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행동주의가 국제사회에서 강화되는 가운데, 주주총회 결의사항으로 정해진 안건에 대해서만 결의할 수 있는 현행 주주제안 제도에 대해 주주가치 제고, ESG 강화, 기업경영 효율성 향상의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13일 경제개혁연대와 기후솔루션, 박주민, 김성환, 이용우 국회의원이 개최한 ‘1400만 주주시대 주주가치 제고 및 ESG강화를 위한 주주제안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행사에는 (왼쪽부터)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 김성환 국회의원, 박주민 국회의원, 고동현 기후솔루션 연구원, 이창민 경제개혁연대연구소  부소장, 박유경 APG 이사,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이용우 국회의원,  손창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성두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 박성록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연구팀장이 참석했다./ⓒ기후솔루션
행사에는 (왼쪽부터)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 김성환 국회의원, 박주민 국회의원, 고동현 기후솔루션 연구원, 이창민 경제개혁연대연구소  부소장, 박유경 APG 이사,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이용우 국회의원,  손창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성두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 박성록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연구팀장이 참석했다./ⓒ기후솔루션

쟁점사항은 현행 주주제안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권고적 주주제안을 도입해야 하는지 여부였다. 법조계와 투자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뉘었다. 

손창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은 주주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필요하지만, 그 내용이 회사법의 법리에 부합하는 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투자자 측 패널인 박유경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 이사는 “주주제안을 하려면 주주총회에서 결의가 잘 이뤄져야 하는데, 국내 기업의 주주총회는 해외처럼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주주제안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권고적 주주제안을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하려면…기준 요건 낮춰야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권고적 주주제안권이 필요하지만, 국내 도입이 잘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권고적 주주제안은 ESG 관련 안건에 대해 기업과 투자자 간 의견 차이가 소송과 같은 큰 싸움으로 번지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됐다. 

노종화 변호사는 “이 제도는 구속력이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형식에 구애 없이 특정 이슈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제안이 가능하며, 이사의 권한과 재량을 충분히 보장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권고적 주주제안 사례/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
권고적 주주제안 사례/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주주가 이사회에 ‘권고’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소송으로 비화할 수 있는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노 변호사는 “주주제안이 가결되면 이사회가 받은 ‘권고’를 이행돼야 하므로 구속력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미국의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살펴보면 실질적인 권고의 효력만 갖도록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현행 상법은 주주제안의 구속력 등 효력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사회에 ‘권고’하는 방식의 주주제안이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주제안이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원인으로는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요건이 너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노 변호사는 “한국은 자본금이 1000억원 이상인 상장회사에 주주제안을 할 경우 지분 요건이 0.5%이며, 시가총액이 1조원인 회사라면 50억원 규모의 지분을 확보해야 해서 진입장벽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주주제안권을 활발히 사용할 수 있도록 주주제안 요건을 설정해 놓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주주제안, 전체 건수와 ESG 관련성 모두 부족

국내에서도 주주제안은 늘고 있다. 노 변호사는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2023년 정기총회에서 주주제안을 받은 회사는 총 47개 사였고, 안건은 총 175건이었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정기주총에서 주주제안을 상정한 기업은 44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주주제안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전체 상장사 수와 미국, 영국, 일본 등을 고려하면 활성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안건 유형은 이사⋅감사 선임(27건), 현금주식 배당(25건), 정관변경(17건), 자사주 취득⋅소각⋅처분(10건)이 대부분으로 ESG와 관련된 주주제안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미국의 주주제안 현황을 소개했다. 고 연구원은 “러셀3000 지수에 포함된 기업의 주주제안을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주주제안이 확대되고 있으며, 거버넌스, 임원 보상 등의 이슈보다 사회와 환경 관련 주주제안 비중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총에 의안 상정 전에 상당수의 안건이 이사회를 통해 수용되어 경영에 바로 반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회와 환경 관련한 주주제안이 통과하는 비율도 늘었다. 고동현 연구원은 “주주제안 중 절반 가량이 주주총회 투표를 거쳤으며, 2020년 이후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경우가 10~20% 정도 증가했다”며 “특히 기후 관련 주주제안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기후와 환경, 인적자원에 대한 주주제안이 2022년 크게 늘었다./고동현 기후솔루션 연구원
기후와 환경, 인적자원에 대한 주주제안이 2022년 크게 늘었다./고동현 기후솔루션 연구원

