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디자인을 통한 제품의 포용성 확보 + 고령자 & 장애인의 일자리 제공
임팩트온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협력해 주요 국내 ESG 가이드라인 및 지침을 기반으로 사회적경제 기업에게 특화된 ‘사회적경제 ESG 진단 항목’을 만들었다. 사회적경제기업에 ESG 도입 및 우수 실천 사례를 확대하기 위해 ESG 지표별 국내 대표 사회적경제기업 10곳을 선정해 인터뷰했다.
디올연구소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인증 사회적 기업이다. 국내 최초로 노안이나 저시력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인 ‘디올폰트’를 만들어 판매하고,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 개발과 사용성 평가, 인쇄출판 대행, 홍보물 제작(현수막, 배너 등)을 하고 있다.
상품 패키지나 계약서에 있는 약관, 식품 설명은 3~5포인트 미만의 크기로 제작되기도 하는데, 일반 폰트를 사용할 경우 글자 뭉침 현상 등이 나타나 노안과 저시력자들의 눈에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디올연구소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통해 모두가 같은 정보를 얻어갈 수 있도록 5포인트 미만의 크기도 잘 보이게 하는 ‘디올폰트’를 만들었다.
1세대 멀티미디어 디자이너로서 전문성을 쌓아온 이종근 대표는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50+(플러스) 당사자로서 노안을 경험하기도 한 그는 사회적기업가육성과정을 통해 2017년 디올연구소를 설립했다. 디올연구소는 ‘디올폰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여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을 내놓고, 키오스크 사용 등 사회의 불편을 포착하여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방법론 개발에 힘쓰고 있다. ESG 지표 중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한 대표사례로 선정된 디올연구소 이종근 대표를 만나, 포용성과 관련된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Q.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된 배경은 무엇인가.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멀티미디어 분야에 종사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고, 50+ 당사자로서 노안의 심각성을 몸소 느끼기도 했다. 비장애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불편함을 직접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마침 폰트와 관련된 자문 제작 업무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저시력자들을 위한 폰트 사업에 더 용이하게 뛰어들었던 것 같다. 포용성과 다양성은 하나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 속 불편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결핍이라도 그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불편은 당사자에게 매우 크다. 일상 속 불편함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실제 당사자들의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발견하여 그것을 제품 · 서비스화하기 위해 기업을 세웠다.
Q. 포용성을 고려한 폰트를 만들기 위해 가장 주목하는 점은 무엇인가.
포용성을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이하 유니버설 폰트)는 사용자 리서치(디자인 리서치) 단계를 거친다는 점에서 기존 폰트와 다르다. 대부분의 폰트는 기획-제작-평가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반면, 유니버설 폰트는 불편을 발굴하고 공감하기 위해 사용자 리서치라는 별도의 사전 단계를 만들어 진행한다. 사용자 리서치는 저시력자들의 불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살펴보고, 당사자들이 어떻게 이 폰트를 사용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연구기관에 작업을 의뢰하여 노안이 있으면 어느 부분에서 오독이 생기는지 확인한다. 또, 최종 샘플을 만들고 일반 폰트에는 없는 사용성 평가를 진행하여 차별화된 기능성을 검증하여 최종 완성한다. 장애, 고령자뿐 아니라 비장애인, 청년 등 다양한 세대에게 통합적인 사용성 평가를 진행한다. 이 때 초기에 설정한 목표나 유니버설 폰트만의 기능적 차별성이 생기지 않으면 피드백을 통해 수정 절차를 반복한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피드백이 반복되는데, 이 때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한다. 디올 폰트도 7번의 사용성 평가를 거쳤으니 일반 폰트보다 더 많은 정성과 재정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Q. 사용성 리서치와 평가를 통해 제품이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 면밀하게 확인하는 과정이 인상 깊다. 유니버설 디자인에서도 가장 경계하는 것이 ‘워싱’일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우려는 없나.
