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사고 발생의 시그널을 주지 못하는 ESG평가
- ESG평가의 본질적인 한계를 인식해야
- 사회 영역의 데이터 부족은 풀어야 할 문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산재 사고 사망자는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고사망만인율도 역대 최저인 0.39를 기록했다. 이는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꽤 남아 있다. OECD 평균은 0.29로,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콜롬비아, 멕시코, 터키 정도다. 안전사고는 여전히 산업계와 정부 당국의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안전사고는 ESG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동시에 해결해야 할 어려운 숙제를 안겨준다. 이번 칼럼에서는 안전사고와 같은 사회적 이슈가 ESG 평가와 ESG 투자에 어떤 도전을 던져주는지 살펴보겠다.

 

안전사고 발생의 시그널을 주지 못하는 ESG평가

기업 활동과 관련된 대규모 참사는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최대 철광석생산업체인 브라질 발레(Vale)의 광산 댐 붕괴 사건이다. 이로 인해 270명이 사망했고, 막대한 광산 폐기물이 유출되어 인근 마을과 주변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사고 전까지 발레의 ESG등급은 꽤 높은 수준을 유지했었다. 회사가 지속가능보고서 등 관련 공시를 통해 가장 엄격한 국제 관행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었고, 그 내용을 토대로 ESG평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공시에 의존하는 ESG평가가 이렇게 쉽게 무력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큰 홍역을 치렀던 폭스바겐도 마찬가지였다. 폭스바겐도 해당 사건 직전까지도 높은 ESG점수를 받고,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에 포함되어 있었다.

투자의사 결정에서 ESG를 고려하는 것을 ESG투자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투자와 달리, ESG와 관련된 요소를 추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ESG 관련 리스크를 낮추고, 장기적인 수익을 제고한다는 것이 ESG투자의 핵심 전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5년 개정된 국민연금법에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대상과 관련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조항도 신설됐고, 국민연금공단은 이를 수행하기 위해 ESG평가 등 리서치를 직접 수행하고 있다.

ESG투자는 ESG평가를 기반으로 하는데, ESG평가가 중요한 사건 사고에 대해 유의미한 시그널을 주지 못한다면, ESG투자가 과연 의미 있다고 볼 수 있을까?

 

ESG평가의 본질적인 한계를 인식해야

ESG등급 자체에 대한 한계는 이미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해외에서도 테슬라가 한 글로벌 ESG지수에서 제외됐을 당시, ESG평가 지표가 적절한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ESG등급은 광범위한 환경 지표, 사회 지표 및 지배구조 지표가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물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수많은 지표가 ‘뭉쳐져’ 있다. 이와 같은 ESG등급은 한 가지 암묵적인 전제를 하고 있는 셈인데, 어떠한 지표의 ‘낮은 성과’가 다른 지표의 ‘높은 성과’로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전과 관련된 지표가 낮아도, 다른 지표의 점수가 높으면 전체 등급은 비교적 높은 수준을 달성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ESG평가 모형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본다. 제도적으로 잘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면, 실제 사고나 법 위반 사례가 있어도 꽤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법규 위반 건수 등의 데이터는 ‘여러 지표 중 하나’에 반영될 뿐이다. 만약 어떤 기업이 동종업계 내에서 안전 관련 법규 위반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면, 이는 상당히 중요한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ESG등급만 봐서는 이러한 시그널을 포착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모형을 사용해도 결국은 개별 지표가 합산·평균되는 과정이 가져오는 본질적인 한계는 해소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ESG등급은 ESG투자의 ‘전부’가 아니다.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ESG통합이 이루어지려면, ESG등급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들을 들여다보고, 이를 전통적인 재무 분석과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글로벌 운용사들이 ESG등급을 “출발점(Starting point)”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SG등급에서 분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다.

기후리스크의 사례를 보자. 최근 몇 년간 ESG평가와 별개로 기후리스크를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와 툴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ESG평가에 분명히 기후변화 요소가 포함될 텐데 왜 굳이 다른 툴이 필요할까? 정답은 단순하다. ESG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기후리스크가 고려되었다고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ESG등급으로 뭉쳐서 보기에는 너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것이다. ESG요소가 투자 리스크로 인식되는 현재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생물다양성, 인적자원관리, 공급망 관리 등 다른 중요한 ESG이슈들도 기후변화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사회 영역의 데이터 부족은 풀어야 할 문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데이터 문제다. 이는 ESG평가와 ESG통합의 효용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안전, 노동, 소비자 이슈 등을 포함하는 사회(S) 영역은 환경(E) 영역에 비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보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에 따라 투자의사 결정에서 기후변화나 지배구조 요소에 비해 사회 요소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진다.

회사가 야심 찬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계획을 발표했다고 하자. 회사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회사의 감축 목표와 계획이 실행 가능성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그린워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데이터는 정부 규제 덕분에 비교적 고르게 공시가 된다. 따라서 회사의 과장된 공시는 실제 배출량 추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이슈, 예를 들어 산업안전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량 데이터가 마땅치 않다. 공시를 하는 기업들도 있으나 자발적인 공시인 까닭에 아직 공시하는 기업이 많지 않고, 공시 양식이 규격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비교가 어렵다. 소비자 문제나 공급망 관리의 경우는 통일된 지표도 없고, 데이터 부족이 심하다.

따라서 사회 이슈와 관련해서는 ESG평가를 통해 기업의 실제 관리 수준을 판단하기가 훨씬 어렵다. 심각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회 영역의 정보 공시가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기후 관련 공시 이후에 착수할 주제 중 하나로 산업 안전 이슈를 포함하는 인적자본관리를 선택했다. 공시 기준이 마련됨에 따라 활용 가능한 데이터이 양과 질이 모두 개선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시 데이터의 양과 질이 개선된다고 하여 ESG평가의 본질적 한계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를 비롯한 정보 사용자들은 공시 데이터의 활용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공시 개선과 함께 실질적인 ESG통합이 수행될 때 이루어질 때, ESG리스크를 고려하는 ESG투자가 중장기적인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담부서를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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