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20일(현지시각) 이러한 흐름이 오히려 지속가능성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기후 목표 조정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기업들의 기후 목표 조정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화석연료 기업부터 MS까지... 기업들은 넷제로 피보팅 중

최근 18개월 동안 ESG 목표 조정 흐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명 넷제로 피보팅(Pivoting) 이다. 

화석연료 기업인 BP와 셸은 유가 상승을 이유로 탄소배출량 저감 목표를 축소했고, 신발제조업체 크록스 또한 탄소중립 목표를 2030년에서 2040년으로 10년 연기했다. 재생에너지 직접 구매(PPA) 등 ESG 투자에 앞장서던 마이크로소프트(MS) 또한 탄소 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메타와 구글은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계획을 축소했으며, 코카콜라와 네슬레도 플라스틱 저감 목표를 지연시켰다. 

기업마다 처한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러한 현상을 야기한 몇 가지 공통적인 요인은 있다. 

첫째, 보수 세력이 주도하는 반(反)ESG 정치 캠페인이다. HBR은 ESG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DEI, 기업의 지속가능성, ESG 투자에 대한 의지를 꺾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최근 수익성까지 낮아지자 수조 달러의 자산이 ESG 펀드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둘째, 지속가능성 가치 측정의 어려움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자는 때로 무형적이며 그 효과를 증명하는 것도 까다롭다.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탄소세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가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 평판 제고 등 정성적 가치를 위한 투자 효과 또한 정량적 숫자로 환산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셋째, 기존 지속가능성 목표의 비현실성이다. HBR은 기업들이 애초에 충분한 검토 없이 과도한 목표를 설정했다고 분석했다. 지속가능성 기업의 대명사 유니레버의 최고경영자(CEO) 하인 슈마허(Hein Schumacher) 또한 '합리적 지속가능성'을 새롭게 주창하며, “(유니레버는) 초기 지속가능성 목표 설정 시 해야 할 일의 규모와 복잡도를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넷째, 수익성 확보의 중요성이 부상했다.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투자가 항상 긍정적인 재무적 성과를 내지는 않는다고 대외적으로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HBR은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비공개 연구에서 전체 탈탄소화 투자 중 긍정적인 재무 효과를 창출한 비중은 15% 미만에 불과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넷제로 피보팅, 피할 수 없다면...

HBR은 기업들의 넷제로 피보팅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이를 위한 세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의 ESG 목표 달성을 위한 사회적, 환경적 요인은 대부분 조직 내부보다는 공급망, 즉 외부에 있다. 예를 들어 패션, 농업, 광업산업의 경우 탄소 배출의 90%가 원자재 공급과 유통 및 판매 과정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지속가능성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과거의 단기적이고 가격 중심적인 계약 관행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의 신뢰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둘째, 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일부 ESG 투자 수익률이 부진할 수는 있지만 기후변화 영향이 보다 커진 미래에서는 이를 만회할 수 있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6년부터 본격 시행 예정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탄소세 도입이 현실화되면, 현재의 ESG 투자는 향후 더 큰 경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대표적 방법으로는 내부 탄소가격제(Internal Carbon Pricing)가 있다. 

내부 탄소가격제란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스코프 1·2(기업 내 직간접배출량)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다. 예상 탄소가격을 미리 사업장이나 투자 결정에 적용, 비용을 부과하여 탄소배출권 시장 대응 및 탄소중립 전략의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KT&G,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 도입, 운영하고 있다. 

무형자산의 가치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HBR은 상장기업의 주식가치 중 90%는 브랜드 가치, 지적재산권과 같은 무형자산으로 구성된다며, 이를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지속가능성 투자도 마땅히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셋째, 거버넌스 구조를 재정비해야 한다. 지속가능성, 즉 환경과 사회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러 부서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과업 정의, 업무 배분,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가 있어야 한다. 

전문가 리더십도 필요하다. 특히 비즈니스의 본격적인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금속공학, 농업, 화학, 물리학 등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요구될 수 있다.  

업계 내 구조적인 변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산업협회 상당수가 친환경 규제 등 ESG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 애플, 엑손, PG&E 등의 기업들은 기후 정책에 대한 이견으로 미국 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에서 탈퇴한 바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오랜 기간 탄소 배출 규제 등의 기후 법안에 반대해왔다. 

HBR은 기업들의 성공적인 넷제로 피보팅을 위해서는 기후 목표를 조정하는 즉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 위한 의미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하며,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전략을 수립하고 공급망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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