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은행의 자본 건전성 평가에 기후변화 리스크를 상시 반영하기로 했다. 감독평가체계(Supervisory Review and Evaluation Process, SREP)에 기후 및 자연자산 위험 요소를 포함시킴으로써, 저탄소 전환을 위한 자금흐름 유도에 나선 것이다.
17일(현지시각)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ECB의 패트릭 에이미스(Patrick Amis) 전문기관·중소규모기관 총괄국장은 “기후 및 자연 관련 리스크를 ‘일상적이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감독 평가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기후요인, 이미 SREP 점수에 영향 주고 있어
ECB는 은행이 직면한 리스크를 평가하고, 해당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는지를 점검한다. SREP 점수는 은행의 개별 자본요건(Pillar 2 Requirement, P2R)을 산정하는 핵심 기준으로, ECB가 각 은행의 리스크 흡수능력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감독 수단이다.
에이미스 국장은 현재 기후요인이 일부 은행의 SREP 점수에 이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영향을 받은 기관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ECB 기후변화센터의 아이린 힘스커크(Irene Heemskerk) 센터장은 “정치적 바람과 무관하게, 우리는 기후 및 환경 리스크를 은행이 반드시 관리해야 할 요소로 본다”고 밝혔다. ECB는 5년 전부터 기후 리스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으며, 내부 통제가 미흡한 은행에 벌금 부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향후 제재 결정은 ECB 웹사이트에 공개될 예정이다.
ECB는 이러한 변화가 금융기관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에이미스 국장은 “일부 기관에 대해 감독 강도를 높였으며, 전체적으로도 뚜렷한 개선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ECB, 전환계획을 감독에 포함할 계획
이번 조치는 ECB가 기후위기를 은행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는 ‘재무 리스크’로 간주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국 연준(Fed) 의장의 “기후는 우리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 분야”라는 발언과 대조적이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당국 간 접근 격차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글로벌 주요 은행 간 녹색 전환 전략도 엇갈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BNP Paribas)는 세계 최대 녹색채권 및 녹색대출 인수기관이다. 반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JPMorgan Chase)는 화석연료 대출과 채권 발행 실적이 가장 많은 기관으로 집계됐다.
ECB는 향후 전환계획(transition planning)을 감독에 포함할 계획이다. 이는 은행이 고객사의 저탄소 전환 속도를 점검하고, 그에 따라 금융 흐름을 조정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이다. 에이미스 국장은 “단순히 고탄소 산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산업의 전환을 위한 자금을 공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른 유럽 중앙은행들도 기후 대응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7월 30일까지 은행·보험사의 물리적 리스크 및 전환 리스크 관리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 중이다. 영란은행은 “극한기후는 직접 손실과 사업 모델 변화 등을 통해 금융기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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