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만큼이나 국제기구에서 연일 경고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 바로 '식량위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5위 밀 수출국이자 전세계 옥수수 공급의 13%, 해바라기씨유 공급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원활치 않자 글로벌 식량위기가 고조된 것이다.
이에 국제사회 수장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식량위기'의 심각성과 협력 대응의 필요성을 쏟아내고 있다.
18일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에서 개최된 '식량위기' 장관급 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총장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전 세계는 수년간 기근에 직면할 수 있다"며 "식량 수출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안보, 경제, 재정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안에 대해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크리스틴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지금 상황이 전세계의 위기 중 최고 위기"라며 "거의 모든 국가들이 식량 부족과 식품 가격의 급등, 에너지와 비료 가격 상승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식량위기가 가중되자, 인도네시아, 이란, 알제리, 세르비아 등 식품 원자재 수출 주요 14개국이 자국의 식량 안보를 이유로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인도 또한 같은 이유로 14일 수출을 전격 금지하겠다고 밝혀 전세계 곡물 값이 폭등해 식량위기는 보다 악화될 전망이다.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밥상 물가도 위태로워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대형마트가 식용유 판매에 1인 1개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는 소식과 소비 관심도가 높은 밀가루에 이어 삼겹살까지 가격이 올라 서민들과 상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도 더 팍팍 해지고 있지만, 글로벌 식량위기로 생존까지 위협받는 개발도상국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산 밀의 최소 3분의 1를 수입하고 있는 45개 아프리카 국가와 최빈국은 당장 식량 확보가 어려워 생존 위기에 놓이게 됐다. 때문에 구테흐스 유엔 총장은 '굶주림의 허리케인'이 시작됐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 러시아가 침공을 중단하면 글로벌 식량위기가 해결될 수 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쟁이 끝나고, 복구와 회복의 과정을 거쳐 불안정한 수출 시장이 완화되면 곡물 가격은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식량 안보로 빗장을 걸어 잠근 국가들도 곡물을 풀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선진국부터 시작해 개발도상국까지 식량 수급이 원활해질 것이다.
하지만 식량위기를 옥죄는 가장 큰 원인은 따로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끝난다고 해도 위기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그 원인은 바로 '기후변화'다.
가랑비에 옷 젖듯,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현상으로 어느 지역은 가뭄으로, 또 어느 지역은 범람으로 지난 수십 년간 전세계 경작지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미국은 전국의 43% 지역이 가뭄을 겪어 곡물 주산지가 큰 피해를 입었고, 중국은 기록적인 폭우로 세계 최대 수력발전 댐인 쌴샤댐을 방류해 곡물 생산에 타격을 입었다.
때문에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이상기후로 국제곡물가격지수가 6년만에 최고치인 115.7포인트를 기록했다고 지난해 발표하기도 했다. 더불어 유엔세계식량계획(WFP)는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전 세계 기아 인구가 2억 명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례적으로 밀 수출을 전면 금지한 인도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더 빨리 빗장을 걸어 잠그게 된 것일뿐, 근원적인 이유는 이상 기온에 따른 폭염과 가뭄 때문이다. 지난 4월, 인도와 파키스탄의 최고 기온이 49도를 기록함에 따라, 밀 흉작이 계속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또 기후변화 이야기야?'라고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기후변화에 손쓸 수 없는 상태가 오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안정해진 밥상 가격은 물론 생존위협 직면한 현재 인구수를 능가하는 메가톤급의 위기가 불어 닥칠 수밖에 없다.
전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범지구적인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그리고 우리 밥상까지 위협하기 시작한 기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선 일부가 아닌,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건 당연지사다. 너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위해 나는, 우리 조직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그에 따른 이행이 반복될수록 위기의 먹구름은 점차 걷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 김효진 임팩트온 Editor & Researcher
기업 등 민간섹터의 개발금융 접근 방안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효진 연구원은 지난 10년여간 다수의 ODA 사업과 ESG 컨설팅, 연구 등에 참여하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공과 민간 협력에 몰두해왔다. 현재는 임팩트온에서 Editor로 글로벌 ESG 동향 및 규제, 정책 등의 소식을 발빠르게 전함과 동시에, Researcher로 공공기관과 기업 등에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Beyond ESG를 통해, 지속가능성 이슈를 선봉해온 개발협력 측면에서 ESG 접근 방안을 논하는 칼럼을 게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