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해외진출과 글로벌 사회공헌의 시너지 내려면...
대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 중 사회적기업·소셜벤처 육성의 대표주자는 ‘H-온드림’으로 손꼽힌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9년 동안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SK·LG·포스코·현대차는 모두 사회적기업 지원과 육성을 크게 내세웠는데, 이중 지금까지 사회적기업에 주력하는 곳은 SK와 현대차 정도만 남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바꾸는 기업도 있는 반면, 사회공헌 사업을 꾸준히 하게 되면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기업을 바라보던 외부의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들이 지지자로 바뀌게 된다.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의 창업 오디션인 ‘H-온드림’이 사회적기업 등용문으로 여겨지면서, 소셜 섹터의 수많은 우군을 얻었다. 지난 9년 동안 발굴하고 육성한 기업이 238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비누를 만들어 매출 60억원을 달성하는 사회적기업 ‘동구밭’을 포함, ‘두손컴퍼니’ ‘마리몬드’ ‘모어댄’ 등 사회적기업 중 H-온드림을 거쳐가지 않은 곳은 별로 없다. 현대차는 1923개의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밝혔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잠재 지지그룹 2000명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공헌 사업을 할 때 기업이 주도하느냐, 파트너 기관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장단점이 있는데, H-온드림의 경우 ▲‘씨즈(seed:s)’라는 비영리단체를 초기부터 파트너로 삼았고 ▲현대차정몽구재단이 함께 하면서 비용집행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고용노동부·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합류해 정부와도 꾸준한 네트워크를 가져온 점 등은 사업의 성공요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인도네시아 연령 젊고 유니콘 스타트업 많아, 소셜벤처 지원으로 결정
최근 뉴스에 현대자동차 ‘H-온드림 사회적기업 창업 오디션’이 인도네시아에서도 소셜벤처 육성 사업을 시작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버전 사회공헌이다. 지난해 11월 현대차 정의선 (당시) 수석부회장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연산 25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짓기로 하는 내용의 투자자 협약을 체결했다. 인도네시아 공장은 현대차가 동남아에 처음 짓는 완성차 기지로,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시아 시장의 전략적 교두보가 될 전망이 크다.
현지의 사회공헌 사업 또한 이 때문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내 P기업은 인도 정부의 요청으로 일관제철소를 건립하려다, 현지 주민의 거센 반대와 주 정부의 태도 변화로 12년이나 끌다 결국 부지까지 반환하고 사업을 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때문에 해외에 진출할 때는 현지 정부기관뿐 아니라 NGO, 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우호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사회공헌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현대차가 펼치고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 중 H-온드림을 인도네시아 버전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백상열 현대차 사회문화팀 매니저의 말이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4위를 기록하는 인구 대국이고, 2019년 기준 약 2억7000명가량의 인구가 있습니다. 미국, 중국, 인도, 그 다음이 바로 인도네시아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평균 연령이 29.7세에 달할 만큼 매우 젊은 국가입니다. 소셜벤처 기업 생태계를 보니, 유니콘 스타트업(약 1조원의 기업가치)이 벌써 6개나 탄생했습니다.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인 고젝의 경우 데카콘 스타트업(약 10조원 기업가치)으로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소셜벤처 기업 생태계는 일반 스타트업 생태계와 시차를 두고 성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유니콘 소셜벤처도 탄생할 것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5월부터 인도네시아 소셜벤처 육성사업을 위한 시장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처음부터 인도네시아로 국가를 정한 것은 아니었고, 아세안 국가들 중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아세안 국가의 소셜벤처 생태계를 사전에 스터디했고 최종 대상국가로 선정된 것이 인도네시아다.
국가를 선정한 후 현대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현지 파트너’ 구하기였다. 현지 파트너 역량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크게 갈릴 만큼 파트너는 중요하다. 백 매니저에게 현지 파트너 선정 과정을 물었다.
