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큰 손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도 ESG 평가 강화에 나섰다. 내년 2분기부터 증권사 리포트에 ESG를 담으라고 요구하고 나서면서, 앞으로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ESG를 포함한 리포트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큰 손 투자자에게 기업의 ESG 요소가 초미의 관심사로 몰린 와중에, 해외 큰 손 연기금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내 기업은 23곳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경제연구소 ‘해외 주요 연기금 및 자산운용사의 책임투자와 투자제한 동향으로부터의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화·SK홀딩스·우리금융그룹·두산·포스코 등 굵직한 국내 기업들이 세계 10대 연기금 투자 배제 기업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은 것으로 드러났다. 크게 ▲무기생산 ▲담배, 석탄 생산 ▲인권 ▲이란 제재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 네거티브 스크리닝 종목에 해당하는 ‘무기’
해당 기업 8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배제 건수 최다
미얀마 군부의 시위대 폭력 진압에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는 등 한국산 무기는 세계 각지에 활발히 수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 생산으로 투자 배제 리스트에 오른 한국 기업은 8곳, 단일 기준으로 최다수 기업이 배제된 것으로 밝혀졌다.
작년 11월 분산탄 사업을 완전히 분리 매각한 한화가 대표적인 투자 배제 기업에 올랐다. 한화는 집속탄 및 대인지뢰 생산을 이유로 네덜란드 공적연기금인 ABP와 APG, 노르웨이 GPFG 등 세계 10대 연기금 2곳을 포함해 총 13곳의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로부터 투자 대상에서 제외 당했다. 무기 생산 관련 산업에 투자를 금지하는 국제 조약에 근거한 제품 기반 배제 유형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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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기금은 대인지뢰나 생화학 무기류 등을 생산하는 기업에 철저히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풍산·풍산홀딩스·LIG·LIG넥스원 또한 집속탄 생산을 사유로 네덜란드 APG와 영국 아비바 그룹 등 각각 12곳, 5곳, 2곳, 7곳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집속탄은 한 개의 폭탄 속에 또 다른 폭탄이 들어가 있는 무기로,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대량 살상하는 대표적인 무기다.
풍산은 네덜란드의 자산운용사 로베코(Robeco)로부터 로베코가 운용하는 대부분의 자산에 적용되는 일반적 원칙인 내부 지속가능성 원칙을 위반해 투자 배제 리스트에 올랐다. 풍산을 제외한 또 다른 자산운용사인 스웨덴 SEB 또한 펀드 전반에 적용되는 주요 투자배제 기준에 무기를 넣고 있었다.
LIG넥스원은 네덜란드 사회보장기금 PGGM으로부터 제품기반 투자배제 유형에 의해 집속탄 생산 배제 기준에 따라 리스트에 올랐다. PGGM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무기를 생산하거나 거래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고 있다.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무기란 대규모로 사용되는 무기로 실제적 또는 잠재적인 고통을 유발하며 민간인을 상대로 사상자를 초래할 수 있는 종류의 무기를 의미한다.
한화·풍산 외 대인지뢰와 민간 무기류를 생산하고 있는 S&T다이나믹스는 네덜란드 ABP와 APG, PGGM(사회보장기금)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특히 PGGM의 경우, 무기 관련 기업을 투자대상에서 제외했을 때 지분 투자 대비 수익률이 약간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칙적 배제라는 규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대표적 죄악주 중 하나인 담배
생산 넘어 유통 기업까지 배제 대상
대표적인 죄악주에 해당하는 담배와 관련된 KT&G·포비스TNC·BGF리테일·GS리테일 국내 기업 4곳도 세계 4위 공적연기금 네덜란드 APG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담배 수출로 매년 1조원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KT&G의 경우 노르웨이 GPFG, 스웨덴 SEB, 호주 AMP 캐피털 등 8곳으로부터 배제된 것으로 밝혀졌다.
