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가 2016년 북극해 석유·가스 탐사 허가를 내준 것이 기후 의무를 위반한 행위가 아니라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28일(현지시각) 지난해 스위스의 기후 소송에서 ‘국가의 기후 무대응’을 처음으로 인정했던 법원의 결정과 달리, 이번 판결은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다고 보도했다.
환경단체 ‘기후권 침해’ 주장했지만…법원 ‘절차상 결함, 인권침해 수준 아냐’
이번 사건은 노르웨이 정부가 2016년 바렌츠해 일대 10건의 탐사 허가를 13개 기업에 부여한 것을 두고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지구의벗 노르웨이 지부의 청년 조직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단체 측은 “정부가 석유 채굴이 가져올 기후변화 영향을 평가하지 않은 채 면허를 발급했다”며, 이는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보장한 노르웨이 헌법과 유럽인권협약 제8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환경영향평가 절차에 일부 미비한 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결함은 충분히 시정됐으며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결했다.
노르웨이의 테리에 아슬란 에너지부 장관은 “법원이 우리의 행위가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명확히 판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스위스 소송과 달랐던 판단…국가별 의무 해석 달라질 듯
노르웨이 정부는 당시 파리협정(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제한)을 근거로 헌법상 환경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1년 노르웨이 대법원도 “석유 탐사 면허는 생명에 대한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며 정부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후 모든 탐사권은 상업적 매장량이 발견되지 않아 반납됐다.
한편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새로운 유전 승인 전에 국가가 해당 유전에서 채굴된 자원을 화석연료로 연소하는 것이 전 세계적 배출량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고 유럽인권재판소가 언급했다는 점이다. 지구의벗 노르웨이 지부의 시그리드 로스네가르드 부회장은 이를 두고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하며 “향후 노르웨이의 석유 산업 운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지난해 스위스 정부가 고령 여성 단체 ‘기후보호를 위한 노년층’의 소송에서 제기한 ‘기후 대응 부실’을 인정해 최초로 국가의 기후 관련 소극행정을 인권침해로 본 바 있다. 또 지난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긴급한 문제이며,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피해를 방지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유럽 각국이 기후 관련 인권소송에서 어떤 기준으로 책임을 판단받게 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특히 유럽인권재판소가 ‘국가가 신규 유전 승인 시 글로벌 배출량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한 만큼, 향후 각국의 기후정책 이행 의무가 한층 구체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