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범정부적 인권정책 추진체계 등을 규정하고 있는 ‘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을 공동으로 입법예고했다. 기본법에는 국가의 인권보호의무와 함께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이 함께 명시됐다. 환경, 지배구조에 이어 사회까지 법의 테두리로 들어오게 됐다.

인권정책기본법 제22조에는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이 처음으로 명시됐다. ‘기업은 기업활동을 통해 국내외에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3자의 인권침해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되면서다. 

법무법인 지평 민창욱 변호사는 "인권경영 글로벌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기업의 인권 침해는 직접 침해하거나(caused), 기여하거나(contributed to), 직접적으로 연결된(directly linked to)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며 "22조에 ‘관여’라는 표현을 썼다는 건 기업의 인권 책임을 넓은 범위에서 해석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의 해외 인권침해 사례는 여러 건 알려진 바 있다.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경우 미얀마 군부와 거래를 통해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터키에서 노조 설립에 가담한 노동자를 무더기 해고하는 등 국제적으로 노동탄압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페루 아마존 광구에서 가스를 추출해 운송하는 과정에서 접촉이 금지된 원시부족과 접촉해 스웨덴 공적연기금 AP7으로부터 투자 배제를 당하기도 했다.

현행법에선 기업이 공급망에서 인권침해를 일으켰을 때 법적 처벌 근거를 명확히 찾기 어려웠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상수 교수는 “지금까지 기업이 일으킨 인권침해는 직접적인 고의나 과실이 입증될 경우에만 성립됐다면, 앞으로 민법과 형법, 노동법 등과 연계돼 기업의 사전예방조치 유무로 고의나 과실을 입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나 EU의 공급망 실사 같은 법안이 도입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의 인권존중책임 실천을 장려·지원하여야 한다’는 제21조 1항에 근거해서다. 법무법인 지평 민창욱 변호사는 “해외에서도 소프트 로(soft law)에서 실사법 같은 하드 로(hard law)를 입안했다”며 “지금은 기업의 인권 책임 수준을 명시한 선언적 조항이긴 하지만, 국가의 규제 의무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좀 더 강한 법안이 입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상수 교수도 “이번 법안은 기업이 공급망 인권침해를 관리해야 할 새로운 의무를 만들었다고 본다”며 “공급망 인권침해 사전 예방 조치 의무를 법제화할 수도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해석했다. 지금까지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노동법 등이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결과’를 처벌하는 사후제재 성격이 강하다면, 기본법에 담긴 기업의 인권 책임은 사전 예방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당장 변화를 미칠 수 있는 조항은 23조다. ‘정부는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의 실천을 증진하기 위하여 이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고 보급하여야 한다’는 제23조 1항은 의무조항으로, 만약 입법이 된다면 민간 기업에 적용될 정부의 지침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업이 기업의 인권존중책임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 표준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23조 2항도 논란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K-ESG 가이드라인을 통해 S(사회)에 대한 공시도 제시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자체적인 정보 공개표준을 제정한다면, 기업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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