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과반수는 달성했지만, 주 과반수 달성 실패
스위스 정부가 기업의 공급망 관리 책임 의무화하는 법안 제안
세계 최초로 이뤄진 '기업의 인권 및 환경 침해 실사 의무화' 국민투표가 국민 과반수의 지지는 얻었지만, 주 과반수 지지에 실패해 부결됐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는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국민투표가 열렸다. 기업의 인권 및 환경 침해 실사를 의무화하자는 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스위스 비영리단체 기업정의실천연합이 '책임 있는 비즈니스 이니셔티브(Responsible Business Initiative)' 일환으로 제안했으며, 투표 전 12만 명의 국민 지지 서명을 얻었다.
이 제안은 스위스 국민 과반수 이상의 표(50.7%)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부결되었다. 스위스에는 국민 제안이나 계획이 법안으로 제정되기 위해서는 국민과 스위스 주(州)의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번 투표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는 얻었지만 주의 과반수 지지는 얻지 못했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은 "지역 간 지지 차이로 인해 스위스 국민 제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은 6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전문 매체 스위스인포(Swissinfo)는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국민들이 새로운 법안을 시행하는 데 보수적이었으며, 스위스가 전 세계 선도 수출국 중 하나지만 법안에 대해 농촌과 도시 간 지지율 격차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책임 있는 비즈니스 이니셔티브는 스위스 기업뿐 아니라 자회사, 공급업체 및 협력사들도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기업 책임 활동을 의무 수행하도록 제안했다. 이 이니셔티브가 법안으로 제정된다면, 자회사나 공급망의 위반 행위로 인해 스위스 본사 기업들이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스위스 의회 의원 크리스타 마크왈더( Christa Markwalder)는 "20년 간의 정치 생활 중 가장 공격적인 캠페인이었다"고 말했다. 투표 결과에 대해 시민단체와 정계에서는 "스위스가 사회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다른 나라들보다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 자발적 조치가 아닌 책임있는 사업에 대한 의무 요구
국민 투표는 부결되었지만 스위스 정부가 대안으로 '기업의 책임있는 공급망 관행'에 대한 제안을 제시했다. 이미 프랑스는 공급망 책임에 대한 법안을 제정했고 유럽위원회도 2021년 공급망 실사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스위스도 의무강령과 형법에 관련 조항을 개정 및 새로 추가해 정부 자체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 제안에 따르면, 기업들은 비재무 및 다양성 정보 공개에 대한 유럽연합 지침에 따라 ▲인권, 환경, 사회 및 고용 관련 문제를 공개 보고하고 ▲분쟁 광물 및 아동 노동 방지에 관한 실사 및 투명성을 확대해야 한다.
이 역시 100일 내에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모으면, 자발적 국민투표가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스위스 연방평의회가 발효 여부를 결정한다.
이 제안은 상장기업, 공기업, 혹은 스위스 금융시장 감독청이 감독하는 은행, 보험 회사 또는 증권 회사에 적용될 전망이다. 이들은 비재무 보고서를 발간하고 환경 문제(특히 이산화탄소), 사회 및 고용 관련 이슈, 인권 존중, 반부패에 대한 정보를 포함해야 한다.
특히 분쟁 광물 및 아동 노동 관련 실사 및 보고 의무는 스위스 본사, 사무소 뿐 아니라 전 세계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기업들은 주석, 탄탈룸, 텅스텐 등 분쟁 광물을 유통처리하거나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작 공급할 때 아동 노동 착취에 대한 실사 여부를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이 외에도 공급망 추적 시스템 도입, 실사 관행 및 절차, 이에 대한 조치 및 리스크 관리 등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비재무 이슈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주주총회에 제출되어 승인 받은 후 10년 동안 공개되어야 한다. 분쟁 광물과 아동 노동 실사 의무를 준수한 연례 보고서(국어 또는 영어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업들은 국제 표준 보고(OECD 지침 원칙 등)나 국가 자체 기준 등 준수 기준을 보고서에 밝히고 선정 기준에 따라 전체 작성해야 한다.
의무를 위반할 때 법적 책임이 부여되진 않지만, 잠재적인 책임은 부과된다. 특히 공급망 실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기업이나 법인이 민법 책임을 받거나 연차보고의무를 불이행 또는 허위진술 시에는 형사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의무에 대해 고의적으로 책임을 위반할 경우 1억2000만원에 이르는 10만 프랑(CHF) 이하의 벌금과 과실이 있을 경우 5만 프랑(5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