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가스전을 개발하는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산호초가 피해를 본다면 에너지개발회사가 책임져야 할까?
호주의 한 에너지 회사의 가스전 개발을 놓고 환경단체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산호초 피해와 가스전 개발의 인과관계가 인정될 경우 기후소송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호주의 변호사들은 환경단체가 승소하리라 믿고 있다. 이들은 지난주 우드사이드 에너지(Woodside Energy)를 대상으로 시작한 획기적인 소송에서 가스전 개발이 산호초에 피해를 준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비영리단체인 호주보존재단(Australian Conservation Foundation)이 소송을 제기한 이 사건은 우드사이드의 120억 달러(15조4161억원) 규모 스카버러(Scarborough)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기 위한 소송이다. 이 프로젝트는 호주 서부 해안에서 거대한 가스전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유전에는 약 11조 입방피트(311조4853억 리터)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데, 이 천연가스는 육지 시설에서 액화되어 2026년부터 아시아 시장으로 운송될 예정이다.
우드사이드가 이 가스를 추출하여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8억7800만 톤의 이산화탄소는 호주의 연간 탄소 배출량인 약 5억 톤보다도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NGO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의 보고서는 "탄소 배출량은 우드사이드의 주장보다 더 많은 13억 7000만 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호주보존재단은 이러한 탄소 배출이 호주 동해안에서 3000km 이상 떨어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를 직접적으로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호주 북동부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다.
호주보존재단은 기후 ‘귀인 과학(attribution science)’에 의존하여 인과관계를 증명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온실가스 배출, 지구의 온도 상승, 산호초들을 죽게 만드는 산호의 백화 현상 사이에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서 승소하겠다는 뜻이다. 귀인 과학이란 기후연구에서 많이 사용되는 연구영역으로, 기후변화가 가뭄, 홍수, 허리케인, 폭염과 같은 어떤 극단적인 날씨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보존재단은 스카버러 프로젝트가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실질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그 수치는 0.000394C로 작다. 이 단체는 이 작은 증가율처럼 보이는 것이 "향후 대량으로 산호초의 백화현상을 일으켜서 수백만 마리의 산호가 죽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후소송에서 귀인 과학이 인정될 경우 새로운 차원 열려
호주의 연방법에 따르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산호초 지대에 상당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경우 해상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는 금지된다. 이 법을 사용하여 프로젝트를 중단하려는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러한 시도는 수질 오염과 같은 국지적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번 소송처럼 귀인 과학을 사용하는 것은 기후수송에서 새로운 차원을 여는 것이다.
호주보존재단을 대표하는 로펌인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Defender Office)의 변호사인 브렌던 도비(Brendan Dobbie)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런 식으로 귀인 과학을 사용하려고 시도한 사례는 거의 없으며, 세계적으로 귀인 과학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는 이 소송이 "미래의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위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후 귀인 과학을 사용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도 한 페루 농부가 독일의 거대 전력회사 RWE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일 것이다. 이 페루 농부는 1854년부터 2010년 사이에 거의 7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에 대해서 독일 최대의 전력회사이자 유럽 제2위의 탄소 배출원인 RWE를 고소하기 위해 독일의 녹색NGO인 저먼와치(Germanwatch)와 제휴했다.
이 페루농부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농부의 재산이 홍수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2015년에 처음 제기된 이 사건은 2016년에 기각되었다. 그러나 2017년 11월 독일 함(Hamm)의 상급 지방법원은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홍수를 일으킬 수 있는 팔카코차 호수가 페루 농부의 재산에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과 페루 농부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다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법원에 납득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페루 농부 측이 농부의 재산이 홍수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복잡한 인과관계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때 과학자들이 시뮬레이션으로 귀인 과학으로 입증하려고 한다. 이 소송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귀인 과학이 사용된 것만으로도
기후 소송에서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어
‘스카버러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의 공동 저자이면서 페루 농부와 RWE의 소송에 조언을 제공한 클라이밋 애널리틱스의 기후 과학자인 빌 해어(Bill Hare)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온실가스 배출과 산호의 백화현상 사이의 연관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그는 스카버러의 원인 제공이 위험으로 여겨질 만큼 중요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만약 판사가 스카버러의 원인 제공이 위험이라고 확신한다면, 그 다음 질문은 스카버러의 배출이 실제로 순수한 추가 배출인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
빌 헤어는 "우드사이드는 자신들이 추출하는 가스가 석탄을 대체할 것이고, 따라서 이 가스가 전 세계의 탄소 배출량을 줄인다고 말할 것"이라며, 자신은 이러한 주장을 거부하지만 우드사이드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우드사이드는 스카버러가 아시아 국가들이 탄소 집약적인 석탄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가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후법률 전문가이자 기후컨설팅 및 투자 회사인 폴리네이션(Pollination)의 이사인 아르주나 디블리(Arjuna Dibley)는 비록 호주보존재단이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귀인 과학을 사용한 것은 기후소송에서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아르주나는 "일단 배출량과 기후 결과 사이의 귀속성에 대한 명확한 법적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배출량을 배출한 회사들에 대한 소송의 봇물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