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침체에 빠진 유럽 화학산업을 살리기 위해 공급망 안정, 에너지 가격 대응, 규제완화 등을 망라한 종합대책을 가동한다. 특히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화학물질의 안정적 생산을 위한 ‘핵심화학물질연합(Critical Chemical Alliance)’을 신설하고, 일부 고위험 물질에 대한 규제 유연화도 추진한다.
공급망 주권 수호 위한 이니셔티브…에너지 지원도 병행
EU 집행위원회는 8일(현지시각) ‘화학산업 행동계획(Action Plan for the Chemicals Industry)’을 발표하고, 화학산업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 회복을 위한 4대 중점과제를 제시했다.
핵심화학물질연합의 출범도 행동계획 안에 포함됐다. EU는 이 연합을 통해 회원국, 산업계와 함께 주요 생산거점을 보호하고, 역외 의존도가 높은 물질의 공급망 왜곡과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산업담당 집행부위원장은 성명에서 “화학은 모든 산업의 어머니이며, 제조 제품의 96% 이상이 화학물질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번 행동계획은 유럽 화학산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사업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특히 메탄올은 80% 이상을 역외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들을 철저히 보호해야 유럽의 산업 주권을 지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최근 몇 년 사이 20개 이상의 화학 생산시설이 폐쇄되며 경쟁력이 급락한 상황에 대한 구조적 대응 성격이 강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EU에는 석유화학의 핵심 생산 설비인 스팀 크래커가 40여 개 있으며, 집행위는 해당 시설 유지에 정책 지원을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집행위는 EU산 화학제품 비중의 확대를 위해 공공조달 기준을 재설계하고 에너지 보조금 확대 및 인허가 간소화, 저탄소 수소·바이오매스 등의 자원 도입도 병행하기로 했다.
화학산업 옴니버스 연간 5800억원 절감 기대…화학물질 규제 완화로 내부 충돌
EU는 이번 산업 재건 전략의 일환으로 간소화 정책인 ‘화학산업 옴니버스 패키지’를 연내에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해당 패키지에는 유해 화학물질 라벨링 규정의 간소화, 화장품 내 CMR(발암성·돌연변이 유발·생식 독성) 물질 사용에 대한 예외 기준 마련, 비료 등록 절차 간소화 등이 포함된다. 집행위는 이 조치만으로도 연간 3억6300만유로(약 5841억원)의 산업 비용 절감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유럽화학물질청(ECHA)의 기능 확대와 새로운 역할 수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재정과 조직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기본 규정(ECHA Basic Regulation)’도 함께 제안됐다. 이를 통해 향후 화학물질의 분류·표시, 수입·수출, 폐기물 및 수질 관리 등 다양한 규제를 보다 일관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규제 완화 움직임에는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다고 현지 미디어 EU뉴스는 전했다. 유럽의회 녹색당은 "발암물질 등 유해 물질의 사용을 허용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사회민주당(S&D)은 역시 "유럽 시민의 건강과 신뢰를 훼손하는 조처"라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PFAS에 대한 규제의 유연화 가능성이 주요 논란 지점이다.
이에 대해 제시카 로스월(Jessika Roswall) EU 환경·물·순환경제 경쟁력 담당 집행위원은 “시민 건강과 환경 보호는 성공적인 산업 정책과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계획은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산업의 혁신과 순환경제 전환을 가속화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