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한창 COP27(27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작년만큼의 활기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네요.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ESG와 아동권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난 7일에 ‘유니세프 아동친화기업 포럼- 아동권리와 ESG’ 행사가 열렸는데,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저 또한 글로벌 흐름에 대해 공부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SK그룹이 공동으로 주최한 것이 좀 신기했습니다. NGO가 개최하는 행사를 기업 후원이 아닌, 공동주최하는 형태가 국내에선 거의 보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지요. 마침 관련 기사도 나왔네요.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204166632523752&mediaCodeNo=257&OutLnkChk=Y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11/0004119430?date=20221109

지난 7일 유니세프와 SK가 공동 주최한 ‘유니세프 아동친화기업 포럼- 아동권리와 ESG’ 행사가 열렸다./ 유니세프
지난 7일 유니세프와 SK가 공동 주최한 ‘유니세프 아동친화기업 포럼- 아동권리와 ESG’ 행사가 열렸다./ 유니세프

이 두개의 기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날 기업들의 발표사례 중 가장 흥미있었던 곳은 DRB(동일고무벨트) 기업이었습니다. EU의 기업 공급망 실사법을 비롯해서 해외 규제 변화를 한몸으로 받고 있는 중견기업의 대표사례였습니다. 지난해 11개의 공급망 평가를 받았고, 올해 27건의 공급망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몰라 당황스러웠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EU에서도 규제에 맞는 가이드라인이 속속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DRB의 고객사인 ‘존디어’사의 경우, 협력사들에게 인권과 환경, 분쟁광물 등에 대한 책임있는 활동을 원하고 ‘에코바디스’와 같은 곳에서 공급망 평가점수를 받아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존 디어는 농기계의 테슬라라고 할 정도로 세계적인 농기계, 중장비 기업이지요. 존 디어는 협력사들 중에서 베스트 사례에 대해 별도의 시상까지 한다고 합니다. 
DRB는 볼보, 아우디, 폭스바겐 등에도 납품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드라이빙 서스테이너빌리티(Driving Sustainability), NQC 등으로부터 공급망 실사 평가를 받고, 결과에 대해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광산업, 발전업 등과도 연계가 많고 해외 사업장이 많은 DBR는 아동인권 정책을 위해 유니세프와 접촉해서, 10대 ‘아동권리와 경영원칙’에 부합하는 핵심정책을 만들었다는 사례를 밝혔습니다. 

 

유니레버는 왜 16세 미만 대상 마케팅을 중지하나?

사실, ESG와 아동권리는 거의 회자되지 않는 이슈입니다. 지난해 ESG평가기관인 서스테이널리틱스와 유니세프가 ‘ESG평가에 아동권리를 통합시키기 위한 투자자 툴(Tool for Investors on Integrating Children’s Rights Into ESG Assessment)’ 지침서를 발간한 것이 보도자료로 나왔을 때, ‘아니 ESG평가기관이 아동 NGO와 이런 것도 하는구나’ 하고 흥미롭게 보아넘긴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해 ESG평가기관인 서스테이널리틱스와 유니세프가 ‘ESG평가에 아동권리를 통합시키기 위한 투자자 툴(Tool for Investors on Integrating Children’s Rights Into ESG Assessment)’ 지침서를 발간했다./유니세프

그러다 올해 두 가지 사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4월, 유니레버가 16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식음료 마케팅을 중지하고, 청소년들의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며,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유명인사나 인플루언서를 마케팅에 쓰지 않고, 16세 미만의 유명인사나 인플루언서를 마케팅에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유니레버는 “아동들이 식사 외에 하루 12개 정도의 간식을 먹고 어른들보다 5배 더 자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면서, 제품 선택을 부모들이 하도록 돕고 또 책임감있는 마케팅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EU에서 통과가 된 법안도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서비스법(DSA, Digital Service Act)’입니다. 2024년 1월에 시행되는 이 법안의 핵심은 구글, 메타,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틱톡 등 IT플랫폼의 유해한 콘텐츠 유통을 제재하는 법입니다. 전 세계 최초로 통과돼, 앞으로 디지털 콘텐츠 거버넌스의 교과서가 될 법안이라고도 불립니다.
 앞으로 이들 플랫폼기업은 인종과, 성별, 종교, 세대 등에 대한 혐오발언, 테러리즘을 선전하거나, 아동 성착취물 같은 불법 콘텐츠를 식별하고 삭제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아동을 타깃으로 한 광고가 아예 금지됩니다.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온라인쇼핑몰, 앱스토어 등 대부분의 온라인 플랫폼이 포함되는데, 특히 초강력 과징금이 특징입니다. 디지털서비스법을 위반하면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내야 합니다. 

