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농기계를 생산하는 디어(Deere & Co.)의 홈페이지.
 미국에서 농기계를 생산하는 디어(Deere & Co.)의 홈페이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이하 FTC)가 이번에는 미국의 유명 농기계 제작사 디어(Deere & Co.)의 ‘수리권(right to repair)’과 관련된 기업 정책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존디어는 자율주행 농업중장비를 판매할 정도로 농업계의 AI 및 압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농기계의 테슬라'로 불리는 회사다. 

수리권이란 소비자와 독립된 수리점이 제조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전자 제품부터 중장비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도구, 부품 및 정보를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소비자 운동이다. 

로이터의 17일(현지 시각) 보도에 따르면, 관련 정보회사 하그로브(Hargrove & Associates Inc.)가 FTC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됐다. 이번 조사와 관련해, ‘존 디어(John Deere)’라는 제품명으로 널리 알려진 디어의 대변인은 자사가 FTC와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고, FTC 대변인은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다. 

제출된 문서에 따르면, FTC는 디어가 연방거래법 제5조를 위반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법은 상거래에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하거나 사기적인 관행을 금지하는데, FTC는 최근 아마존(Amazon)과 약국 중개회사인 PBM 사례에서 이 법을 적용했다. PBM은 제약사, 약국, 보험사 사이에서 약품의 할인과 거래조건 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아마존의 사례에서는 소비자가 10억 달러 이상 더 지출하도록 만드는 알고리즘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반독점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PBM의 경우, 지난 9월 FTC는 미국의 3대 약국중개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제약회사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받기 위해 당뇨병 환자들에게 더 비싼 인슐린을 판매하도록 유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FTC는 이로 인해 할인된 가격을 받을 자격이 없는 환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세 회사는 미국에서 처방전의 80%를 관리하고 있다.

 

'수리권', 미국에서 법제화가 시작될 정도로 큰 이슈

미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도 주의해야

이번에 디어에게 제기된 ‘수리권’ 문제는 테슬라, 할리데이비슨, 애플,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의 유명 기업들에게도 제기된 바 있다.

FTC는 할리데이비슨과 웨스팅하우스가 소비자가 독립된 수리점을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불법적인 보증 조건을 포함한 혐의로 시정 명령을 내렸다. 애플 역시 수리하기 어려운 제품을 만들고 부품과 수리 도구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테슬라도 애플처럼 차량 수리 및 부품에 대한 엄격한 통제로 인해 수리권과 관련된 여러 소송에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 왜 이렇게 수리권이 이슈가 될까? 자동차를 예로 들면, 한국에서는 차량 소유주가 자가용을 직접 정비하거나 수리하는 일이 드물지만,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자동차 문화는 매우 발달해 가정에서 자동차를 조립하거나 수리하는 소비자도 있을 정도로 자가 정비와 개조가 일반화되어 있다. 따라서, 제조사가 차량의 부품이나 매뉴얼 등을 강하게 통제할 경우 소비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고, 이는 종종 사회적 문제가 된다.

디어의 경우,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비싼 농기계를 제작하는 회사다. 농부들은 가능하면 오래도록 기계를 사용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제조사가 농기계의 부품이나 매뉴얼을 폐쇄적으로 관리하거나 공급 및 수리를 중단하면, 농부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단종된 기계라도 독립된 소규모 업체가 부품을 제공하거나 수리를 맡는 경우가 있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수리권이 광범위하게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디어는 자사의 수리 정책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미국 농장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디어는 미국 농장연합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양해각서의 내용은 미국 농부들이 농장 장비를 직접 수리하거나 독립된 기술자에게 의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농부들은 장비를 제3자 수리점에서 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C가 디어를 다시 조사하는 것은 수리권 관련 정책을 더욱 철저히 조사하여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미국에서는 수리권이 이슈가 되는 만큼, 지난해 4월 콜로라도주는 수리권 법을 주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콜로라도 농장주들은 올해부터 합법적으로 장비를 직접 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디어를 비롯한 제조사는 진단 소프트웨어 및 기타 도구에 대한 매뉴얼을 제공해야 한다. 콜로라도는 미국 최초로 수리권 법안을 통과시킨 주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 수리권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은 제조업체가 장비를 제3자가 수리할 수 있다고 명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수리권과 대기오염방지법은 언뜻 보면 관련 없어 보이지만, 환경적 및 규제적 맥락에서 연관된 부분이 있다. 수리권이 보호되면 폐기되는 제품과 부품의 양이 줄어 환경적으로 이득이 된다.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