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 자금이 넘쳐나면서, 기후변화 흐름을 주도하는 새로운 ETF의 등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새롭게 등장한 ETF의 숫자는 100개에 달한다. 2019년 같은 시기 45개, 2020년 54개와 비교하면 두 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 ETF 가운데 최근 주목을 끈 것은 지난 6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발행한 탄소전환 ETF(The BlackRock Carbon Transition Readiness ETF) 2종이다. 이른바 저탄소 전환펀드다. 기후 관련 평가점수가 높은 기업 뿐 아니라, 전통산업 중에서 탄소배출량 감소에 적극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미국 내 기업에 투자하는 LCTU(The BlackRock U.S. Carbon Transition Readiness ETF)와 미국 외 기업에 투자하는 LCTD(The BlackRock World ex U.S. Carbon Transition Readiness ETF) 두 가지 종류다. 이들 ETF는 15억달러(1조6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모집해 사상 최대 규모의 ETF로 급부상했을 뿐 아니라, 세계 기관투자가들의 기후 전략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LCTU에는 애플, MS, 아마존 등이 포함됐으며, LCTD에는 네슬레, 로슈그룹(스위스 제약회사), ASML(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등이 포함됐다. 저탄소전환 ETF를 설계한 이유에 대해 블랙록 래리핑크 회장은 자료를 통해 “저탄소 경제를 향한 각 기업의 전략 적응과 혁신, 주도력 등 모든 분야에서 승자와 패자가 등장할 것”이라며 “우리는 많은 기업이 에너지 전환의 선두에 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최근의 탈석탄 움직임, 금융기관들의 포트폴리오 재조정 등에 따라 일각에서는 비판적 목소리도 제기됐다. “정작 전환 자금이 대거 필요한 전통산업이나 굴뚝산업이 코너에 몰리면서, 자본의 흐름이 오히려 탄소배출량 감소에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블랙록은 새로운 ETF를 설계하면서 러셀(Russell) 1000 및 MSCI All World ex-US 지수에 ‘탄소전환 준비점수’를 반영해 포트폴리오 가중치를 구성했다. 5가지 기준(화석 연료, 청정기술, 에너지 관리, 폐기물 관리, 용수 관리)에 걸쳐 다양한 데이터 소스를 활용하고, 여기에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준비 점수를 통합해 개별 기업의 등급을 매겼다.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는 투자자들이 이 ETF에 자금을 대거 투자했다.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수라(Sura) 자산운용, 바르마(Varma) 상호연금보험회사, 프로푸투로(Profuturo) 그룹, FM글로벌, 재보험사인 르네상스레(RenaissanceRE) 등 글로벌 기관 컨소시엄이다.
블랙록, 넷제로 전환 비용 최대 100조달러
마셜플랜 10개와 맞먹는 규모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블랙록이 지난 9일(현지시각) 발간한 보고서(‘A sea change in global investing’)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지속가능ETF는 약 600개가 존재하는데, 향후 5년 내 지속가능 자산운용을 현재 18%에서 37%까지 두 배나 늘릴 계획을 밝힌 투자자들이 많았다. 글로벌 지속가능ETF로 유입된 자금은 2020년 8780만달러(980억원) 가량이었는데, 이는 전년 2980만달러(327억원)에 비해 3배 가량 늘었다.
보고서에는 글로벌 경제가 넷제로(Net-zero)로 가는 데에는 50-100조달러(11경1600조원)의 자본투자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30년 동안 매년 최소 10개의 ‘마셜플랜’, 즉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피해가 컸던 서유럽 16개국에 대한 대대적인 미국의 원조정책을 실행해야 하는 것과 맞먹는 규모다.
블랙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만 홍수, 가뭄, 산불 등 자연재해 등 기후관련 물리적 리스크로 인한 투자 손실은 2억1000만달러(2300억원)에 달했다. 캘리포니아 산불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기후 관련 파산이 생겨났으며, 텍사스 정전사태로 3곳의 에너지 공급업체가 파산을 신청했다고 한다.
기후재앙의 현실화 앞에서 규제의 물결 또한 거세다. “127개 국가가 탄소중립을 이미 선언했거나 선언을 고려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2100개의 기후변화 관련 법률이 도입됐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블랙록 보고서는 “규제의 물결은 자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며, 정부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막기 위해 더 강력하게 규제한다면 현재 정유와 가스기업들의 자산가치 3분의 1이 재무제표상에서 날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블랙록의 ETF 및 인덱스 인베스트먼트 사의 살림 람지 글로벌 대표는 "기후 리스크가 투자 리스크라는 것을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통찰력을 포트폴리오에 통합하기 위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ETF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