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CB

유럽중앙은행(ECB)이 기후 관련 재무공시에 ‘자연 손실 지표(nature loss indicator)’를 최초 도입했다. 이는 통화정책 자산 운용의 환경 리스크 관리 범위를 기후변화에서 생물다양성까지 확대한 조치다. 

ECB는 13일(현지시각) 발표한 ‘제3차 기후 관련 재무공시 보고서’를 통해, ECB 본부와 유로존 국가 중앙은행이 보유한 통화정책 자산, 외환보유고, 자체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기후 데이터를 공개하며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보고서에는 자연 손실 지표 평가 외에도 금융자산별 탄소 배출 감축 성과, 녹색채권 투자 확대 계획 등 주요 환경 성과가 함께 담겼다. 

 

자연 손실 리스크 노출…30%는 고위험 산업에 집중

자연 손실 지표는 유로시스템이 보유한 자산 중, 생태계 의존도나 영향력이 큰 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나타낸다. 

이번 평가에 따르면, 유로시스템이 보유한 회사채 중 약 30%가 유틸리티, 식품, 부동산 등 자연 손실 리스크가 큰 산업에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ECB의 자체 자금과 직원 연기금 중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분의 40% 역시 고위험 산업군에 상당 부분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ECB는 “초기 단계 지표라 추산치에 불과하지만, 생태계 훼손 및 생물다양성 감소가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기후위기 대응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ECB

보고서에서는 ECB의 탄소 배출 감축 성과도 포함됐다. ECB는 2021년부터 탄소 배출이 적은 기업 위주로 자산을 재편하는 ‘틸팅(tilting)’ 전략을 시행해 왔다. 이는 기후 리스크에 취약한 회사채 자산군 가운데, 기후 대응 성과가 우수한 발행기관의 채권을 중심으로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평가 결과, 유로시스템의 통화정책 자산 및 외환보유고 대부분에서 절대 배출량과 포트폴리오 대비 배출 비중이 모두 감소했다. 재투자 규모는 2023년 중반부터 축소됐지만, 회사채 자산군의 2021~2024년 전체 배출량 감소분 중 약 25%가 틸팅 전략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녹색채권 비중 28%로 증가… 2025년 32% 확대 계획

ECB는 자체 자금 포트폴리오에서 녹색채권 비중을 작년 20%에서 28%로 확대했으며, 약 64억유로(약 10조300억원)를 녹색 전환에 투입했다. 지난해 녹색채권 비중은 25%였으며, 45억 유로 이상의 녹색 전환 자금이 제공됐다. ECB는 2025년에는 녹색채권 비중을 32%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ECB는 지난해부터 APP(자산매입프로그램)과 PEPP(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 내 회사채 포트폴리오에 대한 중간 배출 감축 목표의 이행을 약속했다. 이는 EU 벤치마크 규정에 명시된 지침을 반영한 중간 목표이며, 연평균 탄소배출 강도를 매년 7%씩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포트폴리오가 감축 목표에서 벗어날 경우, 관리위원회가 보완 조치 여부를 검토한다. 

직원 연기금의 2024년 탄소 배출량이 전년 대비 20% 감소하면서 중기 목표를 유지하고 파리협정 벤치마크 기준도 유지한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ECB는 보고서에서 발행기관 가치사슬 내 스코프 1-3 전체 배출량에 대한 공시 불일치, 데이터 정밀성 부족 등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가 간 통일된 공시 기준과 정량 데이터의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CB는 “자연 자산 손실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며 “앞으로 공시 정확도와 범위를 더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ECB는 정치적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기후 변화 대응과 금융 리스크 관리를 위한 규제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이린 힘스커크(Irene Heemskerk) ECB 기후변화센터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불든, 우리의 책무를 이행하는 데에만 집중하겠다”며 “기후 및 환경 리스크는 은행이 반드시 관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규제 변화 가능성과 무관하게, ECB는 독자적이고 일관된 기후 금융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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