 석탄사업에 대한 완전한 중단과 철수를 선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전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여전히 재무적, 환경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이 한전의 '석탄 투자' 반대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이 한전의 '석탄 투자' 반대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환경운동연합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이미 석탄발전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KDI의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사업 예비타당성조사 (재심의) 보고서’에 따르면, KDI는 이 사업의 운영기간 25년 동안 유입되는 수익과 유출되는 비용을 모두 현재가치로 환산했을 때 사업 전체의 가치는 -4358만달러(약 530억원), 한전의 손익은 -708만달러(약 85억원)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1차 예비타당성조사 때도 883만달러(약 106억원)의 손실이 예측된다고 밝혔다. 한전의 또 다른 해외 석탄발전 투자인 베트남의 붕앙-2 사업도 -7900만달러(약 958억원)의 손실 사업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장기적인 회수방안을 내놓진 않았다. 현재 추진 중인 석탄발전 사업(베트남 ·인도네시아·남아공·필리핀)의 사업 투자금은 약 26억달러(2조9486억원)에 달한다.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소의 경우 총사업비 22억달러 중 2억달러(한화 약 2300억원)를,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의 경우 35억달러 중 5100만 달러(한화 약 610억원)를 투자한다. 남아공 타바메시 석탄화력 발전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 1억4000만달러 (약 1600억원),  필리핀 수알2 석탄화력발전에 20억 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한전 자회사가 석탄화력발전에 투자한 금액을 더하면 훨씬 큰 규모다. 

윤세종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금융기관과 대출 계약을 아직 하지도 않아서 철회할 시간이 있고, 가스나 재생에너지발전 사업으로 바꿔서 진행할 수도 있다"며 "베트남 롱안 1·2호기 사업이 석탄에서 가스로 전환됐듯이, 자바 9·10 사업과 붕앙 2 사업도 매몰 비용이 커지기 전에 LNG 전환을 추진하거나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업 철수를 해야 하고, 마땅치 않다면 LNG로의 전환이라도 추진해야 투자금액을 회수라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영국 금융 싱크탱크인 '카본 트래커'에 따르면 한국이 현재처럼 석탄발전을 계속하게 될 경우 손실액은 106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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