호주 AMP 캐피털의 경우 담배, 무기 등을 제조하는 기업에 투자를 배제한다는 기준에 따라 약 4500만달러 상당의 담배 관련 주식 및 채권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담배를 투자 배제 기준으로 삼는 큰 손들의 경우 유통까지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스웨덴 SEB은 담배 생산 기업에 대한 투자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유통회사의 경우 담배로 인한 매출액이 5% 이상이면 투자 대상에서 제외시킨다. BGF리테일의 경우 2017년부터 필립모리스에서 출시한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독점 판매 중이며, GS리테일의 경우 2019년 액상담배 판매를 중단하였으나 여전히 투자 배제 리스트에는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 및 반부패 등 노동 이슈도 배제 사유
국내 기업의 인권 침해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포스코·포스코인터내셔널·SK홀딩스·SK이노베이션·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한국전력·대한해운·팬오션 9곳이다. 대부분 국내 ESG 등급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20년 KCGS 평가결과 사회영역 A+를 받았고, ESG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A+, 한국조선해양은 B+를 기록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스웨덴 공적연금 AP7과 노르웨이 공적연금 GPFG로부터 투자 대상에서 제외당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1996년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해 면방공장 2개와 면펄프공장 1개를 운영했는데, 2013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목화 채취에 아동들을 동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지에서 불매운동을 당했다. 국제 시민단체들이 나이키 등 의류업체들에게 우즈베키스탄산 면화 사용 중단을 요청해 나이키와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AP 윤리위원회는 2016년부터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모회사인 포스코를 대화 진행 리스트에 올렸으며 2016년 2월부터 투자를 배제 당했다. 이후 대화를 통해 2018년 투자 배제에서 대화 진행 기업으로 대응 수위가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관찰 대상 기업으로 지정된 것으로 밝혀졌다.
노르웨이 GPFG의 경우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인도네시아 팜오일 농강 개발사업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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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인터내셔널은 자사 6대 전략사업 중 하나인 식량사업을 위해 인도네시아의 아열대 산림을 팜오일 농장으로 개간했는데, 이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GPFG는 2015년 8월 생태보존 위반을 근거로 투자를 중단했다. 당시 GPFG는 포스코 지분 0.91%(약 1억9810만달러), 포스코인터내셔널 지분 0.28%(약 900만달러)을 보유하고 있었다.
더불어 터키에서도 인권침해 의혹이 불거졌다. 포스코는 터키법인인 포스코 아싼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지난 2017년 11월 노조를 설립 하자 80명을 무더기 해고하고, 노동조합 불인정 및 단체교섭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터키 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해외 근로자를 해고 및 교섭 불가로 인해 국제적 노동탄압 의혹이 제기됐다.
SK홀딩스와 SK이노베이션의 경우 페루 공장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는 이유로 스웨덴 AP7과 SEB의 리스트에 올랐다. SK이노베이션이 2004년부터 가스 생산을 시작한 페루 카미시아 가스전 사업과정에서 주거지 침범과 감염병 노출 등의 이유로 접촉이 금지된 원시부족과 접촉해 원시부족 생태계에 위협을 끼쳤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AP 윤리위원회는 보건 및 안전, 부정적인 환경 영향, 노동법, 부패, 그리고 점령 지역에서의 운영 등 협약 위반에 해당하는 기업을 투자에서 제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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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해양은 한국에서의 인권 침해를 사유로 스웨덴 AP7에게, 대한해운과 팬오션은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에서 작업 환경이 극도로 열악하고, 해체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피해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선 해체 사업을 진행해 노르웨이 국부펀드 GPFG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치적 관계도 스크리닝 기준에 포함
미국 캘퍼스(CalPERS), 이란 제재 위반 기업 리스트에 넣어
이란과의 관계에 민감한 미국의 대형 연기금 캘퍼스(CalPERS)의 경우 이란 제재를 어겼다는 사유로 국내 기업 5곳을 투자에서 배제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란 국영 해운회사와 선박 건조 계약을 체결해 캘퍼스의 감시·감독 대상으로 지정됐다. 아직 배송된 선박이 없다는 점은 참작돼 투자 배제까지 당하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우리금융그룹은 자회사가 이란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2019년 12월 매각·투자배제 검토 대상으로 새롭게 선정됐다.
두산은 2014년 이란 기업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돼 2015년 11월부터 매각·투자 배제가 진행됐다. 두산중공업과 두산밥캣의 경우 모회사 두산이 배제 대상에 오르면서 캘퍼스의 감시·감독 대상에 함께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에 2017년 11월, 캘퍼스에게 이란 관련 산업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서한까지 보냈지만, 캘퍼스는 추후 변경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감시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석탄산업 종사 이유로 투자 배제
지구 온도를 상승시키는 명확한 주범이라 불리는 석탄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석탄 채굴에 직접 나서고 있는 경동인베스트와 석탄을 기반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전력이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경동인베스트는 스웨덴 SEB로부터, 한국전력은 노르웨이 GPFG로부터 투자를 배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SEB는 2008년부터 책임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있는 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중부발전·한국남동발전의 석탄 발전 비중이 무려 83.3%에 달해 노르웨이 GPFG 가이드라인 기준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GPFG는 단기적으로 창출되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투자에 해악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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