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가 지난 7월 23일 기념비적인 의견서를 발표했다. 요점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파리협정 등 국제 조약에 의해 1.5도 이하로 온도 상승을 억제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그리고 그 의무를 위반하면 국제 위법 행위로 간주되어 책임을 지게 된다. 단, 1.5도 이하로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충분한 수준의 조치를 수행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 조치가 부족했다고 판단되면 책임이 성립된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 의견서가 바로 법적 구속력을 발휘하지는 않으나 국제법적인 기준을 형성하여 각 국가에서 일어나는 법적 분쟁에 상당한 영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기후소송을 제기해 왔던 NGO들은 앞다투어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역사적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주요 선진국들은 ‘인과적 기여도’가 크므로, 소송·배상 압력에 가장 먼저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물리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환 리스크를 높여라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리스크는 전환 리스크와 물리적 리스크로 나뉜다. 전환 리스크는 탄소세와 같은 정책의 변화 등으로 인해 특정 기업의 비용이 늘어나거나 특정 자산의 경제성이 사라지는(좌초자산) 리스크를 의미한다. 물리적 리스크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리스크다. 최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폭우, 폭염 등이 대표적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물리적 리스크로 인한 피해를 의미한다. 이번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은 각 국가가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에 따른 물리적 리스크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며, 각 국가는 물리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제는 물리적 리스크와 전환 리스크가 서로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져 평균 기온이 상승할수록 물리적 리스크는 커진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규제를 도입해야 하므로 전환 리스크가 커진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물리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환 리스크를 높여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기후정책, 늦을수록 더 과격해진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누적된 온실가스 배출량과 거의 선형 관계이다. 연간 배출량이 아니라 ‘누적’ 배출량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곧 넷제로에 도달하는 속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2050년에 넷제로에 도달하는 것과 2070년에 넷제로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에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서 ‘탄소 감축 노력이 늦어질수록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정책적 함의가 도출된다. 누적된 배출량이 많을수록 짧은 기간에 더 빠르게 많은 양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야기한 온실가스 배출을 막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온실가스 배출 비용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투자를 하는 대신 그냥 돈 조금 내고 배출하면 그만이다. 온실가스 가격이 높아야 경제 주체는 온실가스 배출 비용을 내는 대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투자에 나서게 된다. 적절한 수준의 온실가스 가격이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의 근간이 되는 이유다.

따라서 저탄소 정책의 핵심은 탄소 가격이고, ‘더 과격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더 높은’ 탄소 가격이 필요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결국 1.5도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는 곧 온실가스 배출에 높은 비용을 부과하라는 의미가 된다. 금리와 물가상승률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높은 물가상승률을 빠른 시간 내에 낮추기 위해서는 베이비 스텝이 아니라 자이언트 스텝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늦었을까? 파리협약이 체결된 2015년 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8.5% 증가했고, 2024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펼치는 화석연료 중심 정책으로 인해 약 40억톤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쁜 결과를 막기에는 늦지 않았으나 최선의 타이밍은 놓쳤다고 보는 것이 중론인 듯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각해 볼 때 각 국가가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급격한 정책 변화, 즉 탄소 가격의 빠른 상향 조정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모든 급격한 변화가 그러하듯 탄소 가격의 급격한 변화도 상당한 혼란과 고통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안전하십니까?

물론 이는 예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문투자자로서는 대비할 의무가 생긴다.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하는 글로벌 대형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 번째는 리스크 모니터링이다. 내 포트폴리오의 기후변화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표가 가중평균탄소집약도 (Weighted Average Carbon Intensity, WACI)다. 내 포트폴리오에 들어있는 기업들의 탄소집약도(매출액 단위당 온실가스 배출량)를 투자 비중으로 가중하여 평균한 값이다. 계산이 쉬우면서도 탄소집약도가 높은 기업에 대한 익스포저를 잘 나타내준다는 점에서 선호된다. 기후리스크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WACI가 벤치마크 지수 대비 낮다는 점을 공개하는 경우도 많다.

탄소 가격 충격에 대한 더 정밀한 분석을 위해 탄소 가격의 변동 시나리오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지역별로 적용되는 탄소 가격이 다르고, 또 이미 비용으로 반영되고 있는 탄소 가격은 배제해야 하므로 제대로 분석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대부분 전문 데이터 업체의 도움을 받는다.

두 번째는 고위험 기업에 대한 조치다. 위험도가 높은 기업, 예를 들어 화석연료 발전 기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옵션은 세 가지다. ▲투자하지 않기(매도, 신규투자 제한 등) ▲동일 섹터내 우수기업에 투자하기 ▲주주관여활동으로 변화시키기다. 실물경제의 변화도 야기하면서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도 낮추는 수단으로서 주주관여활동이 가장 모범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주주관여활동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매도할 수 있다.

다만, 대형 투자자의 경우 특정 섹터에 전혀 투자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기후리스크가 높은 기업의 비중은 축소하고 동종 업계 내 기후리스크가 낮은 기업(탄소집약도가 낮거나 적절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수립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마지막은 공시다. 대형 투자자들은 보통 투자의 ‘최종 수혜자’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산운용사의 투자 수익은 국민연금과 같은 자산소유자에게 귀속되고, 자산소유자의 투자 수익은 연금 가입자와 같은 최종 수혜자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이들의 기후리스크 관리는 최종 수혜자의 돈을 맡은 자로서 ‘수탁자 책무’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수탁자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였는지를 공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정보와 금융, 저탄소 전환을 위한 핵심 인프라

투자자가 포트폴리오의 기후리스크, 특히 전환 리스크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후 관련 정보가 필요하다. 공시 정보가 미흡하면 그다음 단계도 모두 미덥지 않아진다.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정보는 회사의 재무보고 범위와 정합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즉, 연결기준의 배출량이 필요하다. 그래야 탄소 가격이 실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온전히 측정할 수 있다. 그다음은 온실가스 감축 경로다. 단순히 한 시점의 목표가 아닌 5년 단위 혹은 10년 단위로 어떤 경로를 거쳐 넷제로에 도달할지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탄소 가격 상승 리스크에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ESG정보공시나 금융기관의 기후리스크 관리에 관한 정책은 인기 있는 정책이 아니다. 고용을 늘리고 투자한 주주들의 수익을 올려주는 재생에너지 지원 정책과 같은 것에 비해 추진할 유인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저탄소 전환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인프라’다. 정보와 금융이 없이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규율 있는 자본 배분이 전환의 성패를 가른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담부서를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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