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기술 개발에 따른 인권 리스크 부상, 국내외 ICT 기업의 대응
법무법인(유) 지평이 11월 15일 글로벌 비영리 컨설팅 그룹 BSR(Business for Social Responsibility)과 공동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기업의 책임과 공급망 인권실사’ 세미나를 개최했다.
디지털 신기술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인권 리스크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날 종합토론을 진행한 임성택 지평 대표변호사는 “신기술과 인권은 신기술을 개발하는 ICT 기업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이슈이므로 향후 ESG와 인권경영에서 중요한 현안이 될 전망”이라며, “유엔(UN),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신기술의 설계와 도입 시 공급망 인권실사와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미나는 ICT 기업이 리스크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방법인 ‘인권실사’에 대한 국내외 동향을 다뤘다. 제1세션은 글로벌 동향으로, 아사코 나가이 매니징 디렉터, 테오 에켈 에릭슨(Ericsson) 기업과 인권 부서장, 세계벤치마킹얼라이언스(WBA)의 사만다 디왈라나 수석 연구원과 사미타 타파 연구원이 스피커로 나섰다. 제2세션은 정현찬 법무법인 지평 전문위원, 김대원 카카오 인권과 기술윤리팀장, 정제찬 SK텔레콤 Talent(겸 인권경영 담당)팀 리더, 홍혜현 LG전자 ESG실 책임이 국내 동향에 대해 발표했다.
디지털 인권 리스크, 병원 처방부터 핸드폰 사용까지 생활 전반에서 발생
주제 발표를 맡은 아사코 나가이 BSR 매니징 디렉터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공학, 5G, 얼굴 인식, 블록체인과 같은 신흥기술이 사회에 가져오는 변화가 큰 만큼 동반되는 인권 문제가 작지 않다”고 언급하며, “인권 문제는 개인정보보호, 허가받지 않은 데이터 사용, AI의 감시, 접근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가 AI 시스템을 활용해서 환자에게 처방을 내리는 경우에 시스템을 해킹하여 처방전 내용을 바꾼다든지, 웨어러블 기기가 특정 인종은 인식하지 않는 문제가 등장하고 있으며, 우리가 디지털 기술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면서 부정적 영향도 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인권 침해 문제는 현실 생활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나가이 디렉터는 “구글은 이용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위치 정보를 수집하여 미국 애리조나주 정부와의 소송에 패소했고, 미얀마 군정은 반독재 시위 세력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인터넷 접근성을 차단하여 인권을 침해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가이 디렉터는 “완구회사 마텔은 자사 제품인 바비인형에 사용자 반응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카메라와 마이크, AI를 탑재하여 사용자의 정보를 수집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며 “디지털 인권 침해는 비단 ICT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내외 ICT 기업의 대응… 인권경영 원칙과 실사 지표 어떻게 세웠나
국내외 ICT 기업은 새롭게 다가오는 인권 리스크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이동통신장비 기업인 에릭슨은 5G 기술에 대한 인권영향평가를 실행했다. 테오 예켈 에릭슨 사내변호사 겸 기업과 인권 부서장은 “UNGP(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가 정의하는 인권 개념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권영향평가 비영리단체인 쉬프트(Shift)와 협업하여 5G 기술 인권영향평가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예켈 부서장은 “인권 문제는 공급망 내 이해관계자 참여가 중요하다”며 “이해관계자별 핵심 리스크와 잠재 영향을 분석했으며 이해관계자별 지표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5G 보고서는 자사, 공급망 기업, 고객, 정부, 사회 전반을 대상으로 리스크와 잠재적 영향을 파악했다.