“몇몇 기관은 일본 또는 중국기업에 의해 설립된 엑셀러레이터 기관들이라, 우리와 직접 파트너십을 맺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육성기관을 제외한 후 관련기관에 사업의 미션과 철학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파트너를 선정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이해도가 한국에 비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우선 회사 소개를 하고 이해시키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자주 접하던 브랜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비해 계약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학계·정계·국제기구들과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를 만들고자 했는데, 이 파트너들도 참여를 요청하고 수락받는 과정이 똑같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 결과 현지 협력파트너 두 곳을 선정했다. 인스텔라의 경우, 아시아 최대 소셜벤처포럼인 AVPN(Asian Venture Philanthropy Network)을 통해 사전 미팅을 하면서 네트워크를 우선 만든 후, 현지 미팅을 통해 최종 파트너로 선정했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은 일본이 약 99%를 점유하고 있어, 현대차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복수의 파트너를 선정했다고 한다. 두 번째 파트너로는 ICCN(Indonesia Creative Cities Network·인도네시아 창조경제 네트워크)이 선정됐다. 약 1700여개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에서 200여개의 지역사무소를 가진 협력네트워크로서, 다양한 중소도시 스타트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올 1월 첫 사업공고가 나간 이후, 서류심사 및 현장실사, 화상면접 심사, 육성기간(5~10월), 시상식, 최종 성과보고회까지 1년간 사업이 진행됐다. 인도네시아의 교육, 환경, 일자리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셜벤처에 총 316개팀이 응모했다. 이중 10개팀이 최종 선정돼, 5개월의 육성과정을 거쳤다.
선정된 팀들의 주요 사업내용을 살펴보면 ▲장애인 이동 지원 및 일자리 마련 위한 서비스사업 ▲밀가루 대체 식품 제조업 ▲유기 폐기물관련 친환경 사업 ▲농촌지역 고용창출 위한 디지털마케팅 교육사업 ▲데이터 관리 통한 양식업 지원사업 ▲학습교재 무료 배포 위한 출판 공유 플랫폼 사업 등이었다.
| Ranking | SE NAME | IMPACT AREA | 요약 설명 |
| 1 | Rumah Mocaf | 고용 | 밀가루 대체상품으로 높은 탄수화물 함량과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 제조업 |
| 2 | Difa Bike | 고용 | 장애인을 돕기 위한 오토바이 기반 운송/여행/관광 서비스 제공업 |
| 3 | Kampung Marketer | 고용 | 청년실업자 디지털 마케팅 교육 통한 농촌지역 고용창출 |
| 4 | Biomagg Indonesia | 환경 | 음식물 쓰레기 생물학적 분해 및 유기 폐기물의 생물 전환 사업 |
| 5 | Agradaya | 고용 | 친환경 향료 제조업 및 제조시설 솔루션 제공업 |
| 6 | Pictafish | 고용 | 양식업자 대상 물고기 데이터 관리 업체 |
| 7 | Tech Prom Lab | 환경 | 물이 흡수될 수 있는 콘크리트 제조업 |
| 8 | Indigo Biru Baru | 환경 | 섬유산업으로 오염된 강 주변 지역농가에서 천연염색과 패션산업 부흥 |
| 9 | GMB | 교육 | 문맹퇴치 목적 무료 학습교재 20만명 공유경제로 출판공유 |
| 10 | Bandung Bee Sanctuary | 환경 | 유휴지 및 Iot기술 활용해 지역 양봉농가 양성 및 교육투어, 벌꿀 제품 판매 |
지난 11월 13, 14일 양일간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데모데이와 시상식을 온라인 데모데이로 진행했는데, 사업을 홍보하고 투자유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각 팀당 지원되는 사업비는 기본 1000만 원에서 최대 5000만 원까지다. 시상식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HDIU6lIeWsA
인도네시아에서 웨비나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 장관, 창조경제관광부 차관 등 정부 관계자와 창업 전문기관, 투자 관계자 및 현지 다양한 분야의 약 5000명이 참관했다.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이들 10개팀 중 3개팀은 ‘한국 H-온드림’ 데모데이를 통해 소개됐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벤처 투자자들에게 인도네시아 팀을 소개하고 교류의 장을 열려고 하였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이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모빌리티 기업인 디파바이크의 경우, 현대차그룹이 지원하는 장애인차량 제조 사회적기업인 ‘이지무브’와 기술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현지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높일 계획이나, 이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당장 실행은 어렵게 됐다.
한국에서 H-온드림 사회공헌을 인도네시아 버전으로 만들면서, 향후에도 사업적인 시너지가 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 백상열 매니저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한국에서 선발된 240여개의 사회적기업들과 인도네시아 소셜벤처들간의 교류의 장을 만들고, 인도네시아와 한국 시장을 상호 진출할 때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했다. 이는 동남아 진출을 원하는 국내의 소셜벤처 기업들에게도 분명 좋은 신호다. 사회공헌 사업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이는 버리는 돈이 될 수도 있고, 살리는 돈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