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오는 3월 말 그린 GDP를 발표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야마기와 다이시로(山際大志郞) 일본의 경제재생담당상은 24일 일본 의회에서 "3월말쯤 예비단계의 그린 GDP(Green GDP)를 측정해 발표한다"며 로이터가 보도했다. 다이시로 경제상은 "세계적인 추세인 그린 GDP에 대해 작업해오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린 GDP는 최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이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와 관계가 깊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월초 '문예춘추'에 실은 긴급기고문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그랜드 디자인’에 대해서 밝혔다.
이는 경제를 시장과 경쟁에만 맡기지 않고, 성장 전략과 분배 전략의 양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편익을 최대화한다는 것이다. 빈곤과 양극화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일본 스스로 자본주의를 업그레이드해서 대응한다는 의미로, 일본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해석된다.
그린 GDP란 무엇인가
일본이 발표하겠다는 그린 GDP란 과연 무엇일까. 그린 GDP는 국내총생산(GDP)에서 경제생산활동 중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환경 피해, 생물다양성 손실 등의 피해를 화폐 가치로 환산, 이를 공제한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경제성장 지표 중 부정적인 환경 외부효과(externality)를 제외한 GDP라고 볼 수 있다. '녹색 성장'을 강조했던 과거 MB 정부 당시 국내에도 그린 GDP 도입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린 GDP라는 개념이 나온 이유는 바로 '기후변화 리스크'와 '탄소 중립'이라는 시대적 흐름 때문이다. 기존에는 무조건 많이 생산할수록 이익이었지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부정적인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고안됐다.
2012년 유엔은 환경과 경제를 통합적인 관점에서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틀인 '환경경제통합계정'(SEEA; System of integrated Environmental and Economic Accounts)을 표준으로 채택하고 각국에 이를 작성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계청을 중심으로 SEEA(2012)에 따라 2014∼2022년 중 3단계에 걸쳐 관련 계정을 개발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 중이다.
일본이 이를 선제적으로 치고 나오는 이유는, 2050 탄소중립을 드라이브하기 위한 탈탄소화 추진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 이야기다. 일본은 지난해 4월 2030 탄소배출량 감축목표를 2013년 대비 46%로 대폭 늘렸다. 2030년 전력 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목표치 또한 전체 전력 공급 중 36~38%를 설정했다. 개별 기업에 기후 공시를 압박하는 방법과 동시에, 그린 GDP를 통해 국가 GDP 계산의 전체 '패러다임'을 탄소중립형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와 같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환경과 경제의 연계가 매우 중요한데, 그린 GDP는 환경 손실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GDP를 산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 논의 중인 '새로운 자본주의'
한편, 이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비전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 향후 일본의 탈탄소 흐름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예춘추' 기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의 대두에 맞서기 위해 '자본주의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시장에 너무 의존함으로써 격차와 빈곤이 확대되고 자연에 부하를 주어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 한 예라고 한다.
기시다 수상은 탈탄소를 둘러싼 세계의 트렌드에 주목하면서 전기차나 재생에너지 전력의 방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미 2조엔의 그린 이노베이션(innovation) 기금을 활용해, 대규모 수소 운반선의 개발 등 공급망(supply-chain)의 구축이나 전기자동차 보급의 차세대 전지와 모터의 개발을 향해 구체적인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화력발전의 무배출 시스템화를 향해서 암모니아나 수소로의 연료 전환을 진행시켜 그 기술과 인프라를 활용해, 아시아 각국의 탈탄소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전기차 보급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겠다."
기시다 수장은 "내연기관 차를 위한 부품 제조에서 전기차 부품 제조로 전환하기 위한 설비투자 지원과 대응을 도모해야 한다"며 "다만 세상이 전기차 일변도로 모두 바뀐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일본 또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에 대한 고민이 많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