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지난달 공시 초안을 내고 나서, 전문가들의 실무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 ESG 평가사인 서스틴베스트는 8일 서울 중구 소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재무 중대성과 지속가능성 공시’ 세미나를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ESG 공시는 투자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그 정보가 무엇이고 어떻게 제공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행사에는 투자자가 원하는 정보인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의 중요성의 판단과 스코프3 공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어졌다.
행사를 주최한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이사는 “ESG는 기업 경영에 지속가능성을 내재화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서유석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축사에서 “ESG 경영성과에 대한 측정 수단인 공시도 해외 주요국 중심으로 강화되는 추세이므로, 국제적 추이를 따라가며 빠르게 결론을 내려서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도 축사에서 “투자자는 비교 가능한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를 원하고 기업은 공시 부담을 최소화하기 원하므로 KSSB가 최종본을 확정하기 전에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SG 공시, 투자자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 공개가 목적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 공시가 투자자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는 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 공시의 주체인 기업이 이를 염두에 두고 공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백태영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위원은 기조설에서 “ISSB와 KSSB는 모두 투자자를 위한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공시를 하라고 요구한다”며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의 주요 이용자가 투자자임을 잘 이해해야 하며, 이들이 원하는 정보를 잘 알고 공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투자자도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정보를 의사결정에 잘 활용해야 공시제도가 큰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SASB 기준으로 한국 기업들이 내는 공개 정보 중에 중요한 정보는 몇 개이고, 이 정보가 주가와 연관성이 있을지 연구했더니,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라며 “이런 연구를 한 이유는 투자자, 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 자본시장에서 이 정보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가 필요로하면, 기업들이 정보 공시를 통해 자본시장에서 보상을 얻을 수 있음을 예측하게 되고 이는 공시의 동력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서스틴베스트, 재무 중대성 양적 평가 시도…SASB 기준으로 국내 지표 매핑
투자자가 원하는 중요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를 어떤 방법으로 평가할지도 중요한 이슈였다.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부대표는 “국내 기업은 재무적 중대성을 주로 질적 분석에 의존해서 평가해 오고 있는데, 이 분석만으로는 중요한 지표를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양적 분석을 통해 부족한 합리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최다 기업 데이터를 보유한 기관으로 데이터 분석의 강점을 바탕으로 양적 분석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오승재 부대표는 “SASB 기준의 지표와 국내 지표들의 유관성을 고려하여 두 지표를 연결한 매핑을 진행한 후 이를 통해 국내에서 재무적으로 중요한 지표들을 평가해 봤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량평가가 다소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왕겸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사는 “양적 평가가 재무 중대성 평가를 보완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현재 신뢰할 수 있는 ESG 데이터가 많지 않기에 이 데이터의 통계도 신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장 참여자들이 소화하는 수준에서 양적 정보보다는 내러티브 등 내부 관리단에서 위험을 어떻게 보고 대응하고 있는지와 같은 전략의 유무가 투자자 입장에서 더 중요하게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오 부대표는 이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공시 제도가 도입되고 데이터가 쌓인 후에 양적 평가를 진행한다면 다소 늦은 감이 있다”라며 “비판을 수용하더라도 지금부터 시작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게 국내 공시 관행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된다”고 답변했다.
중요성 평가, 설문조사 방식 개선해야…스코프3는 정보 품질 기재 방식으로 우선 도입
기업이 이제 실질적으로 정보 공개를 실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시 실무에 대한 의견도 제시됐다.
먼저, 설문 방식의 중요성 평가가 개선돼야 한다는 점이 제기됐다. 황정환 KPMG삼정회계법인 파트너는 “중요성을 평가할 때 현재는 이해관계자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ESG에 대한 연관성이 적거나 지식이 많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도 답변하게되어 중요 주제 선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황정환 파트너는 “오히려, 외부의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임원과 경영진, ESG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받아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게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중요성에 따라 선택할 지표를 고민할 때, 시장의 압력과 내부 소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이웅희 KSSB 부위원장은 “KSSB 초안을 낼 때, 200개 이상의 기업과 논의를 했었는데 지표를 선택에도 고민이 깊은 것을 확인했다”며 “시장에서 동종업계의 경쟁기업이 자사보다 더 많거나 적은 지표를 선택했거나, 다른 지표를 선택했을 때 이를 설득하기 위한 소통 업무가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웅희 부위원장은 “KSSB가 초안을 내고 이런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이런 디테일한 사항을 고려해서 의견을 제시한다면 기업에 도움이 되는 지침과 최종안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코프3 공시의 의무화가 불분명한 가운데, 일단 시작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왕겸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사는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이에 대한 공시 시기나 의무화 여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왕겸 이사는 “GHG프로토콜은 1차 자료(primary data)와 2차 자료(secondary data)로 데이터를 구분하고 PCAF는 1부터 5까지 정보 품질을 기재하여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이 아이디어에 착안하여 스코프3 배출량 정보를 일단 공시하되, 정보의 신뢰성을 함께 기재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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