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법적 책임 명확히 해…81억 피해복구 사용해야
지난 5월 7일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샤카파트남에 위치한 LG화학의 인도 사업장(LG폴리머스)에서 독성화학 물질인 스티렌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근 주민 12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인근 주민 1만여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후 한달, 국내언론에서는 사고 뒷소식이 잘 보도되지 않았지만, 인도 현지언론과 영국 주요매체에서는 이를 중요한 이슈로 내보내고 있다. <임팩트온>은 LG화학 인도사업장 사고 한달을 맞아, 해외 언론에 보도된 현지 소식을 전한다./편집자주
현지 매체인 '더 힌두(The Hindu)'에 따르면, 사고 발생 3주 후인 5월 28일 인도 녹색환경재판부(NGTㆍNational Green Tribunal, 이하 NGT)는 이번 사고에 대해 LG폴리머스의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NGT는 “스티렌 저장탱크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으며, 환경허가(EC:Environmental Clearance) 없이 회사를 운영하는 등 법을 위반했다”며 LG폴리머스의 공탁금 5억루피(한화 약 81억원)을 피해 복구에 쓰라고 지시했다. 또한 “(스티렌이) 과잉 저장돼 있었던 것도 문제”며 “주 공해관리 위원회가 ‘설치 동의서’와 ‘운영 동의서’를 위반해줬다”고 지적했다.
NGT 조사보고서 "LG폴리머스, 공장 관리 부실"
NGT는 사고 발생 후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해 5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공장이 폐쇄되며 몇 주 동안 방치돼 있던 화학물질 탱크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며 “가스누출이 발생한 탱크는 낡았고, 온도 센서에 결함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스티렌을 보관하는) 저장탱크 온도를 조절하는 억제제가 부족해 격납작업에 실패했다”며 LG폴리머스의 책임을 시사했다. 이번에 누출된 스티렌의 경우 휘발성이 강해 항상 영상 20도 이하에서 보관돼야 한다. 온도가 상승하면 언제든 유출위험이 있기 때문에 상시 모니터링은 필수다.
NGT는 과잉 저장된 스티렌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인도 주 정부는 지난 5월 12일 공장에 보관돼 있던 1만3000톤의 스티렌을 즉시 옮기라고 지시했고, 현재 전남 LG화학 여수공장에 모두 옮겨진 상태다.
외신들 "공장 관리 부실 하루 이틀 일 아니야"
LG폴리머스가 예전부터 공장을 부실하게 관리했다는 증거도 나왔다. 영국 BBC 방송은 인도 노동부의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BBC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LG폴리머스는 2015년에는 “스티렌 보관 탱크가 노후화됐으며 온도조절 밸브가 작동되지 않았다”고 지적받았으며 2016년 8월 보고서는 “스티렌 탱크를 보호하는 시멘트 피복재가 손상돼 즉시 교체해야 한다”고 재차 지적받았다. 2019년 12월 보고서에서는 스티렌 탱크 주위에 격납 벽을 세우는 등 안전관리의 강화를 권고하는 등 꾸준히 문제가 있었음을 밝혔다. 더불어 BBC는 LG폴리머스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로부터 “스티렌 보관 탱크는 오래됐다”며 “구형 탱크에는 센서와 모니터 시스템이 없지만, 안전밸브가 잘 작동해서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는 진술을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 유력지 '가디언(The Guardian)' 등의 외신은 누출 사고 당시 비상 사이렌이 울리지 않은 점도 주민 피해를 키웠다고 보도했다. LG폴리머스 전 직원들은 “교대 근무가 바뀔 때마다 사이렌이 울렸지만, 전(前) 전무이사가 이 관행을 중단했다”며 “사이렌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경찰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경찰관이 무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LG폴리머스는 “사이렌은 울렸지만 주민들이 공황 상태여서 사이렌 소리 듣지 못했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두 명의 LG폴리머스 직원들이 가스누출을 발견하고 도망치기 바빴다는 증언도 나왔다. NGT는 이 같은 증언을 바탕으로 LG폴리머스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환경 허가 없는 위법 운영...LG화학 "법 어긴 적 없어"
LG폴리머스는 인도 정부의 환경허가(EC)를 받지 않고 위법 운영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LG폴리머스는 공장 확장으로 EC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주 공해관리위원회의 동의만을 얻어 6차례 사업을 확장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EC 취득 대상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답하며 “하지만 이후 인도 정부의 요청에 따라 EC 신청을 했지만, 인도 정부 사정으로 계류 중”이라고 부인했다. 인도의 한 환경변호사는 “환경 허가 없이 공장을 운영하는 건 범죄”라며 “오염통제위원회, 주 및 중앙 환경 당국은 사전에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주 정부가 의도적으로 LG폴리머스를 잠재적 형사 책임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피해자 규모도 늘고 있다. 스티렌이 처음 누출된 5월 7일 사망자는 총 12명이었지만, 5월 26일 65세 여성이 사망한 데 이어 6월 1일 45세 남성이 추가로 사망해 총 1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일 사망자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암 연구기관(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은 스티렌을 발암 의심 물질로 규정했으며, 이에 노출되면 눈, 피부, 호흡기, 위장, 신경계, 간, 생식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고 당일 이미 최대 1000명의 주민이 스티렌 노출로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선 "최선을 다하겠다"...인도에선 나 몰라라?
LG화학은 지난달 13일 노국래 석유화학본부장을 필두로 한 현장 파견단을 인도로 파견했지만, 주 경찰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진상조사단의 출국을 막았다. LG화학 측은 “LG폴리머스인도는 환경 규제를 준수하며 공장을 가동했다”고 주장하며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한국어 홈페이지에만 한글로 사과문을 게시하고, 사고 현지 주민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며 LG화학의 무성의한 대응을 지적했다.
이번 스티렌 유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UN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은 이번 누출 사고를 산업재해이자 인권침해로 규정하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해인 인도 보팔 사고와 유사하다”고 비판했다. 보팔 참사는 사망자 2만여명을 포함해 약 55만여명이 피해를 본 최악의 산업재해다. 1984년 12월 3일 인도 중부 보팔에서 미국 기업인 유니온카바이드사(현재의 다우케미칼)의 살충제 제조 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메틸이 누출됐다. UN 인권이사회 바스쿠트 툰카크 특별조사관은 “과거 보팔 참사 희생자에게 정의롭지 못했던 실수를 인도와 한국 정부, 그리고 LG화학이 반복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NGT의 판결 이후 인도 정부는 산림청장, 산업 및 상업부 장관, 경찰청장과 전문가로 구성된 HPC(The high-powered committee ㆍ전문가 위원회에 해당)를 꾸려 7일(현지시간) 3일간의 진상조사에 나섰다. 전문가들이 작성한 보고서 검토, 피해 마을 주민들 인터뷰, 정당 의견 수렴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