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글로벌 법인세재 개편 협상 합의 완료
필라 1(디지털세), 필라 2(최저한세율)로 다국적기업 조세회피처 잡는다
합의안 제 기능하려면 '법인세 공시'부터 개선해야...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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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도한 글로벌 법인세 개편 협상에서 136개국이 최저법인세와 글로벌 100대 기업 과세안에 합의했다. EU 28개 회원국도 만장일치로 과세안 합의에 이르렀다. 

글로벌 법인세 개편안은, 필라(pillar) 1인 '매출 발생국 과세권'과 필라(pillar) 2인 '글로벌 최저 한세'로 구성되어 있다. '디지털세'로 불리는 필라 1은 거대 다국적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권리를 기업이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국가에 부여하도록 규정한다. 필라 2는 기업이 국가별 세율 차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보지 못하도록, 세율 하한선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법인세재 개편은 기업이 조세회피처를 활용해 적정 수준의 세금을 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됐다. OECD 법인세 조정 합의안이 제 기능을 하려면 결국, 다국적 기업의 공시 부문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필라 1】고정사업장 적은 빅테크 기업에 법인세 부과

디지털세 합의안의 필라 1은 매출 발생국에 과세권을 배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라 1은 2023년부터 도입되는데, 글로벌 매출 중에 통상이익률 10%를 넘는 초과이익 25%에 대한 세금을 시장 소재국에 각각 나눠서 납부하게 된다. 

필라 1 적용 대상은 2023년 시행시점에 연매출 200억 유로(27조 원)과 이익률이 10%이 넘는 다국적 기업이다. 적용 대상은 법 시행 7년 후인 2030년에는 연매출 100억 유로(약 14조 원) 이상인 기업까지 확대된다.

필라 1이 주목 받는 이유는, ‘디지털세’, ‘구글세’라는 별명을 가진만큼, 구글과 페이스북 등 IT기술 기업들이 주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파이낸셜타임즈(FT)는 ESG 점수가 높은 빅테크 기업들이 등급이 낮은 기업들에 비해 훨씬 낮은 세율을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증시에 상장된 러셀 1000 편입기업 중 ESG 최고등급인 ‘AAA’를 받은 기업들이 지난해 평균 18.4%의 법인세율을 부담했지만, ESG 등급이 ‘CCC’인 기업들은 27.5%의 법인세를 부담했다.

ESG 등급이 높은 빅테크 기업들이 세제 혜택이 많은 무형자산을 다수 보유했고, 국가별 세율 차이를 이용해 법인세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에 고정사업장을 잘 두지 않아,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았었다. 디지털세가 빅테크 기업에 적용되면, 고정사업장이나 서버 소재지가 아니라, 이익을 얻는 국가에 세금을 내게 되어, 법인세율 격차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법 적용 기업이 과세율이 높아지는 만큼을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부담을 전가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필라 1이 도입돼도 국내 기업들은 이중과세 부담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0일 기획재정부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필라 1에 따라 2023년부터 시장소재국에 납부하는 디지털세 만큼을 국내 법인세에서 공제해주기로 했다. 즉, 기업이 내는 세금은 큰 변동 없이, 납부하는 곳만 국내에서 매출을 얻는 해외 시장소재지로 바뀐다.

 

【필라 2】 최저법인세 15%로 조세회피 방지

25% 야심 찬 규제, 법인세 공시 개선 필요

필라 2는 글로벌 최저한세율 15%를 도입하자는 합의안이다. 2023년부터 연결매출액 7.5억 유로(1조 1000억 원) 이상 다국적기업에 적용된다. 필라 2는 다국적기업이 세율이 낮은 국가에 소재지를 둬서 세금을 감면하는 ‘조세회피’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독립조사기관인 EU 조세관측소는 지난 9월 유럽의 주요 은행들이 조세회피처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EU 조세관측소는 HSBC, 스탠다드차타드, BNP파리바를 포함한 유럽 36개 주요 은행의 공시 내용을 바탕으로 총 200억 유로(27조 5886조원)을 조세 회피처에 두고 거래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조세 회피처는 바하마, 홍콩, 마카오, 카타르, 지브롤터 등 17개국이다.

이 문제를 방지하고자 글로벌 법인세율을 15%로 설정한다는 OECD 합의안이 나왔지만, 조세관측소는 최저한세율 25% 정도의 야심 찬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필라 2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공시가 개선돼야 한다. 지난 7월 영국의 주가 지수 및 데이터 서비스 제공자인 FTSE 러셀이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의 의뢰를 받아 1380개 글로벌 상장 기업의 법인세 공시를 현황을 조사해 보고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은 ESG 공시는 활발하지만, 법인세 공시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기업의 절반 이상이 법인세를 공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국적 기업이 국가별로 납부한 법인세를 양적 데이터로 공시하는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FTSE 러셀은 “세금은 곧 비용”이며 “절세를 통해 세금을 최대한 안 내는 것이 기업에 도움이 된다”라는 암묵적 통념이 지난 한 세기 이상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절세를 위해 유령 회사를 세워 논란이 됐던 ‘파나마 페이퍼’ 사건은 기업이 세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통념이 ESG가 대두되면서 깨지고 있다. ESG 경영이 본격적으로 대두하면서 세금을 정당하게 내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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