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필수품이 된 마스크, 비대면 식사를 위한 배달음식, 피로사회에서의 커피 한 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이 결국엔 쓰레기가 되고 만다.
신체의 80%를 구성하고 있는 물 또한 쓰레기를 만든다. 1인 가구 등이 늘어나며 작년 한 해 1조원 시장을 기록한 생수가 그 주범이다. 하루 권장량 2L를 마시기 위해 생수병, 생수 뚜껑, 생수 페트병, 생수 포장지가 쓰레기로 버려진다. 안 마시고 살 수 없는 물이 배출하는 쓰레기를 막기 위해 환경부가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12월「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시행하면서다.
환경부는 순환경제 로드맵의 일환으로 "생수를 버릴 땐 내용물을 비우고 라벨을 제거하라"는 지침을 신설했다. 더불어 생수병 재활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라벨 없는 먹는샘물'과 '병마개에 상표띠가 부착된 먹는샘물' 생산·판매를 허용했다. 라벨 하나만 제거했을 뿐인데, 연간 최대 2460톤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투명용기 사용으로 라벨로 차별화를 꾀했던 생수회사들도 환경부의 규제에 동참했다. 국내 생수 생산량의 74%를 차지하는 농심, 동원에프엔비, 로터스, 롯데칠성음료, 산수음료, 스파클,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코카콜라음료, 풀무원샘물, 하이트진로음료 10곳은 환경부와 업무 협약을 맺고 라벨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롯데칠성 '아이시스'가 국내 최초로 생수 용기에 라벨을 제거한지 딱 1년만의 성과다.
무라벨 생수 줄줄이 출시
기업의 변화가 이어진다
MOU를 맺은 생수회사들은 속속 무라벨 생수를 출시하고 있다.
국내 3대 생수 업계 중 하나인 삼다수는 올 상반기 중 무라벨 제품 '제주삼다수 그린 에디션(가칭)'을 출시한다. 삼다수를 생산하고 있는 제주개발공사는 2025년까지 2020년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25% 줄이고, 2025년까지는 50%까지 줄이는 등 ‘탈 플라스틱’화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앞서 지난 달 제주개발공사는 제주삼다수를 중심으로 친환경 경영을 강화하는 비전을 발표했다. 올해를 'ESG(환경·사회공헌·지배구조) 선도 공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원년으로 선포하고, 이산화탄소 저감을 통한 생산부터 수거, 업사이클까지 전 과정을 포괄하는 친환경 사업 모델인 '그린 홀 프로세스'(Green Whole Process) 경영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농심도 지난 2일 올해 상반기 중에 라벨 없는 백산수를 출시하고 페트병 경량화를 추진하는 등 친환경 경영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민속촌 내에 투명 페트병 수거함을 설치하고 친환경 캠페인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음료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코카콜라는 음료 중 최초로 무라벨 씨그램을 출시했다. 빙그레는 커피 제품 아카펠라 심플리의 무라벨 제품을 생산한지 6개월만에 100만개를 판매 백 만개를 돌파했다.
온라인 커머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11번가는 이커머스 업체 최초로 라벨을 없앤 생수 '올 스탠다드 샘물'을 출시했다. 라벨에 명시돼 있던 상품명, 의무 표시사항은 생수 뚜껑과 묶음포장재 외면에 담았다.
처음 무라벨 아이시스가 출시했을 때 의무 표시사항 기재 문제로 '묶음 포장' 판매만 허용했던 문제도 '몸통이나 병마개에 별도 표기'를 허용하면서 낱개로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환경부는 "계도 기간을 거쳐 소포장 제품에 무라벨 제품 판매만 허용하는 것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느리다.
물론 진전했지만, 그럼에도 국내 행보는 느린 편에 속한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외국의 경우 규제를 통해 기업이 변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변해서 규제가 따라온다"고 지적했다. 코카콜라, 네슬레, 로레알 등 해외 기업들은 길게는 10년 전부터 포장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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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규제 또한 화끈하다. 프랑스 정부는 작년 4월, 한참 코로나19가 심각해 일회용품 사용이 증가하는 와중에도 2040년까지 일회용 포장 사용 금지를 규정하는 '순환경제 법률'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EU는 한술 더 떠 올해부터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에 세금까지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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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더욱 급진적이다. 중국 상하이 정부는 지난해 11월 '2023년 플라스틱 제로'를 내걸고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소비 1위 오명을 탈피하고자 3년 간 플라스틱을 본격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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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전에 기업이 스스로 움직였다면 더 바람직했겠지만, 이제는 규제로라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 홍 소장은 "플라스틱이나 환경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이 시점이 속도를 내기 좋은 타이밍"이라며 "이제는 정부, 기업, 국민이 모두 힘을 합쳐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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