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JP모건 사외이사였던 엑손모빌 전 CEO인 리 레이몬드 이사회 의장직에서 퇴출
탈탄소 기업을 선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과 전략 발표

석탄사업 대출 누적액만 3000억달러(약 340조4984억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좌초자산을 가지고 있는 JP모건이 자산 건지기에 나선다. JP모건은 지난 10월 성명서를 발표하며 “파리 협정의 목표에 부합하는 자금 조달만을 실행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저탄소 배출 기업에 투자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에는 “석탄 채굴로 이익을 얻는 기업에 대해 대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JP모건은 세계 최대 석탄사업 대출 투자 은행으로 환경단체와 투자자로부터 꾸준한 비판을 받아왔다. 열대우림행동네트워크(RAN, Rainforest Action Network)의 보고서 <Banking on Climate Change>에 따르면 JP모건의 화석연료 기업 대출금액은 3000억 달러에 육박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화석연료 투자규모를 합산해보면, 2위인 씨티뱅크보다 68%(2739억달러)나 더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종사에 비해서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한 것이다. RAN은 보고서를 발표하며 “JP모건의 적극적인 지지로 화석연료 기업들은 탄소 저감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은행이 든든한 지지자로 있는 한, 탈탄소로의 이행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꾸준히 비판해왔다.

주요국 은행들의 화석연료 기업 대출금액 총액/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 '주요국 대형은행들의 탄소절감 대출전략 선언'
주요국 은행들의 화석연료 기업 대출금액 총액/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 '주요국 대형은행들의 탄소절감 대출전략 선언'

투자자들도 가세했다. 올해 5월, JP모건 주주의 49.6%는 “대출 사업과 관련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투자자의 적극적인 행동은 JP모건의 선임 사외이사였던 엑손모빌 전 CEO인 리 레이몬드(Lee Raymond)를 이사회 의장직에서 퇴출시키기도 했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 중 하나인 엑손모빌은 탄소배출을 늘리는 전략이 담긴 문건이 누설되며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은행과 탄소 배출 주범 기업과의 고리를 끊기 위한 주주행동까지 이뤄진 것이다.

 

2050년 넷제로 선언, 탄소회계금융협의체(PCAF) 가입

거세지는 압박에 JP모건은 좌초자산에서 손을 떼겠다는 메시지를 연이어 공개했다. 2050년 넷제로 선언에 이어 탄소회계금융협의체(PCAF)에 가입하며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성명서에서는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탈탄소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워나가겠다”며 이전 선언에 비해 훨씬 구체화된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선언서에는 탈탄소 기업을 선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과 전략을 공개했다. 기업이 공개하는 정보들에서 탄소 집약도(Carbon Intensity)를 추적해 자사의 포트폴리오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탄소 집약도란 에너지 사용에서 발생한 탄소를 에너지 총 소비량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탄소 집약도가 높을수록 탄소 배출을 많이 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력 사업의 경우 생산되는 전기의 메가와트시간(MWh)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식으로 구할 수 있다. JP모건은 “측정된 탄소 집약도는 탄소 감축에 노력하는 기업을 식별할 수 있다”며 “이 데이터를 통해 모범 사례를 발굴하고, 기업들의 탄소 감축을 유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탄소량(Scope3)까지 포함해 광범위하게 탄소 추적을 할 예정이다.

또한 2050년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분야별 2030년 중기 탄소 배출 목표치도 수립한다고 밝혔다. 먼저 석유와 가스, 전력, 자동차 제조 등 탄소 다배출 업종에 초점을 맞춘다. JP모건은 “기후관련 금융공시 태스크포스(TCFD)의 자문을 받아 내년 봄 기후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행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도 제공한다.

장기적으로는 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하는 기업들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예정이다. JP모건의 의사결정에 추적한 탄소 집약도 정보를 포함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올해 2월 석탄 기업에 대한 대출 중단 계획을 발표하며 친환경 기업에는 2000억달러(226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신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기업 지원에도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기업과 고객에게 지속가능한 금융, 연구 및 자문을 위한 탄소전환센터(CCT)도 설립한다. JP모건체이스 다니엘 핀토 CEO는 “CCT는 고객이 과제를 해결하고 저탄소 세계의 장기적인 경제적, 환경적 이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파리협정이 현실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JP모건도 해결책의 일부가 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RAN는 JP모건의 발표에 진전했다고 평하면서도 진정성을 의심했다. RAN은 “화석연료 최대 지원 은행이 이 같은 신호를 준 건 업계에 미래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경고를 준 셈”이라면서도 “진지하게 탈탄소사회에 기여할 생각이라면 화석연료와 삼림벌채를 자행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JP모건의 선언이 ‘반쪽짜리 계획’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RAN은 “내년 5월 주주총회를 마감시한으로 두고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도 높은 주의를 준 것이다. 

 

각국 은행들 석탄투자 중단 선언 이어졌지만 

'진짜' 골라내긴 어려워

은행이 '주도적인 역할'을 자처하는지 물어야

블룸버그의 환경칼럼니스트 케이트 맥켄지는 좌초자산을 건지는 방법은 단순하다고 설명한다. 화석연료와 탄소 다배출 사업에 대한 자금을 중단하는 동시에 재생 에너지 관련 회사에 대출을 활성화하라는 것이다. 

에너지 경제 및 재무 분석 연구소인 IEEFA(Institute for Energy Economics and Financial Analysis)에 따르면, 이미 1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은 석탄투자를 중단할 전략을 밝혔다. 세계은행, BNP파리바, 크레디트 아그리콜(Crédit Agricole) 그룹, AXA가 2017년 주요 금융기관 중 처음으로 배제 정책을 선언한 이후로 각국 은행들은 탈석탄 전략을 발표했다. 유럽투자은행은 2019년에 내년 말까지 모든 석유와 가스에 대한 투자를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나티시스(Natixis), 스페인의 산탄데르(Banco Santander),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네랄레(Société Générale) 등 주로 유럽에 있는 38개 은행 그룹은 포트폴리오와 연계해 투자기업들이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도록 압박하겠다고 했다. 나티시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2019년 녹색 자산에 대한 노출을 늘리겠다며 자사가 출자한 모든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환경 점수를 매기기기도 했다. 영국의 내셔널웨스트민스터(Natwest) 그룹도 지난 2월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대출기준을 강화하면서 2030년까지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대출을 완전 종료키로 했다.

크레디 아그리콜 그룹
크레디 아그리콜 그룹

하지만 남발하는 투자 공약 사이에서 진짜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표면적으로는 다같은 탈석탄 투자를 말하고 있지만, 은행별로 구체적인 도달 과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그룹은 "합리적인 기간 내에 다각화 전략을 갖고 있지 않은 열탄광업체들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키겠다"라며 석탄투자 기업 퇴출 날짜를 명시하지 않았으며 '다각화 전략'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설정했다. 반면 크레디 아그리콜 (Crédit Agricole)은 "OECD 국가에서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와 광산의 자금조달을 중단할 것이며, 그 외 지역에서는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와 광산의 자금조달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핵심적인 질문도 남아있다. 은행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지다. 맥켄지는 “은행이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이를 따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탄소배출량은 이미 정점을 찍었기 때문에 은행의 포트폴리오가 탄소 저배출 기업으로 채워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산업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이 빠져있다면, 은행들의 선언은 그저 ‘듣기 좋은 말’에 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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