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 오피니언리더 설문 결과 기후위기 인식 높아
유럽 각국 중앙은행, 기후 위기 금융포트폴리오 마련
IMPACT ON 창간을 준비하면서, 글로벌 미디어 소식과 각종 자료를 보다보니 현 시점의 트렌드가 어렴풋이 잡힌다. 가장 핵심적인 이슈 한 가지를 꼽으라면,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과 미국 정책과 금융기관, 기업들의 대응이다. 선언적인 회의와 어젠다가 무성했던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다. 필자가 속해있는 '사회적경제언론인포럼'은 지난 7월초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과 함께 토론모임을 가졌다. 주제는 '기후 위기와 불평등에 맞설 그린뉴딜과 전망'이었다. 김 소장의 발제 중 놓치면 안 될, 중요한 키워드를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기후 위기= 가장 덜 공감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닥쳐올 위기
올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약 10년 후에 발생할 위험에 대한 조사였다. 위쪽 표를 보면, 가로축은 발생가능성이 높은 여부, 세로축은 파괴력(영향력)의 측면이다. 전염병은 발생가능성은 낮은데 파괴력은 높은 것으로 나온다. 당시만 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전염병이 몇 개월 후 전 세계를 초토화시킬지. 표의 오른쪽 상단을 보라. 기후대처 실패, 극단적 기후, 생물다양성 소실, 자연재해, 인간이 유발한 환경재앙 등 5가지다. 공통점은 모두 기후, 환경과 관련돼있다는 것이다.
근래 몇 년 사이 전염병이 확산되는 가장 큰 원인이 기후위기와 관련돼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세계 공중보건학계의 거인인 폴 엡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기후위기 현상의 하나인) 엘리뇨는 인도 펀자브 지역과 베네수엘라에는 말라리아를, 태국에는 전염성 뎅기열을, 방글라데시에는 콜레라를, 페루에는 설사병을, 미국 남서부에는 한탄 바이러스 폐증후균 등을 확산시킨다.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이 모든 질병을 확산시키는 것은이 바로 긴 가뭄, 비정상적인 폭우 혹은 온난화와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기후온도가 1도만 높아져도, 0~10도 사이에 분포됐던 전염병은 30도 이상으로 전파될 수 있다. 결국 코로나 위기는 기후 위기와 궤를 같이 한다. 기후위기는 "가장 덜 공감된, 그러나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하게 닥쳐올 가장 심각한 위기"다.
선진국 금융, 기후 위기에 대비한 금융 포트폴리오 준비
글로벌에서는 금융 부문에서 기후위기를 매우 심각한 요소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BIS(국제결제은행)은 '그린스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는 '블랙스완'이라는 책에서 유래했다. 주식시장은 붕괴되기 직전까지 호황이기에 전혀 붕괴를 인식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기후위기는 녹색의 블랙스완이라는 의미다. 불확실성 측면에서 증권, 부동산 시장이 폭발하는 형태와 비슷하다.
유럽 각 나라의 중앙 은행은 지금 기후위기가 터졌을 때 투자한 자산이 순식간에 사라질 위험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해변가에 투자했다가, 기후위기 때문에 통째로 건물이 파괴되는 걸 상상해보라. 보통의 투자자산 리스크 헤지(Risk hedgeㆍ투자 위험에 대한 대비책)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지난 5월에 BIS가 두 번째 페이퍼를 냈다. '코로나 19가 기후위기의 예고편 정도로 보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기후위기에 대비한 금융포트폴리오를 갖고 갈 정도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
위의 사진은 지난 1월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기사 중 일부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아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유전, 가스에 투자한 화석연료의 84%를 캐내지 말고, 묻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좌초자산, 즉 포기해야 하는 자산이라고 부른다. 온도 상승폭을 2도 아래로 유지할 경우, 59%의 화석연료를 땅에 묻어둬야 하고, 온도 상승폭이 3도 아래일 경우 4%를 좌초자산으로 남겨야 한다. (참고로, 2015년 전세계 200여 국가들은 파리에서 기후협약을 맺었는데, 산업혁명 이전보다 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도 아래로 유지하되, 1.5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선진국에서 석탄금융을 금지토록 하는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 후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 뉴딜을 발표하면서 기대를 모았는데, 한국전력이 인도네시아 석탄화력발전소 투자한다는 소식이 나와서 유럽 사람들이 당황해했다고 한다.
경제성장과 그린 뉴딜, 해법은?
독립 평가기관인 저먼워치, 뉴클라이밋 연구소, 기후행동네트워크가 공동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지수 CCPI-2020에서 한국은 59위다. 탄소배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1인당 석탄소비량은 1.73TOE로 호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탄소배출 역시 1998년 외환위기와 2014년 약간을 제외하면 감소된 적 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린뉴딜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제 점진적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시간은 끝났다"고 말한다. 전격적이고, 대규모적으로, 국가가 전면적인 프로젝트성으로 기후위기를 막지 않으면 안된다. 그린뉴딜의 주요 프로젝트를 쭉 나열하는 예전 방식으로는 안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과제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우선순위는 에너지>이동(모빌리티)> 도시(주거)>산업>생활 이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10년 내에 전기는 모두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은 26%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실제 발전량 기준으로 보면 2~3%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엄청난 기술혁신이 있었다. 블룸버그(BloombergNEF) 보고서의 'New Energy Outlook 2019' 에 따르면(상단 표 참조), 지난 2010년부터 태양광 패널은 88%, 풍력은 69%, 배터리는 85% 가격이 하락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적어도 각각 동일한 성능이라면 반값 정도로 가격이 추가적으로 하락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2010년 배터리팩 가격은 1183달러/kWh(142만원)이었으나, 2019년 현재 156달러(18만원)로 떨어졌다. 이 가격은 대체로 2023년(블룸버그) 또는 2025년(맥킨지) 안에 100달러(12만원)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이렇게 되면,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전기자동차가 가격우위가 만들어지는 셈이 된다. 전기차 가격의 40%는 배터리 가격 때문인데, 앞으로 배터리 시장은 글로벌 시장규모가 반도체 시장규모를 넘어설 것이다.
태양광도 1위에서 10위까지를 중국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최근 해남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 모두 중국 제품이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봤는데, 비난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비대면 사업한다고 줌(Zoom)으로 한다고 비난하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도 빨리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한국업체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초기 시장인데다 향후 얼마나 커질지 모른다.
p.s. 예전에 '기후변화'라고 불리던 용어는 요즘 '기후위기'라고 많이 쓰인다. 기후위기 해결책을 둘러싼 논의는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 사람들은 아예 관심을 잘 기울이지 않는다.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의 외침이 들려오면, 세상이 반짝 관심을 쏟는 정도다. 늘 그렇듯 세상이 금방 무너질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얘기하면서, 그래서 결론은 사람들한테 전기 아껴쓰고 텀블러 쓰라고 하니 맥이 빠졌다. '그걸로 해결되겠어?'라고 하나둘씩 생각하면, 결국 공유지의 비극이 돼버린다. 마을 공동체의 목초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최대한 많은 소떼를 목초지에 풀어놓아, 결국 그 목초지가 황폐해지는 것과 똑같은 논리다. 다행히, 금융과 기업의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소식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문명을 이뤄낸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인류는 놀라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는 위기이자 분명 새로운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