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석유기업 사우디 아람코가 산업 현장에 적용 가능한 흐름전지를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했다.
22일(현지시각), 아람코는 철-바나듐(Fe/V) 기반 흐름전지(flow battery)를 자사 가스 생산 현장에 처음으로 실제 적용했다고 밝혔다.
흐름전지는 전기를 액체 전해질에 저장한 뒤 필요할 때 다시 전기로 꺼내 쓰는 배터리다. 전해액은 외부 탱크에 보관되며, 이를 셀로 흘려보내 충·방전을 반복한다. 저장부와 변환부가 분리된 구조로, 전해액 탱크만 키우면 용량도 비례해 확장되는 특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장시간 저장과 대규모 운용이 가능한 구조로, 차세대 에너지저장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밀도가 낮고, 설비 규모가 커지며, 전해액의 핵심 소재인 바나듐은 고가·공급 불안정성 등의 이유로 흐름전지는 구조적 한계와 원가 부담으로 인해 수십 년간 상용화가 지연돼 왔다. 특히 혹서와 고부하가 반복되는 산업 현장에서 냉각 없이 장기 운용 가능한 안정성까지 충족한 사례는 전무했다.
아람코는 철 성분을 결합한 전해질을 통해 바나듐 사용량을 줄이고, -8도에서 60도까지 냉각장치 없이 작동 가능한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번에 사우디 와드 알-샤말 가스 생산 기지에 배치된 1메가와트시(MWh)급 흐름전지는, 흐름전지가 고온·고부하 산업 현장에 실질 적용된 첫 사례로,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한 계기로 평가된다
혹서 기후 견디는 1MWh급 저장 시스템…가스정 5곳에 25년간 전력 공급
아람코는 사우디 북서부 와드 알-샤말(Wa’ad Al-Shamal) 지역의 원격 가스 생산 거점에 1메가와트시(MWh) 규모의 Fe/V 흐름전지를 설치해, 총 5개 가스정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시스템은 기존의 태양광-납축전지 조합을 대체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대안으로, 아람코가 자체 특허를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흐름전지 전문기업 롱커파워(Rongke Power)와 공동 개발한 것이다.
철-바나듐 전지는 섭씨 -8도에서 60도까지 별도의 냉각 시스템 없이 작동 가능하며, 25년 이상의 수명을 보장한다. 고온·극한 환경에서도 성능 저하 없이 작동하고,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화재 위험이 낮고 유지비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전력 수요가 변동적인 산업 현장에서도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사우디처럼 무인·원거리 생산시설이 많은 지역에 적합한 솔루션으로 평가받는다.
넷제로 가속화 발판…전통 에너지 기업의 기술 기반 전환 시도
아람코는 이번 프로젝트가 자사의 2050년 스코프 1·2 온실가스 넷제로(Net-Zero)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특히 철-바나듐 기반 기술은 기존 바나듐 흐름전지보다 바나듐 사용량을 줄이고 전해질 효율을 높이는 등 경제성과 기술적 진보를 모두 달성했다는 설명이다.
기존에는 자사 가스정에 태양광 패널과 납축전지를 조합해 전력을 공급해왔지만, 이번 상용화로 산업용 재생에너지 저장 기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게 됐다.
아람코 기술총괄 수석부사장 알리 알-메샤리(Ali A. Al-Meshari)는 “이번 흐름전지 시스템은 석유·가스 산업의 에너지 저장 분야에 전환점을 제공한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산업 현장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