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슨모빌이 유럽연합(EU)의 엄격한 플라스틱 규제를 이유로 1억유로(약 1636억원) 규모의 화학적 재활용 투자를 무기한 보류했다. 재활용 과정에서 에너지 회수분을 인정하지 않는 규정 탓에 투자 대비 실익이 줄어들었다는 판단이다.
블룸버그는 18일(현지시각) 엑슨모빌이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중단했으며, 해당 설비는 연간 8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보도했다.
엑슨모빌, "EU 규제 화학적 재활용 투자 가로막아"
잭 윌리엄스 엑슨모빌 수석부사장은 "EU가 탈탄소화 부문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고, 우리도 이에 발맞춘 사업을 준비했는데 경쟁력 있는 투자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부사장은 "로테르담과 안트베르펜에 화학적 재활용을 도입하게 되어 기뻤는데, 불행히도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며 "EU 규제안이 바뀌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재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엑슨모빌이 지적한 규제는 EU가 지난 7월 공개한 화학적 재활용 규제안이다. 이 제안은 일회용 플라스틱 음료병의 재활용 함량 계산과 검증에 관한 새로운 규칙으로, '연료용 제외' 원칙을 적용하여 에너지 회수용으로 사용된 폐기물은 재활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해당 부분은 재활용 크레딧으로 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윌리엄스 부사장은 "이 제안이 기존 석유화학 시설에서 이뤄지는 처리 과정에 대해 회사가 청구할 수 있는 재활용 크레딧의 양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윌리엄스 부사장은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CSDDD는 기업들로 달성 불가능한 전환 계획을 세우도록 강요한다"며 "많은 산업 부문에서 스코프3에서 넷제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과 기술이 아직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일한 선택은 운영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윌리엄스 부사장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경쟁력이 없는 규제 환경"이라며 "결국 더 적은 플라스틱이 재활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화학적 재활용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엑슨모빌은 7월 텍사스 베이타운 시설에 두 번째 화학적 재활용 유닛을 가동했다고 발표했다. 2022년 말부터 운영된 첫 번째 유닛과 합쳐 5월까지 1억 파운드(약 4만5000톤) 이상의 플라스틱을 처리했다. 회사는 베이타운과 버몬트에 2억달러(약 2771억원) 이상을 투자해 2027년까지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 용량을 연간 50만 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기계적 재활용도 비용·수입재 압박에 설비 폐쇄 확산
유럽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계는 화학적 재활용뿐만 아니라 기계적 재활용 분야에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입장이다. 유럽플라스틱재활용협회(PRE)는 8월 "유럽 플라스틱 재활용 부문이 붕괴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경고했다.
협회는 "저가 재활용 플라스틱 수입품이 급증하고 EU산 재활용재에 대한 수요 약화, 경제적 압박 증가, 과도한 관료주의가 점점 더 많은 EU 재활용업체를 폐업으로 내몰고 있다"고 진단했다. PRE는 2025년 말까지 유럽은 2023년 대비 100만 톤의 재활용 처리 용량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협회에 따르면, 유럽은 올해 7개월 만에 작년 한 해 전체와 비슷한 규모의 처리 용량 감소를 기록했다. 특히 네덜란드, 독일, 영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PRE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협회가 제시한 권고사항에는 저가 수입품에 대응하기 위한 무역 및 시장 방어 메커니즘, 일관된 생산자책임확대제도(EPR) 규칙, 비준수 소재에 대한 엄격한 제3자 인증과 통일된 처벌 등이 포함됐다. 또한 재활용업체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저렴하고 청정한 에너지 접근성 확보와 허가 지연 및 관료주의 감소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