2011년부터 국내 기업들이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는 일반 서체를 만드는 것에 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일반 폰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연구 방법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리서치와 사용성 평가가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았을 때, 기능적인 완성도가 확보되지 않은 채 시장에 출시되어 마케팅적인 요소로만 사용되는 워싱이 발생한 사례가 두 번 정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시장에서 사라졌다. 폰트와 같이 디자인적 요소를 담은 제품과 서비스는 기능성과 시장성을 접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회적 문제 해결 기능을 확보한 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장에서도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트렌디함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다수가 이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과, 다양한 부류의 소수 이용자들도 불편함 없이 그 제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에 철학을 불어넣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칫하면 시장성이 기능성을 앞서게 되거나, 의도한 사용자 리서치와 평가가 면밀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 워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워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품 도입 전 사용자 리서치와 평가를 확실하게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가 위원회를 열고, 완성품이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사용자들의 후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면 워싱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Q. 폰트라는 활용도가 높은 상품을 취급하다 보니 여러 기업, 기관에서 협업 제안이 왔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나.
디올 폰트는 개발 후에 삼성카드, 삼성생명, 빙그레 등 국내 70여 개 기업에 납품계약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를 연구하고 개발한 덕택에 특허도 등록하고,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를 적용한 상품 제작 서비스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단발성 프로젝트에서 멈추는 아쉬움이 있다. ‘서비스 구매’라는 일차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서비스 제공 기업과 구매 기업이 협력하여 공통의 철학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협업 기관들이 우리 기업의 상품뿐 아니라 기업의 철학과 연구 방법론에 많은 관심을 쏟아줬으면 한다. 디올의 기술과 방법론이 저시력자들을 위한 서비스에 적합하다고 판단한다면, 완성된 제품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각 기업의 제품 기획 과정부터 디올의 방법론을 사용하는 방식이 더 지속가능한 협업 모델이 될 것이다.
디올 연구소도 유니버설 디자인 판매 업체가 아닌 유니버설 디자인 연구개발(R&D) 전문 기업인 이유도 이와 같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도 윈도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개발을 위해 인류학, 철학, 행동심리학 등의 석학들을 연구에 참여시켜 탁월한 결과물을 냈듯이, 협업 기업들이 자사의 제품 생산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축적한 지식과 노하우 등 내재적 요소를 연결시키는 것에 집중한다면 더 많은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Q. 기술과 연구 방법론을 다루는 소규모 R&D 업체로서 사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나.
다양성과 포용성을 제품에 녹아들게 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접목될 수밖에 없다. 일상의 여러 순간에 내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근 트렌드의 기술에 대한 접근 권한이 필요한데, 특허나 지식재산권 문제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유니버설 디자인 키오스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관련된 R&D 작업을 모두 마치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키오스크 안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추가시키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로 모듈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기술적 한계에 부딪힌 적이 있다. 국방부에서 벤처 기업들에게 일부 기술을 공유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에이블테크(AbleTech) 기업은 가치지향성, 시장성, 기술성을 같이 묶어내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전용실시권, 상용실시권 등의 특허를 사회적 문제 해결 용도의 기술로 쓰기 위해 기술권자와 임팩트 조직과의 연계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포용성을 확장할 때도, 대기업이 가진 원천 기술을 토대로 한 기술 자문과 지원을 받아 공동 개발 형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집합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장 수요가 많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R&D 기업으로서 경영과 연구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사회적 기업 지원금 평가는 고용 확대와 매출 증대를 요구하기 때문에 경영에 치중하다 보면 연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그 안에서 창의 혁신과 사회 서비스 등의 현황과 성격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평가 지표가 비슷했던 것이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다.
사회적 기업을 개별화할 수는 없겠지만, 지원 방안과 상생 모델이 비슷한 것끼리 묶어 맞춤형으로 지원할 수 있는 유형화는 필요하다. 각자 정의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기업이 갖고 있는 성과 자료를 바탕으로 우수 사례를 선정해준다면 이 생태계가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앞으로의 성장 계획이 있다면?
디올연구소는 유니버설 디자인 R&D 전문 기업으로서 앞으로도 사회의 불편을 포착하고 해결하는 일에 함께할 계획이다. 특히, 사업을 확장하여 디올연구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모듈화를 통해, 장애인들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여러 일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현재 대학원을 다니면서 장애인과 고령자에게 적합한 업종과 창직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디자인뿐 아니라 보건복지 분야에서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사회적경제 ESG 지표 및 사회적기업 사례가 담긴 ‘사회적경제 ESG 안내서’ 바로가기
(안내서 관련 문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정책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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