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협력=ODA(공적개발원조)’, 곧 공공의 영역이라는 정형화된 인식 때문일까? 개발협력 전공자인 내가 ESG를 다룬다고 하면 의아한 시선을 더러 받는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영역의 ODA와 영리 섹터에서 활발한 ESG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때로는, 자선적인 목표를 위해 돈을 쓰는 방법밖에 모르는 개발협력 분야가 투자자를 의식해 수익 창출까지 고려해야하는 기업 ESG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때문에, 기업의 개발협력 접근이 ‘기부’와 ‘공헌활동’으로 한계 지어지곤 한다. 필리핀 어느 시골 마을에 코로나19 키트와 손소독제를 전달했다, 친환경 쿡스토브를 기부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면 그 시선과 접근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글로벌 기업들은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의 ESG 요구를 맞추기 위해 ODA(공적개발원조)를 담당하는 정부 산하의 개발기관과 손을 맞잡는 경우가 많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경영활동을 펼쳐야 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E, S, G 전 영역을 포괄하는 SDGs(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 실현을 위해 개도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개발기관과 협력하면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ESG를 실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발기관이 그 누구보다 개도국 현장의 리스크와 이해관계자 니즈를 잘 이해하고 각종 규제를 발빠르게 캐치하며, 개도국 정부 및 국제기구와의 속도감 있는 사업 진행이 가능하기에 글로벌 기업들은 개도국 접근에 있어 개발기관과의 협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일례로, ‘물’ 이슈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는 글로벌 식음료업체인 '코카콜라'는 2004년 인도에서 제조 공장을 폐쇄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았다. 공장에서 소비되는 물 때문에 지역 내 수량이 급격히 감소했을 뿐 아니라 폐수에서 허용치 초과의 오염물질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킬러코크(Killer Coke)’라는 별명과 함께 기업 인지도에 심한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물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코자 코카콜라는 미국의 ODA 사업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와 ‘물과 개발 연합(WADA, Water and Development Alliance)’이라는 파트너십을 맺어 2005년부터 개도국의 깨끗한 물 공급과 물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파트너십을 통해 아프리카, 아시아 등 30개국을 대상으로 3300만달러(391억원) 규모의 물 개선 사업을 벌여 지역주민의 삶과 생태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USAID의 신용보증을 받아 동남아프리카에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천연가스발전소 건립을 위한 저금리 대출 사업을 2014년부터 수행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개도국에서도 재생에너지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에 비해 경제 및 정치적 상황이 취약한 개도국의 경우, 그에 따른 리스크 부담으로 기업들의 투자와 진입은 저조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리스크를 개발기관이 일부 떠안아 줌으로써 기업들의 ESG를 고려한 사업 확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30년까지 아프리카에 3만 메가와트(MW) 규모의 청정에너지를 구축하고 6000만개의 송전선 연결을 목표로 한 USAID의 ‘파워 아프리카(Power Africa)’ 프로젝트에 다국적 전력업체인 에넬(Enel)을 비롯해 골드만삭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미쓰비시 등 17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400억달러(47조원) 이상을 투자해 아프리카 청정 경제 전환에 힘을 보태고 있으며, ESG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금융 시장이 연결되고 기업들이 전 세계로 사업을 확대해 나감에 따라, ESG에 대한 요구와 압박이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개도국 및 신흥국 소비 시장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이 시장에 진입하거나 사업을 확대하려는 기업들은 각국 정부로부터 ESG 준수를 요구받고 있다. 일례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상장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를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 아세안도 그린 택소노미 도입을 발표했다. 개도국 시장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SDGs 목표 실현에 앞장서는 개발기관과 함께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들처럼 손발을 맞춘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ESG 기준을 충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김효진 임팩트온 Editor & Researcher







 

 

기업 등 민간섹터의 개발금융 접근 방안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효진 연구원은 지난 10년여간 다수의 ODA 사업과 ESG 컨설팅, 연구 등에 참여하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공과 민간 협력에 몰두해왔다. 현재는 임팩트온에서 Editor로 글로벌 ESG 동향 및 규제, 정책 등의 소식을 발빠르게 전함과 동시에, Researcher로 공공기관과 기업 등에 폭넓은 시각으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Beyond ESG를 통해, 지속가능성 이슈를 선봉해온 개발협력 측면에서 ESG 접근 방안을 논하는 칼럼을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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