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기후공시를 조제로 챗GPT가 만든 이미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기후공시를 조제로 챗GPT가 만든 이미지.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이하 SEC)가 상장기업에 기후 관련 위험 정보를 공시하도록 한 규칙에 대해 법원에서 승소하더라도 실제로 이를 시행할지 여부를 밝히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기후정보 공시 규정을 지지해온 민주당 출신 SEC 위원은 "위원회가 무응답한다는 것은 결국 '기후공시를 시행하지 않겠다'라는 의미"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SEC 기후공시 규칙의 시행? 백지화? 계속 논란

SEC는 23일(현지시각) 제8순회 항소법원에 제출한 현황 보고서에서 “현재로서는 기후공시 규칙을 검토하거나 재검토할 계획이 없다”며, 법원이 소송을 진행해 결론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법원이 기후 공시 규칙에 대한 청원을 기각할 경우, 규칙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한 답변은 회피했다.  

트럼프 정부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SEC의 기후공시 규칙은 2024년 3월 발표된 것으로, 미국 내 상장기업들이 ▲기후 변화가 자사 비즈니스에 미치는 재무적 위험 ▲이를 줄이기 위한 계획 ▲운영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규모 등을 정기 공시하도록 의무화한 규제다. 예를 들어, 폭염이나 홍수 같은 이상기후가 기업의 생산·물류에 영향을 줄 경우, 기업은 그 내용을 투자자에게 알릴 의무가 생긴다. 

이 규칙은 미국 증권시장에서 기업의 기후 리스크 투명성을 높이려는 첫 시도로, 바이든 행정부 하의 SEC가 주도했다. 당시 SEC 위원장인 게리 겐슬러(Gary Gensler)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 제공”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규칙 발표 직후 10일 만에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공화당 소속 25개 주의 법무장관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상공회의소는 시행 중단 가처분을 법원에 요청했다. 이후 소송은 제8순회 항소법원으로 통합돼 심리 중이다. 

 

SEC 위원 내부 갈등 격화… 유일한 찬성 위원 '사실상 폐기'라며 비판

정권이 교체되며 분위기는 급변했다.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 SEC 위원장 겐슬러는 사임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마크 우에다(Mark Uyeda)가 위원장 대행으로 임명됐다. 

우예다는 이후 “규칙에 대한 법적 방어를 중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고, 트럼프 진영 인사로 새로 임명된 폴 앳킨스(Paul Atkins) 역시 규칙 철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EC는 7월 23일 법원에 제출한 현황 보고서에서 “현 시점에서 기후 공시 규칙을 검토하거나 개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규칙을 유지하겠다는 뜻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법원이 SEC의 손을 들어줄 경우 규칙을 그대로 시행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SEC는 “위원회 내부 심의와 표결에 따라 결정할 것이며, 지금으로선 판단할 수 없다”고 답변을 유보했다. 사실상 “시행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SEC, 법원에 '규정 재검토 없다' 통보… 시행 여부는 '침묵'

SEC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민주당 측 위원이자 해당 규칙을 유일하게 지지해온 캐롤라인 크렌쇼(Caroline Crenshaw) 위원은 성명을 내고 “위원회는 규칙을 폐지하려는 정치적 입장을 공식화하지 않고, 법원 판결로 대신 처리하길 원한다”며 “행정절차법에 따라 규칙을 없애려면 공개 토론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을 피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위원회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규칙을 살려도 우리는 그것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나쁜 거버넌스”라고 덧붙였다.

SEC는 2024년 규칙 채택 당시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기후 정책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본격화되며 규칙의 운명은 법적·정치적으로 안갯속이다. 만약 법원이 규칙을 위헌 혹은 위법으로 판단하면 규칙은 완전히 폐기된다. 그러나 법원이 규칙을 유지하더라도, 현재 구성된 SEC 위원회의 다수는 시행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위원 4명 중 3명이 해당 규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