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음식의 플라스틱 용기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씻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플라스틱 재활용과 물 절약 중 무엇이 더 친환경일까?’

일회용기저귀와 천기저귀 논쟁도 비슷했다. 일회용기저귀가 환경에 나쁘다고 천기저귀를 쓰자는 주장에 천기저귀 씻느라 물낭비하고 상하수도 오염되는 것이랑 뭐가 더 나쁘냐는 반론이 나왔다. 

환경이나 기후변화엔 이런 것 투성이다. 태양광을 위해 산의 나무를 벤다면? 전기차를 위한 도로를 만드느라 산길에 터널을 뚫는다면? 무엇이 더 친환경이고 무엇이 덜 친환경인가. 백이면 백 다른 의견이 나올 것이다. 친환경 해법끼리 충돌할 땐 과학적 검증과 이에 바탕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기후변화 때문에 정말로 세계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라고 답할 것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에서 발표된 자료만 보면 정말 위험한 것 같은데, 진짜 그렇게 위험하다면 왜 전 세계의 정부나 모든 기관에서 앞다퉈 “나 살겠다”며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걸까.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의 현실버전이라고 할까. 

설사 기후변화가 정말 위험하다고 해도, 누군가는 “나는 먹고사니즘이 더 급해”라고 말한다면? 이런 반대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방법은 체감할만한 재앙이 진짜 닥쳐오거나, 아니면 먹고사니즘에 지장을 줄만큼 강한 트레이드오프(강력한 벌금 혹은 인센티브)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난주 ESG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다. ESG나 기후변화가 게슈탈트화되어서는 안되지만, 현실은 일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지난주 FT모럴머니 행사에서 ‘투자자들이 기후 위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라는 프리젠테이션을 한 HSBC 글로벌 책임투자 책임자인 스튜어트 커크(Stuart Kirk)가 직무정지를 당했다

HSBC의 스튜어트 커크가 문제가 된 포럼에서 발표하는 모습./FT
HSBC의 스튜어트 커크가 문제가 된 포럼에서 발표하는 모습./FT

우선, HSBC 스튜어트 커크의 발언을 보자. 그의 핵심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앙은행과 금융지도자들이 기후변화 위협을 지나치게 과장한다. 2000년으로 바뀌면서 컴퓨터가 ‘00’만을 의식해서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Y2K 장애가 있었지만 결국 아무런 일도 없었다. 폭염, 홍수, 가뭄이 식량과 에너지 공급을 방해하고 잠재적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대형은행을 위험에 빠뜨리기에는 그 위험이 너무 멀다. HSBC의 평균 대출기간이 6년이다. 일부 기후연구가들은 2100년까지 지구온난화로 전세계 GDP의 5%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세계는 500~1000% 더 부유해질 것이다. 2100년에 5% GDP가 감소해도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변화를 관리하는데 탁월하다. 기후변화가 이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암스테르담은 오랫동안 수면 아래의 도시였는데도 정말 좋은 곳이지 않은가. 마이애미가 100년안에 해수면 6미터 아래가 되어도 상관없다(인간이 기후 적응을 잘 하면 된다는 의미). 우리들 중 누구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기후변화 규제에 대처하느라 눈앞에 닥친 인플레이션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HSBC의 글로벌 책임투자 책임자가 공식적인 발표자리에서 내놓은 입장 치고는 상당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오랜 기간 파이낸셜타임즈(FT)의 기자로 재직했던 커리어가 냉소적이고 자유로운 발언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ESG투자를 강조해온 HSBC 입장에선 곤란해질 발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음날 HSBC가 그를 직무정지시켰다는 언론보도에 여기저기서 냉소섞인 칼럼과 댓글들이 쏟아졌다. 톰 브레이스웨이트(Tom Braithwaite) FT 에디터는 ‘ESG는 잊고 BS 인덱스를 활용하자’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BS 인덱스의 BS는 헛소리를 의미하는 Bullshit의 줄임말이다. 그는 스튜어트 커크의 직무정지에 대해 “ESG 콤플렉스에 대한 걱정과 함께 많은 사람들은 HSBC의 반응이 커크의 발표보다 더 논란이 많다고 보고 있다”며 “헛소리를 수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를 드러낸다”고 적었다.  