 

법적 해석, 주주제안 남용과 의무적 효력이 문제

박성록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연구팀장은 주주제안이 권고적이어도 주총에서 통과되면 이사회가 거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성록 팀장은 “우리나라는 기업 지배구조보고서를 통해 매년 주총의 찬성과 반대율을 공시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사회가 주주제안을 계속 거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기에 이 제도는 사실상 구속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상법상 이사회의 책임 문제도 꼬집었다. 그는 “만약 주주제안을 받아들여서 기업 가치가 떨어지면 이사와 주주 둘 중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경영진은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라 주주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겠지만 이런 상황이 예측될 때 거부할 수도 있다”며 “이럴 경우 주주들이 이사의 재선임을 거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주제안의 남용 문제도 지적됐다. 박성록 팀장은 “미국은 주주제안 이슈를 한정하지 않다 보니, 최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주주총회에서는 낙태 용의자에 대한 수사 협조 여부에 대한 정치적 이슈까지도 주주제안으로 들어오는 등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했다”며 “ESG와 관련된 주주제안은 오직 기업 가치제고와 명확한 연결성을 보인 사안에 관해서만 규정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고적 주주제안제도를 도입할지 여부와 도입 방식에 대해 패널들의 법적, 재무적 해석상의 차이가 드러났다./ⓒ기후솔루션
권고적 주주제안제도를 도입할지 여부와 도입 방식에 대해 패널들의 법적, 재무적 해석상의 차이가 드러났다./ⓒ기후솔루션

손창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며, 독일의 ESG와 관련된 주주제안에 관한 판례를 소개했다.

그는 “독일은 주식법 제119조 제2항에 따라 이사회가 ESG를 포함한 영업정책을 주주총회의 안건으로 제안할 수 있으며 주식법 제93조 제1항에 따라 이사회는 넓은 재량권을 누린다”며 “주식법 제122조 제2항에 근거하여 ESG를 포함한 회사의 영업정책에 관해 주총의 결의를 구하는 주주제안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주주제안을 강제로 도입하기보다는 독일처럼 간접적 제안 형식으로 정관 자치에 위임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성두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는 “권고적 주주제안의 도입을 논할 때는 미국의 비조치의견서(No-action Letter)와 같은 주주제안 남용 방지 대책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비조치의견서는 미국에서 시작된 제도로, 금융회사가 신규영업 등 특정행위를 시행하기 전에 그 행위가 금융감독법규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에 사전심사를 청구하면,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심사하여 금융감독법규에 근거한 제재 등의 조처를 할지 여부를 회신해 줌으로써 금융회사 등의 법적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발생가능한 불이익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다. 

정 검사는 “비조치의견서는 국내에도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수정 의견을 주고받는 기간이 6주로 너무 짧으므로 미국 제도를 조금 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투자자, 주주제안의 남용 가능성 없어…소송 막으려면 필요해

투자자 측 패널들은 투자자들은 회사에 손실을 내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며, 주주제안의 남용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박유경 APG 이사는 “기관투자자들은 보수적인 존재로 회사에 손실을 내는 안건에 대해서는 통과될 일이 없으며, 1400만 주주가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대부분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으므로 주주제안 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반박했다.

박유경 APG 이사는 “APG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기반으로 투자하는 책임 투자자이며, APG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기금이 책임투자를 하고 있다”며 “책임 투자자로서 투자배제, ESG 가치 통합,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자를 주주관여 활동을 통해 수행하려고 하며, 회사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송은 지양하는 입장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S 기업의 백혈병 이슈, H 기업의 사망 사건 등 국내에서 1년에 한 번은 큰 이슈가 터지는데, 주주제안이 효력이 없기 때문에 OECD에 신고하거나 글로벌 협력사에 문제를 알리는 방식을 쓰고 있다”며 “권고적 주주제안과 같은 제도가 있다면 오히려 소송과 같은 강력한 수단을 쓰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회사의 현재 가치는 미래 현금 흐름의 할인된 합의다”라며 “회사에 단기적으로 좋고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행위는 주가를 하락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창환 대표는 “실적과 성과 문제로 단기 이익에 집중하게 되는 경영진은 오히려,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장기 이익을 바라보는 기관투자자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주제안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 자체도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데, 주가를 하락시킬 만한 행동을 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