 

기업과 인권경영, 아동권리까지 이어져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ESG에서 S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특히 공급망 실사법이 의무화되면서, 인권 경영이 중요해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인권경영의 범위가 확대되고 또 훨씬 정교해지는 흐름으로 읽혀집니다.  
지금까지 ‘ESG’ 이슈와 아동과의 연관성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은 ‘(개발도상국) 공급망에서 벌어지는 아동 노동 금지’ 정도에 그쳤습니다. 1996년대 나이키의 축구공이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비참한 바느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전 세계적인 불매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그 사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에 유엔에서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이 선택되고, 사람이 비즈니스의 중심이 되는 경영, 즉 인권경영이 공론화되었습니다. 이듬해 만들어진 것이  ‘아동권리와 경영원칙(Children’s Rights and Business Principles, CRBP)’입니다. 유니세프, 유엔글로벌콤팩트, 세이브더칠드런이 공동개발한 지 올해로 딱 10주년이 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ESG평가, ESG투자와 아동권리를 연계하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2018년부터 ESG 평가기관인 서스테이널리틱스와 유니세프는 협업을 시작해, 2019년에 ‘투자자 의사결정과 아동권리 통합에 관한 지침서(Investor Guidance on Integrating Children’s Rights into Investment Decision Making)’를 발행했습니다. 이 지침서를 바탕으로 지난해 ‘아동권리’에 관한 42개의 지표를 완성시켰습니다. 
서스테이널리틱스(모닝스타가 인수)는 왜 유니세프와 이러한 아동권리 ESG지표 작업을 진행했을까요. 서스테이널리틱스는 “인권 문제로서의 아동의 복지(welfare)는 매우 중요하지만, 아동권리는 비즈니스 관련 ESG 이슈에서 대부분 간과되는 ESG 평가의 잠재적 사각지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젊은 직원들(Young Workers)의 죽음과 아동권리, ESG 

이 지표를 보면, 아동권리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6번 항목을 보면 아동 및 청소년의 노동관행을 보면, 젊은 근로자들에게 과도한 작업시간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전보호장치를 두는지, 기술개발과 작업 훈련을 제공하는지 등을 묻습니다. 왜 그럴까요.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중대재해사고를 보면,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건, 서울 구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 정비사고, SPC그룹 제빵공장 사망사건 등 대부분이 학교를 갓 졸업한 미숙련 청년들에게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SPC 불매운동에서 보듯 이러한 노동관행은 기업의 중대 리스크로 되돌아옵니다. 
'부모와 보호자를 위한 좋은 일(Decent Work)' 항목은 아동권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항목입니다.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 모성보호, 육아휴직, 생활임금 제공, 유연근무, 보육 지원 등 흔히 ‘가족친화기업’으로 불리는 내용들입니다. 제가 수년 전에 워킹맘 관련 책을 낸 후 기업체 여기저기서 워킹맘들을 위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모 대기업 유통회사였는데, 육아휴직을 끝낸 후 복직을 앞둔 워킹맘들을 위한 강의자리였는데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며 무겁고 어둡고 우울하던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그 회사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온 워킹맘들의 퇴사율이 높아 고민 끝에 이런 프로그램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내심 ‘강의가 아니라 조직문화 전체를 바꿔야지’ 싶었습니다. 
지난 7월, 페이스북(메타)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근무를 도입한 결과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등 다양성 그룹 직원들이 더 늘어났다는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최근 국내 기업들은 조직문화의 대대적인 변화 움직임이 많이 보여 몇년 후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그외에도 42가지 지표 가운데에는 온라인 상 아동보호, 데이터 프라이버시, 제품 안전, 책임감있는 마케팅, 지역사회 환경 평가 등의 지표 항목들이 다수 있습니다. 

서스테이널리틱스의 일부 기업 샘플테스트 결과, 지표 중에서 ‘아동관련 NGO 등 이해관계자들과 협업 파트너십’은 잘하고 있는데, ‘육아휴직 실시’라든가, 기존 ‘아동 권리 실사’에 관한 부분은 아직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스테이널리틱스 

서스테이널리틱스에서 발표한 자료 중 흥미로운 것은, 일부 기업들을 대상으로 샘플테스트를 해보니 지표들 중에서 ‘아동관련 NGO 등 이해관계자들과 협업 파트너십’은 잘하고 있는데, ‘육아휴직 실시’라든가, 기존 ‘아동 권리 실사’에 관한 부분은 아직 부족하다고 합니다. 

 

상호의존성과 통합적 접근 

기업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ESG평가항목으로 요구받는 데이터가 200개가 넘는데, 여기에 아동권리까지 챙겨야 하나요? 우리는 이미 사회공헌으로 아동청소년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어요!’라고. 
그런데 이제 막 ESG를 도입한 국내기업들과 ESG, 혹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10년, 20년 동안 관련 정책을 도입해온 글로벌 벤치마킹기업들과의 차이점을 보면 눈에 띄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ESG를 이해하려면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과 ‘통합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ICT기업의 경우를 보시죠. 10대 아동청소년은 제품의 주요 소비군이자 유해콘텐츠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ICT 및 플랫폼 기업이 아동청소년을 소비자군으로만 취급하면서 혐오와 성적인 쓰레기 콘텐츠를 걸러내지 않고 10년을 내버려둔 결과 이제 이들은 법에 의해 강제적으로 마케팅을 금지당하게 됐습니다.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고 만들 때, 환경과 사람을 분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돼있음을 생각하고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아동은 미래의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직원(조직원)이나 협력업체의 자녀이기도 하듯 모두 상호연결돼있습니다. 
ESG이슈는 기업의 financial performance, 즉 재무적인 성과나 리스크에 영향을 미칩니다. 시간차이는 있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SPC 사례에서 보듯, 제2, 제3의 나이키의 불매운동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동은 이해관계자들 중에서 가장 ‘작은 존재’일지 모릅니다. 투표권이 없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대변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지요. 하지만 저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소홀히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중요한 이해관계자라고 생각합니다. ‘invisible, but material stakeholder’인 것입니다. 앞으로 아동권리가 ESG와 어떻게 결합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11월 9일(수) 발송된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수요일 칼럼을 좀 빨리 읽고 싶은 분은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박란희 대표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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