FT의 유명기자인 사이먼 먼디는 “비평가들은 커크의 발언이 도덕적으로 혐오스럽고 기후변화 위협에 대한 금융인들의 안일한 태도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라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그의 발언은 불편할 수 있지만 논의가 필요한 중요한 문제가 강조됐다”고 했다.

예를 들면 ‘ESG 문화전쟁(ESG culture war)’ 같은 것이다. 안티 ESG 논쟁으로 드러났듯, 소위 우파 진영의 논객들은 커크를 ‘파멸적인 기후주의(doomster climatism)’을 퇴치한 영웅으로 환영하며, HSBC의 직무정지는 ESG 로비의 숨막힐 듯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금융산업의 탈석탄선언과 ESG 투자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이들에게 커크는 강력하고도 상징적인 증거자료가 됐다. 기후 싱크탱크인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의 마크 캄파날레 대표는 “커크의 연설은 은행시스템의 핵심가치를 드러냈으며, 일단 베일을 벗으면 진실을 볼 수 있다”면서 HSBC가 이같은 생각을 하는 인물을 어떻게 책임투자의 책임자로 임명했는지를 강력 비판했다.

사이먼 먼디 에디터는 “현재의 금융시장은 (기후)위기에 대처할 만한 충분한 자본을 투입할만큼 기후위험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있으며, 현재 금융게임의 규칙이 여전히 금융시장의 행동을 바꿀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중요한 지점에서 그의 발언은 옳았다”고 밝혔다. 

만약 스튜어트 커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은행이나 금융시스템에 많다면, 그게 그냥 현실이다. 화를 내거나 비난할 게 아니라, 왜 그런지 들여다봐야 한다. 스튜어트 커크의 불만을 보면, 자신의 생각보다 EU의 규제가 훨씬 강력하다는 것이니 기후활동가 입장에서는 EU 정책방향이 잘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앞으로 '진짜' 강력한 탄소세와 같은 규제리스크가 커질 경우 기업과 금융권의 불만은 더 커질 지도 모른다.  

오히려 HSBC가 ESG 외부 평판에 금이 갈까봐 두려워 스튜어트 커크의 입을 막아버리는 상황이 더 불편하다. HSBC는 왜 외부 평판에만 신경쓰는가. 내부 직원들 중에는 스튜어트 커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조직원들이 많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걸 토대로 조직 내부에서 ESG에 대한 논의를 더 해볼 수는 없었을까. HSBC가 지금 진행하는 ESG 활동 방향을 재점검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서둘러 불을 끄는 모습을 본 조직원들은 ESG에 대한 반대의견을 더이상 내기 힘들 것이다. HSBC는 ESG를 평판이나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세상에는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 같은 ‘반(反)기후주의자’도 있고, 앨 고어나 빌 게이츠와 같은 ‘기후주의자’도 있다. 또 최근 S&P 500 ESG 지수에서 테슬라가 탈락한 사건을 두고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듯이, ESG를 ‘기업과 금융산업의 안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ESG 리스크(risk)’로 보는 이들도 있고 ESG를 ‘자본주의의 위기와 기후변화로부터 우리 사회를 구해줄 ESG 성과(performance)’로 보는 시각도 있다. 

ESG와 기후변화를 성역화하고, 비판이나 반론 목소리를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응징해버리면, 당장은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결국은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스튜어트 커크의 발언에 대해 상당수 투자자들은 별 반응이 없다고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실물경제의 위험을 인식하는 수준이나 대응전략에 따라, 어쩌면 기업이나 투자자들의 ESG 전략은 정치적인 논쟁과는 별 상관없이 점점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투자물결을 더 빨리 메인스트림화하려면, 이런 논쟁은 더 많아지고 더 격렬해야 한다. 시끌시끌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ESG 주변을 기웃거릴테고, 그러면 ESG와 기후변화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가 될테니 이쯤 되면 이 이슈는 메인스트림화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ESG와 기후변화 대응만이 옳은 길이라는 식의, 게슈탈트식 전체주의적 사고는 언제나 그렇듯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매우 유명한 미디어 이론 중 ‘침묵의 나선이론’이 있다. 대중들은 자신의 의견이 주류 의견과 다르다고 느껴지면 침묵을 택한다는 이론이다. 막상 선거 결과의 뚜껑을 열어보면, 여론조사와 다르게 나오는 이유도 이러한 침묵하는 소수들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ESG 논쟁은 더 시끄러워도 좋다. 


                             박란희 대표 & 편집장
                             박란희 대표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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