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은행의 시장 위험 자산에 대한 규제를 담은 '트레이딩계좌기본검토(Fundamental Review of the Trading Book, FRTB)'의 도입 시점을 또다시 미루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번 연기는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금융국이 여전히 해당 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글로벌 금융 규제의 발걸음이 또 한번 비껴가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22일(현지시각) 복수의 EU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EU 집행위가 FRTB 시행 시점을 2027년 1월로 재연기하는 쪽으로 내부 결정을 사실상 굳혔다"고 보도했다. 

이번 규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마련된 국제기준인 '바젤 Ⅲ'의 일환으로, 은행이 보유한 트레이딩 자산의 리스크를 측정·보고하는 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도입 일정을 내놓지 않았고, 영국도 올해 초 2027년으로 연기했다.

EU 금융담당 집행위원 마리아 루이스 알부케르케는 이달 13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이미 연기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EU 집행위는 6월 말 이전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유럽 은행, 미국·영국과 경쟁 불균형 우려…2027년으로 또 연기

EU 집행위는 올해 3월, 은행과 감독 당국을 대상으로 FRTB의 도입 시점에 대한 의견수렴을 진행했다. 당시 선택지는 ▲2025년 도입 유지 ▲12개월 연기 ▲미국·영국 안과의 정합성을 위한 조정 등이었다.

유럽은행연합회(EBF)는 “미국·영국과 경쟁하는 회원사들은 1년 연기를 선호한다”고 밝혔고, 국제스왑파생상품협회(ISDA)도 “자체 회원사 중 상당수가 연기를 지지한다”고 전했다. 이번에 추가로 1년 연기해 2027년 1월 1일로 늦추는 조치는, 미국·영국 경쟁사 대비 불리한 처지를 우려한 유럽계 은행들의 이러한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EU 및 회원국 기관의 고위 관계자 5명이 언급했다.

EU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마리아 루이스 알부케르케(Maria Luís Albuquerque) EU 금융담당 집행위원은 5월 13일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연기 방침을 사전에 알렸다. EU 집행위원회는 원래 6월 말까지 FRTB 연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보다 앞서 연기 방침이 내부적으로 공유된 셈이다. 

 

ECB·회원국도 도입 고심…“유럽 은행 경쟁력 유지가 중요”

FRTB는 은행의 트레이딩 자산에 대한 보고 기준과 리스크 측정 방식을 규정하는 중요한 규제다. 미국은 현재까지 바젤 Ⅲ 전체 도입을 지연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일부 기존 규제조차 완화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는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강화됐던 규제 기조에서 완전히 반전되는 흐름이다. 

은행의 리스크 측정 방법 비교 / ChatGPT 이미지 생성
은행의 리스크 측정 방법 비교 / ChatGPT 이미지 생성

EU 최고 은행감독기구이자 그간 바젤 Ⅲ 조기 도입을 강하게 지지해온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달 초 절충안을 제안했다. ECB는 각 은행이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내부모형접근법(Internal Models Approach)의 규제 도입은 1년 늦추되, 모든 은행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표준방식(Standardised Approach)’은 2026년부터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회원국 정상도 동조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EU, 미국, 영국 간 규제의 동기화(synchronisation)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올해 초 자국 내 바젤 Ⅲ 도입을 2027년으로 미뤘고, 미국은 아직 구체적 일정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유럽 은행들은 EU에 “해외 경쟁사들이 부담하지 않는 규제를 도입해선 안 된다”고 요구해왔다. 독일 은행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의 베티나 오를로프(Bettina Orlopp) CEO는 20일 한 콘퍼런스에서 “이 규제는 미국에서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유럽 은행들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EU는 FRTB를 제외하고는 이미 올해 바젤 Ⅲ 대부분의 규제를 시행했고, 중국·일본·캐나다는 이보다 앞서 해당 규제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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