예를 들면, 5G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동통신기업은 5G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서 실직하는 직원이 생길 수 있고, 잠재적으로는 공정한 전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식이다. 공급망 차원에서는 5G 설비에 들어가는 광물 수요가 늘면서, 특정 광물에 대한 공급과 이에 따라 발생하는 지역의 인권 침해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예켈 부서장은 “해당 리스크를 파악하면 이에 적합한 해결책을 고안할 수 있는데, 근로자 재교육이나 설비 설치 시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한 안전망을 강화하는 등의 대처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국내 기업들은 디지털 인권실사와 관련해, 시작이 늦은 만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김대원 카카오 인권과 기술 윤리팀장은 “카카오는 디지털 기업으로서 주목해야 하는 혐오표현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1월부터 내부 논의를 시작했고, ‘증오 발언 근절을 위한 카카오의 원칙’을 낸 바 있다”고 밝혔다. 그는 “수립된 원칙을 기반으로 증오 발언 대응을 위한 지침서인 ‘코딩북(coding book)’을 제작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에 완성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정제찬 SK텔레콤 Talent팀 리더는 “SK텔레콤은 지난 8월까지 인권경영에 대한 거버넌스 체계를 수립하는데 주력했고, 올해 말 인권경영 전담조직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SK텔레콤은 인권경영 ‘CEO Statement’를 개정하고, 영역별 관리지표 수립 및 점검, 인권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인권경영 보고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CEO가 직접 선언하는 인권경영의 글로벌 표준을 담은 정책 선언문을 작성했고, 6개 영역에서 118개 지표를 만들어 인권영향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점검 영역은 ① 안전/보건 보장 ② 건강 및 노동3권 보장 ③ 다양성 존중 및 차별금지 ④ 근로자 존중 및 괴롭힘 방지 ⑤ 프라이버시 보호 ⑥ 공급망 관리로 구성된다.
LG전자는 6대 ESG 전략과제에 인권 부문을 포함했다. 6대 ESG 전략과제는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사용 추구 ▲폐기물 재자원화로 순환경제 구축 ▲환경을 고려한 제품/서비스 개발 ▲공급망 ESG 리스크 관리 강화 ▲다양성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조직 ▲모두에게 편리한 제품/서비스 개발이다.
홍혜현 LG전자 ESG실 책임은 “1~3번은 환경, 4~6번은 사회 영역의 과제인데, 인권실사는 4번, 디지털인권은 6번과 관계 있다”고 설명했다. 홍혜현 책임은 “2030년까지 책임있는 비즈니스 연합(RBA)의 심사 요건을 기준으로 문제가 있는 사업장을 제로로 만들 것이다. 또, 장애인 고용률은 3.5% 늘리고, 여성 임직원 비율은 20%로 맞추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제품별 접근성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인권영향평가 도구로 DIHR과 WBA 기준 제시
세미나에서는 기업이 영향평가를 실행하기 위한 도구들과 글로벌 인권영향평가 동향도 함께 소개됐다.
정현찬 법무법인 지평 전문위원은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해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기술과 인권 결의’를 통해 신기술 이용에 관한 인권실사 및 영향 평가에 대해 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지침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며 “인권실사와 영향평가는 법제화되고 있으며 이해관계자 참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영향평가 도구는 두 가지가 제시됐다. 정현찬 전문위원은 “디지털 부문에 특화된 인권영향 평가 지침은 덴마크 인권위원회(DIHR)와 WBA의 기준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정 전문위원은 “DIHR의 디지털 업무에 관한 인권영향평가(HRIA) 지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참여하여 함께 제작했으며, 에릭슨도 이 지침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영향평가는 기업이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요소가 될 전망이다.
그는 “노르웨이 이동통신기업 텔레노르는 미얀마에 진출을 할 때 인권영향평가를 한번 실행했으며, 미얀마 쿠데타로 철수하려고 사업을 매각할 때 매수 기업이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비영리단체들이 텔레노르에 인권영향평가를 실행하라며 NCP(OECD 국내연락사무소)에 제소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사만다 디왈라나 WBA 수석연구원은 WBA 디지털 통합 벤치마크를 소개했다. 디왈라나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통합 벤치마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지털 기업 150곳을 평가하는 도구이며, 2023년까지는 200개 기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WBA는 전 세계 기업을 유엔 지속가능성목표(UN SDGs)를 반영한 7가지 변혁 목표에 따라 평가한다. 변혁 목표는 사회, 식품 및 농식품, 자연과 생물다양성, 도시, 탈탄소화 및 에너지, 디지털로 구성된다. WBA는 지속가능성 점수가 우수한 기업 2000곳을 SDG2000으로 분류한다. 디지털 통합 벤치마크는 SDG2000의 ICT 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평가는 접근성, 기술, 사용, 혁신 4가지 영역에서 16가지 지표를 사용하여 진행된다. 디왈라나 수석연구원은 “접근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ICT에 대한 접근성 정도를 보고, 기술은 이들에게 디지털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지, 사용은 고객들이 제품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는지, 혁신은 기업이 오픈소스 이노베이션을 통한 협업을 하는지와 같은 부분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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